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는 사람.”
[인터뷰] 메디아시떼 독자 에디터 피에르 리보비치, “솔루션 저널리즘도 탐사 보도의 연장… 독자들에게 답이 있었다.”
프랑스의 메디아시떼(Mediacite)는 리용(Lyon)과 낭트(Nantes), 툴루즈(Toulouse) 등의 지역을 다루는 탐사 보도 전문 매체로 출발해서 지역 단위의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실험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7월22일 메디아시떼의 독자 에디터를 맡고 있는 피에르 리보비치(Pierre Leibovici)를 만났다.
– 메디아시떼는 솔루션 저널리즘 전문 매체는 아니다. 탐사 저널리즘과 솔루션 저널리즘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2016년에 지역 기반의 탐사 보도 신문으로 출발했다. 창간 초기에는 탐사 보도에만 주력했다. 지방의 정치 권력과 기업, 기관에 대한 보도가 많았다. 2018년부터 솔루션 저널리즘 취재를 시작했다. 솔루션 저널리즘과 탐사 보도는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솔루션 저널리즘 방식을 도입한다고 해서 탐사 보도를 중단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솔루션 저널리즘 역시 탐사보도의 한 형태 또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메디아시떼에서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를 본격적으로 작성하기 시작한 건 코로나 팬데믹 직후 2020년부터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지원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지역 차원의 해결 방안을 다루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를 테면 전국적 봉쇄령이 내려진 뒤 노숙자들을 위해 지역 주민들이 먹거리를 제공하거나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전달하는 사례가 있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이런 접근이 지속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갖게 됐고 이듬해 먹거리 문제에 대한 기획 기사를 준비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먹고, 무엇이 더 지속가능한 방식이고 취약 계층을 돕는 방법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독자들에게 질문을 받았고 ‘마스크를 전자렌지에 돌려서 재활용할 수 있느냐’는 가벼운 질문부터, ‘격리 기간에 아이들 교육 격차를 어떻게 해소해야 하느냐’는 무거운 질문까지 답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해결 지향 보도에 적응하게 됐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독자들에게 설명할 수 있었고 피드백을 주고 받으면서 우리 스스로 확신을 하게 됐다.”
– 한국도 주요 언론사들이 서울에 집중돼 있고 지역 신문들은 정작 심층적인 보도에 취약하다. 지역 신문사들이 정작 지역 주민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다. 메디아시떼가 지역에서 신뢰와 평판을 구축한 비결이 있나.
“프랑스 언론의 관심도 파리에 집중되어 있고, 탐사 보도 역시 파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거나 전국 단위 이슈를 다룬다. 지역 신문들은 탐사 보도에 투입할 재원이 없다. 이미 20여 년 전부터 지역 기반의 탐사 보도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지방 정부의 권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데 언론의 감시와 비판이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 신문이 그동안 성장했던 건 이런 독자들의 수요에 반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가 독자들에게 보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구독자들의 85%가 우리 신문을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할 의향이 있다고 답변했다. 굉장히 높은 비율이라고 생각한다. 2020년부터 레이더(Radar)라는 섹션을 만들어 지방 정부의 공약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이런 시도가 구독자 확보에 큰 도움이 됐다고 보고 있다.
– 구독자가 5500명인데 아직 부족하지 않나.
“맞다. 매우 어렵다. 팬데믹 기간에 방문자가 크게 늘었지만 팬데믹 관련 기사를 무료로 풀었기 때문에 실제로 유료 구독 증가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나마 2022년에 들어서면서 하락 국면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구독자 감소는 우리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모든 독립 언론이 겪고 있는 현상이다. 독립 언론 메디아파르트(Mediapart)는 구독자가 21만 명 정도 되는데 우리는 5500여 명에 머무르고 있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도 구독자 수가 줄었다. 독립 언론의 전반적인 위기라고 할 수 있다.”
– 매출 구조는 어떤가. 취재 프로젝트 단위로 후원을 받기도 하나.
“여러 경로로 후원을 받고 있다. 물론 후원과 사업 매출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 매출의 89%는 구독자들의 구독료다. 나머지 11%는 협력 언론기관에서 우리의 기사를 구입하면서 지급한 대금이다. 메디아파르트나 TF2(프랑스 공영 텔레비전 채널)가 주요 고객이다. 자금 조달의 경우 우리 회사는 190명의 주주들이 있다. 주로 200유로 가량의 소액 투자를 하고 있는 독자들이다. 그리고 프로젝트별 지원금이 있다. 이 지원금은 당신이 언급한 세계적인 기관 및 단체에서 주는 지원금이 있고, 국가(프랑스 정부)가 주는 지원금이 있는데 이는 혁신적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금이다.”
– 독자들이 기사 기획에 어떻게 참여하는지도 궁금하다. 니스마땅(Nice-Matin)의 경우 기사 아이템 3개를 제안하면 독자들이 투표로 결정한다. 메디아시떼는 독자들과 어떻게 소통하나. 설문조사나 공개 토론으로 충성 독자를 확보했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우리는 독자들의 질문과 비판에 언제나 답변을 한다는 게 원칙이다. 독자들이 매우 간단하게 의견을 전달할 수 있게 만들었다. 둘째, 어떻게 하면 메디아씨떼가 더 나아질 수 있을지 묻는다. 설문을 3개월에 한 번씩 독자들에게 보내서 답변을 듣고 서비스 개선에 활용한다. 이를 테면 지난 1월에 독자들에게 보낸 질문은 우리의 기사를 볼 때 갖게 되는 감정이나 느낌에 대한 것이었다. 셋째, 사안별로 독자들의 의견을 듣는다. 지난해 먹거리에 대한 취재를 할 때는 우리의 계획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독자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고, 무엇을 알고 싶은지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물었다. 당신들 집 주변에 새롭게 연 식당이나 문을 닫은 식당이 있는지, 당신이 보기에 최근에 식당의 종류 및 형태가 변하고 있다고 느끼는지, 유행하고 있는 식당이나 음식이 있는지, 배달 음식점이 늘었는지 줄었는지 등등. 이에 대해 515개의 응답을 받았는데 전체 구독자의 10% 정도다. 이들의 의견이 상당 부분 기사에 반영됐다.”
– 네 지역에서만 서비스한다. 더 확장할 계획은 없나.
“자주 듣는 질문이다. 처음 설립할 때 이 지역을 선택한 건 이 곳에 탐사 보도 매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르세이에는 마르사튀(Marsactu)가 있고 보르도에는 뤼89보르도(Rue 89 Bordeaux) 같은 독립 언론이 있다. 처음 계획은 10개의 대도시를 기반으로 지역 언론을 만든다는 것이었는데 일단 네 군데서 시작했고 계속 확장할 생각이다. 다만 철저하게 지역에 기반한다는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 솔루션 저널리즘을 훈련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있나.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 프랑스 지부의 도움을 받았다. 처음에는 우리 기자들만 교육을 진행했고, 지난해에는 우리 회사 뿐만 아니라 외부 기고자들까지 포함해 35명이 교육을 받았다. 교육 내용은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올해 하반기에는 지역을 직접 방문해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 대표적인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를 소개해 달라.
“두 가지 기사를 소개하고 싶은데 하나는 말부프(malbouffe) 지역 시민들이 양질의 먹거리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실험을 소개한 기사다.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유기농 식재료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해 단순 원조가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유통 루트를 단축시키고 포장 용기 등의 비용을 줄이는 방법으로 가격을 낮췄다. 여전히 정크 푸드보다 가격이 비싸고 가격 장벽이 있지만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실험이었다. 의류를 물물교환하는 ‘그린디팩트(Greendy Pact)’라는 상점의 사례를 다룬 기사도 평가가 좋았다. 물물교환이지만 1회에 4유로의 수수료 또는 연간 회비 179유로로 운영된다. 오픈 2년 만에 회원이 2000명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1만5000개의 제품이 교환됐다. 옷 한 벌에 5000리터의 물이 필요한데, 그린디팩트는 3년 동안 10억 리터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에서 강조하는 확장성(scalability)과 복제 가능성(replicability)을 모두 담고 있는 아이디어였다.”
–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가 구독자 증가에 도움이 됐나.
“어떤 기사가 유료 구독으로 연결되는지 살펴본 바 있는데 탐사 보도 기사와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가 거의 반반이었다.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가 구독 전환율이 더 높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통령 선거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의 대형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 기사가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절망적이라는 지적을 받곤 했다. 그래서 솔루션 기사의 양을 더 늘려야 한다는 내부적인 문제 의식도 있다.”
– 솔루션 저널리즘을 처음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단순히 좋은 기사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진 기사를 써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기자들은 하던대로 하는 익숙한 관행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나이든 기자일수록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나.
“우리가 맞는 길을 가고 있는지 계속해서 토론하고 반문해야 한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얻은 신념은 기후 변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미디어에 대한 불신에 맞서 작은 변화라도 이끌 수 있는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자가 직접 세상을 바꾸는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시선을 바꾸고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아이디어나 에피소드라도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보도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먼저 솔직함과 정직함을 유지해야 하며, 동시에 비판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둘째 언제나 독자들과 함께 가야 한다. 그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솔직하게 설명하고, 취재 과정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