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들의 질문.

얼마 전에 대전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질문을 보내와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1.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은 일반 시민들 뿐만 아니라, 언론계 종사자들 가운데도 잘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확산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 언론의 본령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죠.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고요.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드러내는 것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를 펼쳐 놓으면 국회의원들이 몰려와서 해결해 줄까요? 대통령을 잘 뽑으면 해결될까요? 대학 교수나 전문가들, 또는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부탁해야 할까요? 일단 중요한 건 우리가 문제를 인식하는 것 못지 않게 문제 해결의 과정과 한계, 가능성 등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루션 저널리즘도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이죠.

2. 솔루션 저널리즘의 형태를 띠는 언론이 많지는 않은데, 이를 언론사에 적용하여 언론사에서도 솔루션 저널리즘의 형태를 띠는 기사가 많이 생산되려면 초기 단계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의 확산을 어떻게 시킬 수 있을까요?

= 저도 그렇지만 많은 기자들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의 판단이나 주장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보도해야 한다고 교육 받아왔고요.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기자도 사람이고 사실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사실을 선택하는 단계부터 주관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기자들이 현장에서 거리를 두는 건 필요합니다. 벽에 붙은 파리처럼 현장을 관찰해야 하지만 더 다가가면 위험할 때도 있습니다. 이를 테면 기자 개인의 이해 관계를 기사에 반영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는 일입니다.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라는 건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라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이나 판단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태도로 접근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이렇게 봤다, 이러이러한 이유에서다, 독자들은 다르게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하겠다, 이런 태도가 좀 더 공정한 보도 방식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지금까지의 언론 보도와 다른 어떤 것이라기 보다는 지금까지 언론이 해왔던 것들을 더 잘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문제를 드러내는 방식의 보도에서 대안을 모색하고 해법을 찾는 과정까지 확장하는 보도를 해보자고 제안하는 건 전통적인 언론의 취재와 보도 기법으로 언론의 역할을 다 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기자들이 이런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솔루션 저널리즘을 실험하고 실행하는 언론사가 늘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언론 보도가 잘못됐다고 보기 때문이 아니라 언론의 역할을 확장해 보자는 제안입니다.

3. 기자님의 책에서 언론이 광고와 결합하여 국민들에게 안 좋은 인식을 심어주며 광고주의 정치적, 사회적 개입이 반영될 수 있고, 이는 곧 언론사의 수익 하락으로 나타난다고 하셨는데요. 언론이 광고와 결합되지 않으면 어떤 방법으로 부족한 수익을 채울 수 있을까요?

= 이미 신문이나 방송은 광고 플랫폼으로서 가치를 잃었습니다. TV 뉴스는 시청률이 매우 낮고, 신문은 구독률이 급격히 줄고 있죠. 열독률이 과거의 10분의 1, 100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주요 신문사들은 광고 의존도가 전체 매출의 90%에 육박합니다. 이처럼 광고 효과도 없는데 광고를 받기 위해서는 광고 이외의 다른 거래가 필요합니다. 광고를 받고 기사를 삭제하거나 고쳐주는 등의 거래 말이죠. 눈치 보고 잘 써주는 경우도 흔하죠. 제가 보기에는 이런 기형적인 광고 시장은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이미 다 무너졌는데 한국만 아직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뉴스 기업이 구독 비즈니스로 옮겨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미 다른 나라들은 뉴스 콘텐츠 유료화가 상당히 진행돼서 무료로 뉴스를 볼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미 2014년부터 구독 매출이 광고 매출을 넘어섰고요. 구독자가 10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다른 나라들 사례를 보면 한국처럼 네이버와 카카오에 공짜 뉴스가 넘쳐나는 나라가 오히려 예외적입니다. 한국도 결국 뉴스를 돈 내고 봐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언론사들은 그 과정에서 도태될 것입니다. 뉴스타파는 유료 구독 모델은 아니지만 후원자가 3만 명이 넘고 월 후원금이 4억 원에 육박합니다. 한국에서도 구독 기반의 뉴스 서비스가 가능할 것이고 더 늘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언론사는 살아남기 어렵게 되겠죠.

4. 기성 언론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을 도입하려고 할 때 무슨 준비가 필요할까요?

해외 언론사들 사례 조사를 해보니 어느 언론사든 처음에 도입이 쉽지 않습니다. 나이 든 기자들일수록 설득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실제로 수십 년 동안 반복돼 왔던 익숙한 시스템을 버리기는 어렵죠. 기자들이 이런 것까지 해야 돼? 라고 말하는 언론사 내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습니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첫째, 솔루션 저널리즘을 이해하는 열정적인 기자들이 회사를 설득해야 합니다. 둘째, 이들을 이해하는 데스크 편집자가 필요하고요. 셋째, 시간과 인력을 확보해야겠죠. 날마다 쏟아지는 사건을 취재하느라 정신 없는데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해보겠다고 사람을 빼야 하기 때문이죠. 우선 순위를 조정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왜 이런 프로젝트가 필요한지 스스로 확신이 있어야겠죠. 이미 해외에 사례가 많습니다. 한국에서 솔루션 저널리즘 이야기를 하면 여전히 막연하게 느껴지는데 일단 한국에서도 사례가 늘어나고, 이런 거 우리도 한 번 해보자, 이런 분위기가 되면 급속히 확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5. 미국의 경우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산하 기업들이 솔루션 저널리즘을 시도하려는 언론사에 대해 지원을 해주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식으로 솔루션 저널리즘의 시도가 이루어져야 할까요? 또 이와 같은 지원으로 인한 정치적, 사회적 개입이나 압력이 발생하지 않을까요?

세 가지 질문을 뒤에서부터 답변해 보겠습니다.
첫째, 모든 돈에는 꼬리표가 붙죠. 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비영리 재단과 후원 제도가 굉장히 오랜 시간을 두고 발전해 왔습니다. 돈을 낸 사람이 재단의 운영에 개입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안전 장치도 많고요.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비영리 재단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둘째, 한국에서도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 같은 비영리 재단을 만들어 볼 수 있을 텐데 기금 조성이 관건이겠죠. 미국에서는 빌 게이츠와 록펠러 재단 등이 돈을 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자들에게 의존하는 모델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조건 없이 후원을 한다면 안 받을 이유가 없죠. 그 보다는 언론사들의 협업 모델이나 스타트업 모델로 시작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취재하러 다녀온 체코나 스페인, 프랑스 등에서도 후원과 구독 기반의 솔루션 저널리즘 언론사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셋째,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에서 언론사를 지원할 때 금액은 원화로 300만~5000만 원 정도입니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그리 큰 금액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한두 사람을 서너 달 정도 투입할 수 있는 인건비가 되기 때문에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실험을 할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됩니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일단 지원자를 받고 선정되면 지원금을 주고 기사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개입한다고 해서 언론사들이 기사를 고치거나 방향을 수정하거나 하지는 않겠죠.

6. 기자님의 책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은 누가 하였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였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과정만 기사에 담으면 그것이 솔루션 저널리즘이 될 수 있을까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가 궁금합니다!

제가 책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은 사람 보다는 해법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었죠. 그 해법이란 것도 철저하게 해결의 과정을 기록해야 하고 적당히 해법처럼 보이도록 포장해서는 안 된다는 게 중요합니다. 복제 가능성과 확장 가능성이 핵심입니다.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고 그런 아이디어를 그대로 따라하면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하고 다른 곳에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찾는 건 문제를 해결하는 히어로가 아니라 우리가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매뉴얼입니다. 이걸 찾는 게 솔루션 저널리즘이란 거죠.

7. 이번에 다녀오신 취재 과정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의 해외 사례를 많이 보고 오셨나요?

체코의 트랜지션이라는 언론사는 아직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동부 유럽과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언론인들을 교육하는 일을 합니다. 솔루션 저널리즘 방법론을 알려주기도 하고요. 체코의 경험이 모로코나 슬로바키아의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스페인의 컨스트럭티브인스티튜트는 대학교에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학생들과 함께 솔루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니스마텡이라는 언론사는 한때 경영 부실로 회사가 문을 닫을 상황이었지만 솔루션 저널리즘 섹션을 만들면서 후원회원이 늘어 지금은 직원 200명의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최근에 쓴 기사는 프랑스의 물 부족 문제를 다뤘는데 핵심은 프랑스 대도시에 아스팔트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빗물이 하수구로 빠져 나가고 지하수로 스며들지 않으니 도시 아래는 사막처럼 말라간다는 거죠. 그래서 내놓은 해법은 아스팔트를 걷어내지는 못하더라도 빗물이 도시 아래로 스며들도록 흙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해외 사례와 여러 실험과 실패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언론사는 구독자들에게 한 달에 세 건의 기사 아이템을 소개하고 투표를 통해 이 가운데 하나를 선정해서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기사를 쓴다고 합니다.

8. 학생의 입장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해 널리 알리고 이러한 기사 글 쓰기 문화를 알리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권력의 비리를 폭로하거나 아무도 모르는 엄청난 비밀을 찾아내거나 세상을 발칵 뒤집는 특종 보도는 여전히 언론사 기자들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우리 주변의 해법을 찾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제가 쓴 책에 나온 사례지만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대학교(UBC)는 학생들의 83%가 개인 물병을 들고 다닙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하죠. 학교 곳곳에 워터필즈(WaterFillz)라는 수돗물 정수기를 설치했는데 물을 한 컵을 따를 때마다 생수병을 얼마나 절약했는지 누적 집계가 전광판에 표시됩니다. 이 학교에서는 한 시간에 87명이 이 정수기를 이용하는데 5년 동안 100만 병을 줄였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당장 우리 학교에서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겠죠. 우리 주변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행동을 바꾼 건 업데이트되는 숫자, 그리고 우리의 작은 행동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빈부격차나 물가상승 같은 큰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아주 작은 변화를 만드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죠. 기후변화는 어려운 문제지만 일회용품을 줄이는 아이디어는 우리 삶의 가까이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9.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단어가 대중들이 접할 때는 그 뜻을 단번에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러한 글쓰기 형식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마디로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문제는 비명을 지르고 해법은 속삭인다고 하죠. 세상은 문제로 가득 찬 것 같지만 문제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을 냉소하고 좌절하게 만듭니다. 문제를 들춰내는 걸 넘어 해결 방법을 찾는데 아이디어를 모아야 한다는 게 솔루션 저널리즘의 접근 방식입니다. 세상은 저절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죠.

10. 솔루션 저널리즘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어떠한 정책적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정부가 언론에 개입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정부의 지원도 부정적인 효과를 만들 수 있구요. 다만 정부는 저널리즘 생태계가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좋은 콘텐츠가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규모가 큰 언론사들에 정부 광고를 지원해서 시장을 왜곡하는 일을 중단해야 하고, 신문사들의 발행 부수 조작을 엄격히 처벌해야 하고, 종합편성 채널의 특혜를 축소해야 하고 등등 몇 가지 원칙적인 개혁이 필요할 것입니다.

11. 솔루션 저널리즘을 지역에서부터 시작하자고 하셨는데, 지역사회 시민이 기여할 수 있는 바는 무엇이 있을까요?

문제도 지역에 있고 해법도 지역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여기서 지역이란 서울의 반대말이 아니라 서울에도 지역이 있고 동네가 있죠. 행정 단위가 아니라 현장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역에 살고 있는 것이죠. 솔루션 저널리즘이 한국 사회에 자리 잡으면 전국에 솔루션 저널리즘 워크숍을 1000개쯤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주제를 정해 문제를 놓고 이야기하면서 지역 주민들과 학생들, 언론인들이 함께 해법을 이야기하는 모임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12. 한국 언론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언론의 사명은 결국 더 많은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계속 고민하고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인가 찾고 계속해서 의제를 제안하고 토론을 만들어야 합니다. 감시와 비판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다른 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감시와 비판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