“물고기가 아니라 그물을”, 작은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꾼다.

체코의 트랜지션온라인(Transitons Online, 이하 트랜지션)은 체코와 튀르키예, 슬로바키아, 헝가리,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지역의 솔루션 저널리즘 허브 사이트라고 할 수 있다. 트랜지션의 기사를 살펴보면 어느 나라나 비슷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고 다른 나라의 시행착오가 또 다른 나라에 새로운 대안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다. 트랜지션은 동유럽의 언론사들에게 솔루션 저널리즘 교육과 컨설팅을 제공하면서 여러 나라의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를 번역해서 소개하고 있다. 트랜지션이 공유한 몇 가지 솔루션 기사를 살펴보면서 해법에 접근하는 과정을 복기해 보기로 한다.

소액 금융과 오이 농사로 가난 탈출.

첫 번째 기사는 소액 금융과 오이 농사로 가난을 벗어난 헝가리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아틀라조(Atlatszo)의 기사다.

‘탈출(Way Out)’ 프로그램은 인도의 그라민 은행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저소득 계층 여성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로 2009년 출범했다.

헝가리의 파비안하자(Fabianhaza) 지역은 헝가리에서도 가장 소득이 낮은 지역 가운데 하나다. 아직도 동네 우물에서 식수를 길어 마시는 지역도 있다. ‘탈출’ 프로그램에 참여한 두 아이의 엄마 티미(Timi)는 2020년 봄부터 뒤뜰에서 오이 농사를 시작했다. 장비와 모종 구입 등의 초기 비용이 필요했지만 최대 15만 포린트(52만 원)까지 2년 만기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오이는 5월에서 9월까지 재배하는데 이 기간 동안 생계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오이 농사는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고 실패 위험이 낮고 판매도 꾸준한 작물이다. ‘탈출’ 프로그램은 참여 농가에서 생산된 오이를 한꺼번에 매입해서 가공 공장으로 보내고 농가에 1주일에 한 번 급여를 지급한다. 오이 가격이 폭락할 때도 미리 약속한 금액에 매입하기 때문에 농가는 안정된 수입을 얻을 수 있다. 한 시즌이면 50만 포린트(172만 원)의 매출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탈출’ 프로그램에서 생산한 오이는 2020년 기준으로 316톤, 순이익은 5100만 포린트(1억7493만 원)에 이른다. 참가자는 63명이었다.

‘탈출’ 프로그램의 모토는 “물고기가 아니라 그물을 주세요”다. 프로그램에서는 오이 재배 뿐만 아니라 오이 판매와 회계 기초 등 기업가 교육을 병행한다. 오이 농사로 사업에 뛰어든 여성들이 자영업에 진출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탈출’ 프로그램은 2009년 150만 유로의 유럽 연합 보조금으로 출범해 개인 기부금과 35만 유로의 헝가리 정부 예산의 도움을 받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독립된 기금으로 운영된다. 2012년까지는 설립 자금의 15%가 대출로 나가고 나머지는 시스템 구축과 임금, 세금 등으로 나갔다. 초기 대출의 상환 비율도 55% 밖에 안 됐다. 그만큼 대출 부실이 컸고 재정 건전성도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몇 차례 시행 착오를 거치면서 묘목과 비료 등의 원재료를 직접 구매하거나 인수하고 대출 기준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등 시스템을 강화했다. 그 과정에서 극도로 빈곤한 사람들에게는 이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당장 대출이 필요하지만 오이 농사에 의지가 없는 사람들을 걸러내는 것도 중요한 변수였다.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게 아니라 자립을 지원하는 것이다. 멘토들이 입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정신적 피해를 돌보는 것도 지속 가능한 시스템의 전제 조건이다. 초기에 합류한 멘토 37명 가운데 남아있는 사람은 4명 뿐이다.

이 프로그램의 문제는 농가를 돕는 것과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병행하는 모델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이 농사의 마진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운영 비용을 회수할 정도로 규모의 경제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탈출’ 프로그램은 몇 차례 시행 착오를 거쳐 금융 사업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으로 전환했다. 애초에 오이 농사가 한 철 농사라 이것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탈출’ 프로그램의 모델이었던 그라민 은행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그래도 공공에서 주도하는 일자리 프로그램보다 투자 대비 효과가 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헝가리 정부가 지원하는 공공 일자리는 월 소득이 5만4000포린트, 연간 65만 포린트 정도인데 ‘탈출’ 프로그램에 참여한 농부들은 한 시즌에 50만 포린트를 벌 수 있다. 월 소득으로 치면 대략 두 배 수준이다. 이 프로그램이 자리 잡으려면 오이를 재배하지 않는 기간에 수입을 담보할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헝가리 북동부에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헝가리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유럽 연합 지원이 2022년에 끝나면 연간 1000만 포린트(3440만 원)의 추가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생산자 직거래로 ‘윈윈’하는 해법, 가능할까.

두 번째 기사는 튀르키예의 주문형 채소(Grown-to-Order Veggies) 스타트업 파모바일(Farmobile)을 소개한 기사다. 파모바일은 도시 주민들에게 인근 시골의 농지를 분양해서 채소를 재배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배송해 주는 서비스다. 여름에는 토마토와 고추, 오이, 겨울에는 무와 시금치가 인기가 좋고, 양배추나 브로콜리, 가지, 옥수수, 당근 등도 선택할 수 있다. 언뜻 주말 농장과 비슷하지만 돈을 받고 농사를 대신 지어주고 배송까지 해준다는 게 차이다.

파모바일의 창업자는 은퇴한 농업 엔지니어 파티 굴렉(Fatih Gulec)이다. 굴렉은 농업이 지속가능하려면 가격 결정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농가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직거래 서비스를 만들었다.

튀르키예는 1980년대까지 정부에서 농업을 관리해 왔다. 민영화 이후에는 해외 자본이 들어오면서 농업의 붕괴가 시작됐고 정부가 보조금을 쏟아 부었지만 영세 농가의 몰락을 막기에는 부족했다. 종자와 비료 등 수입 의존도가 높았는데 가뜩이나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비용이 급증했다. 2002년 기준으로 농부가 250만 명이었는데 2020년에는 180만 명 미만으로 줄어들 정도로 농업의 붕괴가 심각했다. 농지는 같은 기간 동안 18% 이상 줄었다.

무엇보다도 여러 단계 중간 도매상을 거치면서 소비자 가격은 뛰는데 생산자들의 수익이 줄어든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레몬의 경우 산지에서는 1kg에 1리라(76원)에 팔리는데 도매 시장에서는 4리라(305원), 동네 슈퍼에서는 7리라(534원)에 팔렸다. 파모바일은 중간 거래상을 건너 뛰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모델이었다.

물론 출발은 순탄하지 않았다. 2018년에는 구독 회원이 4명 밖에 안 됐다. 2020년에는 회원이 35명, 경작 농지도 200평방미터로 늘었고 2021년에는 1500평방미터로 늘었다. 구독 연장 비율은 60%에 이른다.

파모바일의 구독 옵션은 세 가지다. 2000리라(15만2000원)의 에코(Eco) 패키지는 12평방미터에 농지에 세 가지 상품을 구독할 수 있다. 입문(Beginner) 패키지는 3000리라를 내고 25평방미터에 5가지 상품, 프리미엄 패키지는 3500리라를 내고 25평방미터에 7가지 상품을 구독할 수 있다. 트랜지션이 지적한 것처럼 전체 노동 인구의 40%가 월 290달러의 최저 임금을 받는 나라에서 상당한 부담이 되는 금액이 아닐 수 없다.

파모바일은 아직 손익분기점에 이르지 못한 모델이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회원이 늘어날수록 배송과 마케팅 등 고정 비용이 줄어들고 생산 단가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비자가 전체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농업은 경쟁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농업은 언제나위험했습니다. 날씨에 따라 다르고 해충도 주의해야 합니다. 항상 긴장이 있지만 식탁에 놓인 채소를 보면 기쁘죠. 저는 이 두 가지를 고객들과 공유하고 싶고, 많은 고객들과 함께 그 지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굴렉의 이야기다.

일자리를 만드는 ‘애국’ 토마토.

세 번째 소개할 기사는 슬로바키아 토마토 농장의 도전을 다룬 기사다.

슬로바키아도 공산주의 몰락 이후 시장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산업이 급격히 붕괴했다. 슈퍼마켓 체인이 들어오면서 수입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슬로바키아의 가장 큰 토마토 농장인 그린쿠프(GreenCoop)의 최고 경영자 졸트 빈딕(Zsolt Bindics)은 15년 전 다뉴브강의 온화한 기후가 토마토 농사에 최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유럽 연합의 기금을 받아 1.5헥타르의 토마토 농장을 만들었다.

토마토 농장은 고용 창출 효과도 매우 높다. 다른 농산물은 100헥타르에 2.5명을 고용하지만 밀집도가 높은 수경 재배 방식의 토마토 농장은 1500명을 고용할 수 있다. 오레무스(Oremus) 농장의 경우 1헥타르에 18명이 근무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입 방울 토마토는 너무 비싸서 엄두를 낼 수 없었죠. 요즘은 국산 토마토가 5~10% 더 비싸지만 기꺼이 국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슬로바키아에서 국산 토마토의 시장 점유율은 50%를 넘어섰다. 그린쿠프의 매출은 2012년 210만 유로에서 2020년 3070만 유로로 급격히 늘어났다.

다음은 트랜지션이 정리한 슬로바키아 토마토 산업의 체크리스트다.
첫째, 꾸준한 수요가 있는 제품을 찾았다. 토마토는 1년 내내 먹을 수 있고 누구나 좋아한다.
둘째, 가장 맛있을 때 수확해서 바로 먹을 수 있게 했다. 녹색 토마토를 따서 익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셋째, 품질로 승부했다. 수입산 보다 국산이 맛있다는 믿음을 심어줬다. 농약 사용량을 줄여 신뢰를 확보했다.
넷째, 국산 생산 농가들끼리 힘을 합쳐 브랜드를 키웠다. 슈퍼마켓에서 누구나 쉽게 국산을 구분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당연히 가격 협상력도 높아졌다.
다섯째, 현지에서 고용을 창출했다. 자전거로 출퇴근할 수 있는 지역 주민들을 채용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

물론 한계도 있다. 여전히 수입 제품이 국산보다 저렴하다. 네덜란드의 토마토 농가들은 미리 합의된 가격으로 사전 판매하고 남은 농산물을 동유럽에 싸게 팔면서 국산 농가들을 위협해 왔다. 국산 농가들은 이제 막 시설 투자와 대출금을 갚느라 허덕이는 반면 네덜란드는 시장을 확장하면서 후발 주자를 도태시켜야 하는 입장이다.

꿀벌의 떼죽음, 튀르키예가 찾은 해법은.

꿀벌 농가를 살리기 위한 튀르키예의 실험도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튀르키예도 꿀벌의 집단 폐사와 함께 벌꿀 수확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심각한 이슈가 됐다. 당장 식물의 번식과 생태계 균형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튀르키예는 2006년 대형 산불이 발생한 뒤 산림 보호를 위해 양봉 산업을 엄격하게 규제했다. 그러나 2007년 이스마일 벨렌(Ismail Belen)이라는 산림총국 부국장이 산림 양봉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진상 조사를 위한 정부 차원의 위원회가 출범했다. 산림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양봉 수확을 늘리는 해법을 찾기 위한 조사였다. 튀르키예의 양봉 산업은 양봉 농가만 15만 가구, 연간 4억5000만 달러 규모에 이른다.

조사위원회는 꿀벌의 떼죽음이 살충제 때문이라는 진단과 함께 기후변화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3년 동안의 실험을 거쳐 꿀숲(honey forests)을 육성하는 법이 통과됐다. 꿀숲으로 지정되면 꿀벌이 좋아하는 나무를 심고 연못을 파고 양봉 농가를 위한 급수 시설 등이 지원된다. 2020년까지 튀르키예 전역에 596개의 꿀숲이 지정됐고 이를 2023년까지 720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산림 보호도 중요하지만 꿀벌을 살리기 위해서는 양봉 농가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데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이다. 과수원에서는 살충제를 쓰지 않을 수 없고 결국 최대한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숲속에서 꿀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최선이라는 이야기다.

튀르키예 최대의 벌꿀 산지인 브르샤(Bursa) 산림청은 쿠르순루(Kursunlu) 숲을 꿀숲으로 지정하기 위해 라벤더와 헤더 등 꿀벌을 유인하는 데 효과적인 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었다. 규모를 키우기 위해 벌통 60개 미만을 관리하는 영세 농가들에 벌통을 지원하기도 했다.

꿀숲 법이 통과된 2010년부터 10년 동안 튀르키예의 꿀 생산량은 8만1000톤에서 11만톤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동안 벌꿀 통은 560만 개에서 800만개로 늘어났다. 양봉 농가도 2010년 이후 두 배인 8만 명까지 늘어났다. 튀르키예의 양봉 산업은 세계 3위에서 2위로 뛰어올랐다.

부르샤 양봉협회 회장인 우무트 브그라 카바스(Umut Bugra Kavas)는 “꿀숲이 생기기 전에는 연간 500kg의 로열젤리를 생산했는데 지금은 1.5~2톤까지 늘어났다”면서 “그 절반 정도가 브루샤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말했다.

테디 베어가 재범율을 낮춘다?

다섯 번째는 루마니아 몰도바 교도소의 실험을 다룬 기사다.

이 교도소는 미국에서의 경험을 벤치마킹해 수감자들 가운데 신청을 받아 부모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 교도소는 출소한 전과자들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돌아오는 비율이 50%가 넘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전과자들이 사회 복귀가 쉽지 않아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감자 가운데 아이가 있는 비율이 3분의 2 수준이다.

‘양육 인사이드아웃(inside out)’ 프로그램은 미국 오리곤주에서 시작돼 지금은 17개 주의 교도소에서 실행되고 있다.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로도 확산됐다. 워싱턴주 교정 전문가 브루스 우드(Bruce Wood)는 교육을 이런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는 여러분을 위해 여기 온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아이들을 위해 왔고 저의 목표는 여러분의 아이들이 이곳에 오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육은 1주일에 세 번씩 2시간30분 동안 3개월에 걸쳐 진행된다. 주제는 “더 나은 부모가 되는 방법.”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재소자들은 알 모양의 인형을 받아 1주일 동안 돌보게 된다. 1주일이 지나면 다른 재소자들에게 알을 넘기고 테디 베어 인형을 받게 된다. 갓난 아이를 남겨 두고 이곳에 왔다는 한 재소자는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교육에서는 감정 조절과 격려,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방법 등을 배우게 된다.

일부 재소자들은 인형 놀이에 극도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우드는 이렇게 말한다. “이 프로그램은 부모로서의 경험을 재연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죄수가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까.”

재소자들을 부모로 인식하면서 간수와 재소자들의 관계도 달라졌다. 아이를 주제로 하는 대화가 늘어났고 교도소 내부의 폭력도 줄어들었다.

다음은 한 재소자의 말이다.

“이 프로그램은 아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그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건네야 한다는 걸 알게 됐죠. 언젠가부터 아버지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실제로 양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재소자들은 석방 이후 1년 이내에 다시 수감될 확률이 31~41% 정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모든 프로그램이 순탄하게 돌아갔던 건 아니다. 테디 베어 인형이 마약이나 금지된 물건을 운반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었고 그래서 종이 인형으로 대신하는 곳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교도소 행정 당국을 설득하는 게 가장 큰 일이었다. 재범 비율을 줄인다는 통계가 명확했지만 상당수 교도소에서는 재소자들을 관리 대상으로만 봤지 이들이 바뀔 거라는 기대가 아예 없었다.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실제로 이런 질문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가족과 화상 통화를 하는데 아이가 수줍어하고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미국과 몰도바는 상황이 다릅니다. 테디 베어를 메고 다니는 위험을 감수할 재소자는 거의 없을 겁니다. 엄청난 트라우마가 될 것이고 동료들에게 굴욕을 당하거나 구타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치료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100%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에서 작동합니다. 아무도 그들을 비웃지 않아야 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곳에서 작동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두 명의 모더레이터와 장난감 몇 개면 충분하다. 재소자 가운데서도 모더레이터를 찾을 수도 있다. 한계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고 있는 실험과 도전의 과정이다.

“재소자들이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있게 만드는 최선이 아닙니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보고 바꿀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감옥에서 나왔다가 반년 안에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죠.”

테러리스트들을 감옥에 가두는 방법.

2020년 튀르키예가 알카에다 테러 조직의 구성원으로 의심되는 청년들을 체포했을 때 이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된 적 있었다.

2014년 벨기에 브뤼셀의 유대인 박물관을 공격해 4명을 사망하게 한 메디 네무슈(Mehdi Nemmouche)는 석방된 지 3주 만에 시리아로 떠나 다음 테러를 준비했다. 2015년 파리의 코셔 상점에서 인질로 4명을 살해한 아메디 쿨리발리(Amedy Coulibaly)도 교도소에서 더욱 과격한 테러리스트로 거듭났다.

감옥이 테러리스트들을 교화하는데 실패하고 있지만 아무리 잔혹한 테러리스트라고 해도 하루 한 번 이상 산책을 허락해야 한다. 다른 수감자들과 접촉을 금지해야 하고 이들을 평생 감옥에 가둬둘 게 아니라면 장기적으로 사회 복귀를 지원해야 하는 과제도 남는다. 트랜지션이 번역해 소개한 폴란드의 일간 신문 가제타비보르차(Gazeta Wyborcza)의 기사에 따르면 이 분야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나라가 체코였고 다른 나라들의 벤치마크 모델이 됐다.

체코는 체코프라하공과대학(CVUT)에서 만든 온라인 교육 플랫폼 에르메스(HERMES)를 급진화에 맞서는 도구로 활용했다. 에르메스는 잠재적으로 위험한 개인을 다시 통합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대화형 학습과 케이스 스터디 등의 교육 자료가 포함돼 있다. 판사와 변호사, 보호 관찰 직원, 사회 복지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가제타비보르차에 따르면 체코에서도 처음에는 회의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었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확신이 생겨났다.

이탈리아 파도바 교도소에서 진행한 교화 실험의 결과도 흥미롭다. 핵심은 수감자들을 급진적인 지도자들과 분리하는 것이다. 교도소 내부에 콜센터와 제과점, 자전거 가게 등의 기업을 유치하고 외부 세계와 동일한 급여와 노동 조건을 지급하고 경력 증명서도 받을 수 있다. 입소 기업들은 세금 혜택을 받게 된다. 상대적으로 덜 급진적인 수감자들은 일반 재소자들과 비슷한 조건의 노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수감자들의 복귀율은 10% 수준으로 다른 이탈리아 교도소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나폴리에서는 이 비율이 최대 90%에 육박한다.

로마의 한 모스크의 이맘인 사미 살렘(Sami Salem)에 따르면 수감자들이 의지하는 온건한 이맘들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진정한 이슬람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급진적 견해에서 벗어났던 수감자들의 참여도 성공적이었다.

문제 해결에 이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이밖에도 흥미로운 사례가 많다.

체코의 한 학교는 4년 차이가 나는 학생들을 멘토와 멘티로 짝 지워주는 P2P 교육을 도입했다. 5학년 학생은 1학년 학생과, 7학년 학생은 3학년 학생과 각각 한 팀이 되는 방식이다. 입학하면 4년 동안 멘토와 함께 지내다가 5학년이 되면 멘토가 돼서 1학년 학생을 배정받게 되는 시스템이다. 장점은 멘토 학생들이 멘티 학생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한계는 여전히 잘 맞지 않는 관계가 있고 또 다른 문제를 만든 경우도 물론 있다.

폴란드에는 커밍아웃을 선언한 LGBTQ 청소년들을 위한 임시 보호소가 있다. 폴란드는 성소수자 인권을 평가하는 무지개 지수에서 유럽 최하위로 평가 받은 바 있다. 유럽의 LGBTQ 인구 가운데 5분의 1이 노숙을 경험한다는 통계도 있었다. 부모가 아이의 성적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감금하거나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금지하는 등의 학대를 당하기도 한다. 이 보호소는 심리적 지원이나 상담이 필요한 청소년들을 최장 3개월까지 보호하고 사회 복귀를 돕는다.

결핵 치료에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몰도바의 사례도 흥미롭다. 몰도바는 결핵 발병률이 유럽에서 제일 높은 나라다. 문제는 최대 2년까지 항생제를 투여해야 하는데 환자들이 치료를 중단하면서 내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몰도바의 한 비영리 기구가 환자들이 약을 복용하는 방면을 비디오로 찍어 의사에게 보낼 수 있는 앱을 개발했는데 이 앱을 쓴 환자들은 상대적으로 치료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비율이 10%포인트 정도 높았다. 약을 제때 복용한다는 믿음이 있으면 의사들이 한꺼번에 많은 약을 처방할 수 있고 병원에 오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의 성적 고민을 해결해 주는 비영리 단체 ‘위험 없는 축복(Rozkos bez rizika)’을 다룬 파인맥(Finmag)의 기사는 2019년 솔루션 저널리즘 어워드를 받았다. 성적 만족과 자기 표현을 배우도록 돕는 서비스다. 논란이 많은 서비스였지만 합법적인 테두리에서 진행되고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지 말라는 내부 윤리 강령도 철저하게 지킨다고 한다.

유럽 최악의 교통 사고 사망률을 기록했던 슬로바키아가 한 달 월급 수준에 이르는 교통 범칙금을 부과하면서 사망률을 급격하게 떨어뜨린 사례도 흥미롭다. 사망자 수는 2012년 302명에서 2014년 267명, 2016년 192명으로 줄었고 2019년에는 66명까지 줄었다. 이웃나라인 폴란드의 과속 위반 벌금이 1997년에는 최저 임금의 127%였는데 2019년 기준으로 17% 수준까지 떨어진 것과도 비교된다.

우크라이나의 빈곤 농가를 돕기 위해 20마리의 암소를 기부하는 대신 새끼를 낳으면 이웃에 기부하도록 하는 조건을 내건 실험도 흥미롭다. 몇 년 뒤 이 마을은 젖소가 400마리로 늘어났다.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공용으로 쓰는 우유 비축 탱크를 늘려 단가를 높였더니 떠났던 청년들이 돌아왔다.

조지아에서는 그루지아족과 아제르족과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아제르어와 아제르 역사를 가르치는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원룸 학교로 시작했지만 제대로 된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자원봉사자들에게 약간의 급여를 지급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트랜지션이 소개한 해법은 모두 가능성 뿐만 아니라 한계를 정확하게 정리하고 있다. 제레미 드러커 트랜지션 대표는 “철저하게 문제 해결의 과정에 집중한다”면서 “카피 앤 페이스트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실패의 경험에서 문제 해결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