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 지향의 접근, ‘야마’를 버리고 복잡한 내러티브를 끌어내라.
다양한 의견과 관점 담을수록 완전하고 정확한 기사… 의도적으로 다른 의견에 부딪혀라.
한국 기자들은 ‘야마’에 집착한다. ‘야마’는 ‘산(山)’이라는 뜻의 일본 말에서 유래한 언론계 속어지만 단순히 기사의 주제라는 의미를 넘어 기자의 관점이나 프레임의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핵심 메시지를 강조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많다. 정확한 정의도 없고 실체도 모호하지만 ‘야마’가 명확한 기사가 좋은 기사라고 보는 학습된 편견이 한국 언론을 지배하고 있다.
한겨레 기자 박창석은 2012년에 출간한 ‘야마를 벗어야 언론이 산다’에서 “‘야마’를 중심에 두는 한국 언론의 취재 보도 관행은 저널리즘의 본령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면서 “미리 정해진 ‘야마’에 맞춰 사실을 재구성하거나, 보여주고 싶은 내용만 기사에 담거나, 전체 사실의 일부만을 과장해서 보여주거나, 엉뚱한 사실을 특정 사안과 관련 있는 것처럼 엮거나 하는 일은 ‘진실 보도’라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훼손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모든 ‘야마’에는 의도가 숨어있고 ‘야마’가 선명할수록 실체가 가려진다”는 이야기다.
미디어오늘이 솔루션 저널리즘 사례를 취재하면서 만난 여러 언론인들에게 반복해서 들은 조언 가운데 하나가 “내러티브를 복잡하게 하라(Complicates the Narrative)”는 것이었다. 한국 기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결국 ‘야마’를 선명하게 드러내려는 욕심을 버리라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는 해법이라면 근본적인 해법이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실과 의견을 취사선택하고 ‘야마’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맥락이 사라지고 실체적 진실에서 멀어질 위험도 있다.
갈등이 폭발할 때 꿰맞춘 결론은 나쁜 저널리즘.
타임(Time)과 애틀랜틱(The Atlantic) 등에서 탐사 보도 기자로 일했던 아만다 리플리(Amanda Ripley)는 “거짓 단순성의 시대에 복잡성을 되살려야 한다(revive complexity in a time of false simplicity)”면서 “기자와 편집자들은 흔히 미리 결정된 결론에 맞지 않는 인용문을 잘라내거나 깔끔하고 일관된 스토리텔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갈등이 폭발하는 국면에서는 매우 나쁜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고정 관념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불완전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고 “그 장소와 그 사람의 모든 이야기에 참여하지 않고는 장소나 사람과 적절하게 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설명도 흥미롭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건의 전부를 알 수 없고 우리가 잘못 판단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의식적으로 다르게 보고 더 깊게 듣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리플리는 “다양한 의견과 관점을 담을수록 좀 더 완전하고 정확한 기사가 된다”면서 “사람들은 복잡한 내러티브를 맞닥뜨릴 때 호기심을 갖고 다른 생각에 귀를 기울인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호기심을 갖는 만큼 독자들도 사건의 이면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에서 제안하는 ‘복잡하게 쓰기’의 네 가지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다르게 듣는 방법이 필요하다. 아만다 리플리는 ‘루핑(looping)’이라는 질문 방법을 제안했다.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인터뷰이(interviewee)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왜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됐는지 질문을 던지면서 좀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테면 인터뷰이가 ‘절대’나 ‘항상’ 같은 단어를 쓰거나 머뭇거리고 답변을 꺼린다면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부분을 더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하는 게 핵심이다. 인터뷰이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했는지 요약하고 확인을 부탁하면서 반응을 관찰하는 것도 더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둘째, 모순을 파고 들면서 본질을 파악한다. “이 이슈에서 제대로 이야기되고 있지 않은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묻는다. “좀 더 말해주세요”라고 말하고 귀 기울여 듣는다. “그러니까 이런 말씀이시죠?” 인터뷰이의 말을 요약해서 확인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확실하게 만들고 신뢰를 확보한다. 중요한 것은 동의가 아니라 이해다. “제가 이해한 게 맞나요?”라고 물으면서 거듭 확인을 하는 게 좋다.
셋째, 복잡한 내러티브를 끌어들여라. 입장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숨은 맥락을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넷째, 서로의 확증 편향을 깨야 한다. 인터뷰 상대방에게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반대되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해 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뷰어 역시 스스로의 편견을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다른 이야기에 스스로를 노출할 필요가 있다.
‘복잡하게 쓰기’의 핵심은 잘 듣기.
캐나다의 인터넷 신문 나르왈(The Narwhal)의 에디터 샤론 라일리(Sharon Riley)는 폐쇄 직전의 탄광 노동자들을 만난 경험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당초 목적은 정부의 이주 대책에 대한 반발을 취재하기 위해서였지만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 보니 사안이 훨씬 복잡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내러티브 전략에서 중요한 건 우리의 가정과 추론을 체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때 당연히 여기에는 직장을 잃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고 기후 변화에 관심이 없거나 냉소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편견이었죠. 이야기를 해보고는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은 비건(베지테리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자리를 잃게 될 수 있다는 걸 오히려 즐거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오랫동안 탄광에 묶여있다고 생각했고 화석 연료가 우리 모두의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깊게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직장을 잃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완고한 입장인 사람들도 있었고 심지어 기후 변화는 가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는 나의 내러티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가 만든 나의 편견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질문하는 걸 시작할 수는 있다고 말이죠. 만약 내러티브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들고 싶다면 미리 리서치를 해보세요.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해보세요. 그게 여러분의 취재를 더 깊이 있게 만들고 대화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샤론 라일리는 탄광 노동자들이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보수주의자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만나 보니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단계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었다. 캐나다의 경우 석탄이 전력 생산의 9% 미만이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의 75%를 차지한다. 과거에는 탄광이 문을 닫으면 다른 탄광으로 옮겨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화력 발전 의존도를 지속적으로 낮추면서 그나마 잘 돌아가는 탄광들도 철수를 준비하는 상황이다.
라일리가 찾은 와바문(Wabamun)의 경우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석탄 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세수의 58%를 석탄 산업에 의존하고 있었다. 캐나다 정부가 석탄 공장을 폐쇄하는 대가로 14년 동안 10억 달러 이상을 공장에 지급했지만 정작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이 지급되지 않고 있다는 게 노동자들의 불만이었다.
나르왈이 만난 탄광 노동자들은 정부가 2030년까지 석탄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기업들에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에 왜 화력 발전의 온실 가스 배출을 줄이는 기술에 투자하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실제로 캐나다에서 가장 깨끗한 화력 발전소라고 알려진 와바문의 한 발전소는 석탄을 태울 때 발생하는 수은의 60%를 회수하기 때문에 온실 가스 배출량이 재생 에너지 발전소 보다 낮다고 한다.
물론 나르왈의 기사가 풍력이나 태양열 발전소 대신 화력 발전소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단계적으로 화력 발전을 폐지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의미 심장하다. 많은 나라들이 화력 발전소를 단계적으로 줄이면서 노동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사회적 타협의 지점을 찾고 있다. 재생 에너지 분야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노동자들의 재교육을 지원하는 것도 단계적 해법 가운데 하나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이규원 연구원은 지난해 출간한 ‘솔루션 저널리즘’에서 나르왈의 기사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기사에 나타난 한 개인의 이 같은 입체성은 독자들이 문제를 해석하는 이분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진 이들이 불가해한 존재가 아니라 나름의 합리성과 선한 의도를 지닌 존재라고 인식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처럼 갈등 상황과 이에 얽힌 이해 당사자들을 흑백 논리와 몇몇 짧은 단어로 규정하는 습관에서 벗어나면 언론 보도가 사회적 갈등과 집단의 상호 불신을 지속적으로 부추기는 매개로 되풀이되는 과정을 끊어낼 수 있다.”
나르왈의 편집장 엠마 길크리스트(Emma Gilchrist)는 “기자들은 객관적으로 사실을 전달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판단을 내린 상태에서 현장에 접근하거나 정해진 결론에 부합하는 사실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런 유형의 저널리즘은 오히려 정치적 선동과 갈등을 부추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길크리스트는 “내러티브를 복잡하게 만든다는 건 복잡한 사안을 하나로 묶고 싶은 충동에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속도를 늦추고 덜 반응하고 더 많이 듣고 더 나은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도 출신의 독립 저널리스트 프리앙카 샨카(Priyanka Shankar)는 “아만다 라일리의 ‘복잡하게 쓰기’ 강의가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샨카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가 한창일 때 벨기에에서 이 이슈를 다루면서 실험적으로 복잡한 내러티브의 기사를 썼다.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잠재적인 동기를 알아낼 때까지 계속 물어보는 겁니다.” 벨기에 사람들과 콩고 출신 벨기에 이주 노동자들을 교차 인터뷰하면서 인식의 간극과 구조적 차별을 드러내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샨카는 “‘루핑’은 취재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매우 유용하다”면서 “이제는 친구들과도 ‘루핑’을 한다”고 말했다.
갈등은 원래 복잡한 것, 단순하게 규정하려는 욕심을 버려라.
‘복잡하게 쓰기’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한 아만다 리플리는 “우리가 문제를 파고 든다고 할 때 그것은 본질적으로 갈등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누군가의 동기와 관심, 신념, 가치관을 이해해야 갈등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데 이런 정보를 끌어내려면 좋은 질문과 잘 듣는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리플리는 “‘루핑’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 실습을 해보면 첫째, 결코 어렵지 않고, 둘째, 그동안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고 말했다. 리플리는 “이제는 인터뷰 뿐만 아니라 아이와 함께 있을 때나 남편과 이야기할 때나 심지어 우버 기사나 길거리에서 소리치는 아무에게나 ‘루핑’으로 대화를 건네게 됐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양극화가 심화되고 갈등이 격화될수록 많은 중요한 이슈들이 지나치게 단순하게 소비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뉴스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기 쉬운데 격렬한 갈등 상황에서 매우 정상적인 행동입니다. 극단적인 갈등 국면에서는 전통적인 저널리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습니다.”
프레스디모크라트(Santa Rosa Press Democrat)의 기자 존 다나(John D’Anna)는 “갈등은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때때로 갈등이 긴장으로 이어진다”면서 “갈등이 만드는 긴장감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다면 독자들을 다시 불러 올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갈등의 구조를 외면하지 않고 ‘복잡하게’ 접근하는 게 오히려 문제 해결의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영국 BBC에서 ‘분열을 넘어(Crossing Devides)’ 시리즈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에밀리 카스리엘(Emily Kasriel)은 BBC에 솔루션 저널리즘을 소개하고 직접 솔루션 프로젝트를 실험하다가 ‘딥 리스닝(Deep Listening, 깊게 듣기)’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다. 카스리엘은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내 이야기를 누군가가 귀 기울여 듣는다고 생각하면 경계를 풀고 깊은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면서 “우리가 모든 문제에 서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을 배울 수는 있다”고 말했다.
아만다 리플리가 제안한 ‘복잡하게 쓰기’를 위해 필요한 여섯 단계의 체크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1단계, 사안이 지나치게 단순하지 않은가 스스로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갈등 이슈를 다루는데 충돌하는 주장이 두 가지 밖에 없다면 취재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쟁점은 없는 것일까.
2단계, 헤드라인과 리드에 두 가지 이상의 관점을 담는 게 좋다. 적어도 사안이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복잡한 헤드라인은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도 효과적이다.
3단계, 인터뷰할 사람들 목록을 살펴 보면서 다양성이 충분히 반영됐는지 검토해야 한다. 유명한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가? 반대되는 목소리를 충분히 담고 있는가?
4단계, 취재에 앞서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의 사례를 충분히 살펴보는 게 좋다. 다양한 접근과 해법을 검토하면 누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지 누구에게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는지 좀 더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5단계, 줌 아웃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간 축으로 확장하거나 공간 축으로 확장할 수도 있다. 과거 사례와 문제의 원인을 추적할 수도 있고 다른 지역이나 나라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살펴보고 기사에 충분히 반영하는 게 좋다.
6단계, 취재를 마무리 하기 전에 2단계에서 작성한 헤드라인과 리드를 다시 읽어보자. 선입견 없이 제로 베이스에서 여러 의견에 접근했나? 혹시 내가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예단하고 접근했던 건 아닐까?
아만다 리플리에 따르면 ‘복잡하게 쓰기’ 워크숍에 참여한 기자들은 처음에 인터뷰 훈련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자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동의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그렇게 강요 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리플리는 “잘 듣는 것과 동의하는 것은 다르고 우리가 발견한 것은 사람들이 그런 것을 혼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리플리는 ‘복잡하게 쓰기’가 저널리즘의 신뢰 위기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언론이 독자들을 가르치려 하는 태도를 벗어나 다른 의견을 반영하고 숨겨져 있던 쟁점을 드러내고 풍성한 맥락을 제공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때 비로소 떠났던 독자들을 다시 불러 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