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핵심은 이해관계 충돌, 맥락과 과정을 드러내라.”
[인터뷰] 알프레도 카사레스 스페인 인스티튜토콘스트럭티보 설립자, “솔루션 저널리즘은 탐사 보도의 연장이고 확장.”
덴마크에서 시작한 컨스트럭티브(건설적인) 저널리즘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솔루션 저널리즘의 개념을 확장하고 있다. 인스티튜토콘스트럭티보(Instituto de Periodismo Constructivo)는 스페인에서 언론인들에게 솔루션 저널리즘을 교육하는 비영리 조직이다. 설립자인 알프레도 카사레스(Alfredo Casares)는 마이애미헤럴드와 디아리오나바라(Diario de Navarra) 등에서 탐사 보도 기자로 일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솔루션 저널리즘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실험에 뛰어들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6월29일 알프레도 카사레스를 만났다.
– 스페인에서의 솔루션 저널리즘 실험은 어떤가. 간단히 소개해 달라.
“먼저 미디어오늘의 글로벌 인터뷰에 참여하게 돼 영광이다. 내 생각에 이 프로젝트는 글로벌 무브먼트다. 우리는 서로를 지지하고 연대해야 한다. 우리는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을 스페인에 소개하고 언론인들을 교육하는 비영리 조직이다. 지난해 1월 설립했고 여전히 도전과 실험의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설립 이후 2년 동안 300명 정도의 저널리스트들을 교육했고 주요 대학의 저널리즘 관련 학과 학생들 450여 명을 교육했다. 주요 언론사들이 솔루션 저널리즘을 도입하도록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의 가장 큰 성과는 스페인에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는 거다. 적어도 스페인의 많은 언론인들이 솔루션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고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 인스티튜토콘스트럭티보는 수익 모델이 있나.
“우리는 비영리 조직이고 수익의 60% 정도는 국제 조직의 도움을 받았다. 다른 언론사들의 지원도 있었고 컨설팅과 워크숍 운영으로 매출을 만들기도 했다. 유일하게 풀 타임 직원은 나 혼자고 10여 명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들이 함께 하고 있다.”
–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펠로우십 지원으로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지원 금액이 그리 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실 거의 도움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솔루션 저널리즘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조직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됐다. 혁신 기업가들을 지원하는 아쇼카 스페인에도 연락했다. 아쇼카는 조건이 까다롭고 의미 있는 성과를 요구했다. 도대체 당신들이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당장 조직을 만드는 것보다 조직의 내러티브를 만들고 확장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조직의 기반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됐다. 중요한 건 속도를 만드는 거다. 우리가 모든 언론인들을 설득할 수는 없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컸다. 다행히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는 저널리스트들을 만나게 됐고 이 사람들과 함께 워크숍 프로그램을 실험할 수 있었다.”
– 두 가지 개념을 섞어서 쓰고 있는데 솔루션 저널리즘과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의 차이는 뭔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근본적인 차이는 솔루션 저널리즘은 2012년 무렵 미국에서 출발했고 굉장히 실용적인 아이디어라는 거다. 5가지 가이드라인을 요구하는데 이걸 따르면 솔루션 저널리즘이다. 2015년에 유럽에서 출발한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은 긍정의 심리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포괄하면서 시민의 참여와 사회적 토론을 이끄는 저널리즘이 필요하다는 제안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미국에서도 솔루션 저널리즘의 개념이 좀 더 넓어지면서 지금은 동의어처럼 쓰이는 것 같다. 두 가지 방향이 있는데 하나는 복잡한 내러티브를 끌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문제는 복잡한 이해관계의 충돌에서 비롯한다. 문제 해결의 과정에 다양한 맥락을 반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접근은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이 추구하는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까다롭거나 엄격하다고 생각하는 기자들도 많다. 이건 솔루션 저널리즘이고, 이건 솔루션 저널리즘이 아니고, 이런 구분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까다로운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가이드라인이 진입 장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탐사 저널리즘과 솔루션 저널리즘을 비교하면 우리가 권력을 감시하고 부패와 비리를 폭로할 때 철저하게 사실 확인과 검증, 반론 등의 절차를 요구한다. 기자들은 문제를 엄격하게 다루는데 익숙하다. 솔루션 저널리즘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이야기할 때나 문제에 대한 대응을 이야기할 때나 엄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문제 해결의 과정을 추적하는 탐사 저널리즘이라고 설명하면 좀 더 이해가 빠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솔루션 저널리즘의 형식적 요건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 핵심은 문제 해결의 과정에 집중하되, 근거와 한계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거다. 마법 같은 해법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실패에서도 배울 게 있고 그런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게 솔루션 저널리즘의 중요한 역할이다. 흔히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가 너무 길고 취재에 시간이 많이 드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좀 더 유연한 방식도 고민하고 있다. 좀 더 짧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고 기자들에게도 그렇게 제안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입장벽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시리즈 기사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모든 기사에 솔루션 저널리즘의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 한국의 경우 솔루션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사례가 많지 않아서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도 처음에 그 부분이 어려웠다. 미국이나 덴마크의 기사를 옮겨다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우리는 그래서 기자들에게 직접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를 써보게 했다. 같은 기사에 해결 지향의 관점을 담는 것만으로도 기사의 임팩트가 달라진다는 걸 체험해 보게 하기 위해서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솔루션 트래커에는 수천 건의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가 올라와 있는데 여기도 그렇게 까다롭지는 않다. 확장성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 해결에 이르는 과정에 집중한다는 사실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작은 해법이라도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근거와 한계를 언급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런 요건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과 다르지 않다.”
– 한국에서는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저널리스트가 이런 것까지 해야 돼? 언론의 사명은 진실을 보도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것 아닌가? 문제를 드러내는 게 언론의 역할이고 문제의 해결은 정치의 영역 아닌가? 이런 반응이 많았다.
“우리도 같은 질문을 맞닥뜨리고 있다. 기자들이 그동안 하던 방식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냉소를 극복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그게 가능하겠어? 라고 묻는 언론인들이 많다. 당장 뭔가 더 선정적이고 충격적인 기사를 찾게 된다. 그래야 많이 읽고 온라인 광고 효율도 좋아진다. 기자들도 관행적으로 잘 읽히는 기사를 쓰게 되고 에디터들도 그런 기사를 쓰라고 하게 된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단순히 좋은 이야기와 구분해야 한다는 건 솔루션 저널리즘의 문제 의식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다. 데이빗 본스타인이 경고한 것처럼 당장 누군가를 돕기 위해 집단 청원을 한다거나 후원금을 받아서 전달한다거나 하는 걸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런 접근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고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게 솔루션 저널리즘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기자들이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접근 방식을 바꾸고 인터뷰 대상과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워크숍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설명하면서 무엇이 솔루션 저널리즘이 아닌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첫 번째 기사를 쓸 때까지 구체적으로 기획과 스토리텔링을 함께 고민하는데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게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누구를 찾아가 만날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무슨 질문을 먼저 꺼낼 것인지, 어떤 질문을 더 던질 것인지, 어떤 부분을 더 강조할 것인지, 이런 차이가 중요하다.”
–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에서는 ‘솔루션 사기꾼(imposter)’를 경계하라고도 한다. 많은 기자들이 ‘내가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선언하고 싶은 욕망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기자들이 존경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해결 과정을 추적하기 보다는 해법을 찾겠다고 나서려는 유혹에 빠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부분을 기자들에게 어떻게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의견이 있나.
“기자들을 교육할 때 실제로 부딪히는 고민이다. 문제 해결에 이르는 과정을 보도하는 것과 기자들이 해법을 내놓는 것은 전혀 다른데 둘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기자들이 해법을 만들라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한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하는 일은 문제에 맞서는 과정에서 어떤 실험과 시도, 실패가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것이다. 기자들이 해법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를 테면 미국 콜로라도주에서는 미성년자 임신이 50%가 줄고 미성년자 낙태가 60%가 줄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무슨 변화가 있었고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여기에서 우리가 어떤 아이디어를 얻고 또 활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는 거다.”
– 당신 이야기를 해 달라. 저널리즘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목표를 갖게 된 동기가 있나.
“기자 생활을 하면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건 다른 많은 기자들과 비슷할 것 같다. 권력을 감시하고 부패를 추적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고발하고 등등. 나는 오랫동안 탐사 보도 기자로 일했다. 그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솔루션 저널리즘이란 개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게 저널리즘이라기 보다는 사회 운동이나 시민 활동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에서 트레이너 교육을 받고 아큐멘(Acumen) 펠로우십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난 뒤 솔루션 저널리즘이 새로운 도전이고 사회적 임팩트가 크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문제를 드러내고 책임자들을 고발하는 것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여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다른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 그게 우리가 보도해야 하는 또 다른 반쪽이라고 생각한다.“
– 학생들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던데 당신들이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무엇인가. 기자들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과 다른가.
“기자들을 교육할 때는 솔루션 스토리텔링의 효과를 비교하면서 시작한다. 같은 기사라도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기사의 메시지가 달라지게 된다. 기사 작성 경험이 많지 않은 학생들과 이야기할 때는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가르친다. 둘을 비교하면 기자들을 교육하는 게 훨씬 더 어려웠던 것 같다. 그동안의 관행과 습관을 바꾸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스페인의 한 대학교와 12학점짜리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협의하고 있다. 제안서를 만들고 있는데 400시간 분량의 교육과 실습이 병행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 기자들이 잘 안 바뀔 텐데, 경영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결국 그동안 하던 뭔가를 포기하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문제다.
“저항이 적은 사람부터 시작하면 된다. 솔루션 저널리즘에 관심이 있고 의욕이 넘치는 사람들을 모으는 게 좋다. 워크숍을 해달라는 요청도 많은데 워크숍만으로는 안 된다. 고개를 끄덕끄덕하지만 지나고 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언론사 조직의 문화와 우선 순위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것과 뭐가 다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어떤 변화가 가능하다고 계속해서 설득해야 한다. 우리가 확신하는 건 솔루션 저널리즘이 독자들과 관계를 강화하고 더 많은 수익 기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거다. 의지를 갖고 변화를 실험해야 한다.”
– 다음 계획은 뭔가. 레거시 언론사들을 바꾸는 것인가, 아니면 젊고 혁신적인 저널리스트들을 만드는 것인가.
“일단은 조직을 재단으로 바꾸는 것이다. 후원 기반의 프로젝트를 운영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계였고 훨씬 더 큰 임팩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뭔가를 보여주려면 직접 콘텐츠를 기획하고 발행해야 한다. 레거시 언론사들을 설득하고 교육하는 일도 계속하겠지만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건 젊은 언론인들을 키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