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착한 아이디어, 플레이펌프는 왜 실패했나.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논의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솔루션 저널리즘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다음 일곱 가지 유형을 ‘솔루션 저널리즘 사기꾼(imposter)’으로 분류해 경계하고 있다.

가짜 해법을 경계하라.

첫째, 솔루션 저널리즘이 영웅 숭배(Hero Worship)가 돼서는 곤란하다. 세상을 바꾸는 누군가를 소개할 수는 있다. 다만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만든 변화에 집중하고 이런 변화에 필요한 기회 비용을 함께 언급하는 게 좋다. 부정 편향을 극복하자는 제안을 좋은 소식을 마구 부풀려도 된다는 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둘째, 우리는 만능의 은빛 총알(Silver Bullet)을 찾고 있는 게 아니다. 이걸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누가 이렇게 말한다면 일단 의심해 봐야 한다. 크록스(Crocs)는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을 위해 신발을 재활용해 축구공으로 만드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는데 실제로는 운반 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서 실용화되지 못했다. 이런 유형의 기사는 첨단 기술이나 혁신 산업에서 흔히 나타난다. 적정기술에 대한 과도한 기대 역시 마찬가지다. 예산만 있으면 해결된다는 믿음도 위험하다.

셋째, 아는 사람 띄우기(Favor for a Friend)도 경계해야 한다. 기자와 이해 관계가 있는 사람을 취재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원칙에 위배된다. 솔루션 저널리즘도 마찬가지다.

넷째,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제안하는 이른바 싱크탱크 저널리즘도 솔루션 저널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싱크탱크 저널리즘은 따옴표 저널리즘과 함께 언론의 고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다. 대학 교수 코멘트로 끝나는 많은 기사들이 빠지는 함정이다.

다섯째, 뒷북치기(Afterthought)는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적당히 아이디어만 늘어놓는 걸로는 안 된다. 철저하게 근거와 논리로 설명하고 반론과 한계까지 드러내야 한다.

여섯째, 즉흥적 행동주의자(Instant Activist)들을 경계해야 한다. “서명에 동참해 주세요”, “1만 원의 후원금이 세상을 바꿉니다”, 또는 “법이 통과될 때까지 싸우겠습니다”, 이런 결론으로 끝나는 기사들이다.

일곱째, 감동적인 미담 기사는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가 아닌 경우가 많다. 뒷다리를 다친 아기 돼지 베이컨(Chris P. Bacon)에게 휠체어를 만들어줬다는 기사는 따뜻하고 재미도 있지만 여기에서 그칠 뿐이다.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CNN 히어로즈(Heroes) 같은 프로그램을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본스타인은 “그런 건 명절 휴식용 프로그램”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이들의 선행이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오히려 문제를 남의 이야기로 만들고 해결에서 멀어지게 만든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의 역할이 따로 있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기사가 이렇게 세상을 바꾸다니.”

이런 기사들의 함정은 문제의 구조적 접근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과정이 아니라 효과와 결과를 강조하면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수천만 달러의 기부금을 끌어 모았던 플레이펌프(PlayPump)가 대표적인 반면교사로 삼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아프리카 나라들이 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안다. 플레이펌프는 아이들 놀이터의 회전 그네에 물 펌프를 달아서 지하수를 끌어 올리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언뜻 매력적인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처럼 보였고 수천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아 모잠비크 등에 1500대 이상의 플레이펌프가 설치됐다. 문제는 제대로 된 테스트도 하지 않았고 기술력이나 타당성에 대한 검증도 없이 아이디어만 떠돌았다는 것이다.

플레이펌프 아이디어를 처음 세상에 알린 건 미국 공영방송 PBS 기자 에이미 코스텔로(Amy Costello)였다. 나중에 이 기자가 자세한 뒷이야기를 PBS에서 밝힌 바 있다. 다음은 방송 내용을 간단히 요약한 것이다.

에이미 코스텔로는 2005년 아프리카 특파원으로 일하던 도중,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플레이펌프를 소개했다. 플레이펌프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정말 매력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이듬해 한 컨퍼런스에서 당시 영부인이었던 로라 부시(Laura Bush)의 중대 발표를 듣게 됐다. 아프리카에 플레이펌프를 지원하는데 164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는 발표였다. 내 기사가 이렇게 세상을 바꾸다니. 그때만 해도 자부심을 느꼈다. 그 뒤로 그는 콩고와 다이푸르의 내전을 취재하면서 몇 년을 보냈다. 아프리카의 참담한 현실을 지켜보면서 그래도 플레이펌프가 이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건 몇 년 뒤 모잠비크를 방문했을 때였다. 플레이펌프가 엉뚱한 곳에 널브러져 있었고 물 탱크는 텅 비어있었다. 홍보 영상에서는 수백 개의 플레이펌프가 설치돼서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게 됐다고 자랑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모잠비크 정부에 문의한 결과 플레이펌프 100개 가운데 어디에서도 제대로 물을 끌어올린 곳은 없었다. 퍼올리는 물이 너무 적어서 금방 떨어졌거나 아이들이 회전 그네에서 ‘열심히’ 놀지 않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겠지만 분명한 건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 펌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플레이펌프의 실패를 다룬 유니세프 보고서의 표현에 따르면 물을 마시기 위해 강제로 놀아야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놀이가 될 수 없다.

에이미 코스텔로는 “사람들의 의식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기술을 도입하려면 철저한 준비와 계획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따뜻한 아이디어에 기꺼이 돈을 댔지만 이 펌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물론 플레이펌프가 제대로 작동하는 지역도 일부 있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이 번갈아 가면서 회전 그네를 돌릴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여성들은 차라리 손으로 퍼올리는 방식이 차라리 더 나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플레이펌프가 아프리카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유일한 해법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아름다운 해법이 나왔고 돈만 대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순진한 발상이었다.

플레이펌프와 함께 대표적인 적정기술의 사례로 꼽히는 라이프 스트로우(생명 빨대, life straw) 역시 성공 모델로 꼽기에는 아쉽다. 진흙투성이 개울물을 마실 물로 만들어 준다는 혁신적인 기술로 거론됐지만 노동자들 몇 달 임금에 이르는 가격도 부담이었고 필터를 주기적으로 갈아줘야 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무상 원조 덕분에 지역 사회에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첨단 기술을 끼얹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다. 라이프 스트로우는 지금은 등산 레저 용품으로 쓰이고 있다. 유니세프(UNICEF)의 클라리사 브로클허스트(Clarissa Brocklehurst)는 “마법의 총알이나 최고의 기술에 의존하기 보다는 다양한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한 맞춤형 솔루션을 찾는 데 더 많은 역량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전치형은 논문, ʻ소외된 90%, 따뜻한 기술, 최고의 솔루션: 한국 적정기술 운동의 문제의식 비판ʼ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혜택 받은 10%와 소외된 90%라는 기본 인식은 적정기술 활동이 ʻ우리ʼ가 아닌 ʻ그들ʼ의 기술, 더 정확히 말하자면 ʻ그들ʼ이 ʻ가지지 않은 기술ʼ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이때 적정기술자들은 ʻ그들이 가지지 않은 기술ʼ을 대체로 제품이나 장치의 형태로 이해한다.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삶에서 기술의 결핍 또는 부재를 발견하고 그 비어 있는 부분을 적정기술 제품과 장치가 들어가 채워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중략) 제품과 장치 중심의 기술 개념은 ʻ그들이 가지지 않은 제품과 장치ʼ를 발견하고 제공하는 데에 유용하지만 ʻ우리가 가진 기술-사회 시스템ʼ을 성찰하고 변화시키는 것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적정기술자의 역할은 그들을 위한 적정기술 연구와 실천에서 우리 공동의 기술-사회 디자인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솔루션 저널리즘과 행동주의의 경계.

저널리즘과 행동주의의 충돌은 솔루션 저널리즘의 논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질문이다. 문제와 거리를 두지 않고 개입하고 특정 결론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실제로 그런 오해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가디언 기자 피오나 하비(Fiona Harvey)는 6월29일 ‘유럽 사이언스 미디어 허브(Europian Science Media Hub)’ 워크숍에서 “기자들은 모든 사실을 객관적으로 어떤 두려움이나 호의도 없이 조사하고 검증해야 한다”면서 “활동가가 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활동을 선택하면 더 이상 언론인이 아니며 그것을 인정하고 독자들에게 정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는 활동가이면서 기자인 척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이야기다.

이코노미스트 기자 알록 자(Alok Jha)는 “저널리즘과 행동주의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기자들은 기사의 의도를 투명하고 정직하게 밝혀야 한다”면서 “철저하게 근거에 기반해야 하고 한계를 명확하게 언급하면서 독자들이 우리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독립 저널리스트인 루 델 벨로(Lou Del Bello)는 “우리에게는 여전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왜 일어나는지 설명하는 저널리즘이 필요하다”면서 “여전히 해법을 찾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기후 변화 같은 복합적인 문제를 다룰 때는 문제를 단순화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루한 솔루션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도 간과하기 쉬운 대목이다. 확장성과 복제 가능성은 솔루션 저널리즘의 중요한 기준이다. 이를 테면 승용차의 탄소 배출 기준은 식상하고 당장 효과가 나타날 것 같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확실하게 효과가 있고 인도 같은 개발도상국으로 계속해서 확산되고 있다.

프리랜서 기자 피터 영(Peter Yeung)은 “모든 이야기에 해결 지향의 관점을 담을 수는 없다”면서 “명확한 해법이 없는 문제에 접근할 때는 아직 시도되지 않았지만 가능한 해법을 소개하거면서 이것이 왜 효과적일 수 있고 왜 아직 구현되지 않았는지 언급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모든 이야기에 솔루션 앵글을 포함시키려는 열망은 기자들이 복잡한 내러티브를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의미심장하다. “최악의 경우 일회적이거나 효과가 없는 아이디어를 내세워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잘못 보도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해법으로 포장된 그린 워싱(green washing)이나 홍보 기사도 경계해야 한다.

덴마크 DBS(Danish Broadcast Corporation)의 크리스토퍼 포키아(Kristoffer Frøkjær)는 “활동가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정보의 출처를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문제 해결을 다룬다고 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버려서는 안 된다. 문제 해결 과정을 기록하되, 출처가 어디인지, 제대로 작동하는지 여부를 밝히고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볼프강 블라우는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보가 제공될 경우 문제 해결에 참여하겠다는 선호가 늘어난다는 많은 연구 결과가 있다”면서 “저널리스트의 주요 임무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지만 문제와 위험에 대해서만 보도하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는다면 저널리스트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볼프강 블라우는 “불행하게도 많은 언론인들이 솔루션 저널리즘이 현실을 코팅하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한다”면서 “솔루션 저널리즘이나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을 별개의 저널리즘이나 운동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된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을 강화하기 위한 도구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해결 지향의 접근, 편집자들을 설득하는 방법.

‘솔루션 저널리즘 네트워크’의 공동 설립자 가운데 한 사람인 티나 로젠버그는 오랫동안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남미와 동유럽을 돌면서 가난과 질병, 독재, 고문, 인권 유린 등을 취재했고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다음은 지난 10월10일 로젠버그의 스토니브룩 저널리즘 스쿨에서의 강연 가운데 일부다.

“그때 제가 보도했던 건 달리 말하면 미국에 있는 우리가 그곳에 대해 갖는 고정 관념을 확인한 것이었습니다. 저의 사명은 우리의 그런 고정 관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사실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어쨌거나 저는 성공했습니다. 프리랜서로서 밥벌이를 했고 상도 많이 받았고요. 1997년 뉴욕타임스에서 에디터로 일하게 됐을 때도 대부분의 기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저널리즘은 문제를 드러내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뭔가를 폭로하면 누군가가 뛰어들어서 문제를 해결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해결되는 문제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괜찮았어요. 저는 실력 있는 기자로 인정 받고 있었고 뭔가를 다르게 해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종류의 영향력이나 고정 관념을 넘어 서로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거란 생각, 제가 쓴 글을 읽는 사람들과 제가 연결될 수 있을 거란 생각, 세상에 진실로 정확한 거울을 제공할 수 있으리란 생각 말이죠.”

문제에서 벗어나자는 제안이 아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 중심의 보도에서 벗어나자는 제안이 아니라 문제 중심의 보도가 전체 그림을 다루지 못한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다. 로젠버그가 해결 지향의 접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브라질의 에이즈 치료제를 둘러싼 논란을 다루면서였다.

“1995년에 에이즈 치료제가 출시됐는데 약값이 1년에 최대 2만 달러였습니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에서 이런 약은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이런 사실이 미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죠. 제약 산업과 워싱턴의 결탁이 있었고요.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특허를 무시하고 복제약을 만드는 나라들이 있었지만 미국 정부가 정치적으로 강력한 압박을 했죠. 이런 내용으로 기사를 쓰겠다고 했더니 편집자가 반대했습니다. 말라위의 에이즈 환자들에게 누가 관심을 갖겠느냐는 거죠. 재미도 없고 독자들이 이런 우울한 이야기를 읽고 싶지 않을 거라고요. 집에 가서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뒤집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제약을 만들어서 무료로 나눠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미국과 맞장을 뜨면서 말이죠. 브라질의 사례를 다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무엇이 문제고 무엇이 해결됐는지, 그리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지 말이죠. 저는 기사에서 브라질 정부의 특허 위반이 옳은 일이라고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브라질은 했고 다른 나라들은 못했는지 궁금하잖아요. 그런데 이 기사가 훨씬 더 잘 읽혔습니다. 사람들은 말라위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브라질에서는 복제약 덕분에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몰랐거든요. 기사의 파장도 컸습니다. UN에서 에이즈와 말라리아 등의 치료제 개발에 글로벌 펀드를 만들기로 했고요. 당연히 제약회사들은 반대했죠. 내성이 생겨서 나중에 치료제가 안 듣게 될 거라는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쓴 기사에서는 이런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그래서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가난한 나라에 어떻게 에이즈 치료제를 보급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브라질처럼 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게 됐죠. 그리고 많은 나라들이 브라질을 벤치마킹했습니다.”

로젠버그는 이 기사 이후로 편집자가 반대하는 주제를 다룰 때면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대한 부정확한 이미지를 퍼뜨리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로젠버그는 “밝고 따뜻한 이야기를 쓰자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미완의 해법, 그라민 은행의 경험.

또 다른 공동 설립자인 데이빗 본스타인은 1992년 뉴욕타임스에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을 소개하는 기사를 쓰면서 변화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라민은행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인 것처럼 보였지만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가난한 여성들에게 담보 없이 돈을 빌려줬는데 대출 상환율이 96%나 됐고 이 가운데 60%가 가난을 벗어났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라민은행이 유명세를 타면서 마이크로 크레딧(소액 대출)이 빈곤 탈출에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그라민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사람 가운데 55%가 빌린 돈으로 사업을 하기보다는 당장 생활비에 써버렸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실제로 그라민은행의 대출 금리가 최대 50% 가까이 됐기 때문에 고리대금업과 다를 게 뭐냐는 비판도 있었다.

데이빗 본스타인은 2017년 오픈마인드와 인터뷰에서 “그라민은행에 대해 썼던 글을 거의 대부분 수정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본스타인은 “저널리스트가 해법을 말할 때는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철저하게 근거로 이야기하고 결과 보다는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1년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마이크로 크레딧이 빈곤 감소에 효과가 있다는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고 시인하면서 “결론이 혼란스러워 보인다면 마이크로 크레딧 자체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뉴욕대학교 교수 조나단 모덕(Jonathan Morduch)은 “하루에 1~2달러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하루에 1~2달러를 벌지 못한다는 것”이라면서 “어떤 날은 5달러를 벌고 2주 동안은 아무런 벌이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1~2달러는 평균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도전은 예측 불가능한 일상적인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최소한의 현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고 “마이크로 크레딧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서비스라 실제로 강력한 효과를 갖는다”는 설명이다.

본스타인은 “소득이나 가계 지출 같은 지표만 보면 실제로 가난에서 벗어났다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많은 여성들에게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어 주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거나 하루 세 끼 규칙적인 식사를 하거나 사업 자금을 마련하는 등 일상 생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데 효과가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본스타인은 “우리는 특정한 아이디어를 옹호하거나 밀어붙이려는 게 아니라 문제에 대한 대응과 그 결과를 기록하는 것”이라면서 “실제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거나 가설이 잘못됐다면 뒤늦게라도 수정하고 그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렌즈를 옮겨라.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흔한 오해 가운데 하나는 그라민 은행의 경우처럼 획기적인 해법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근본적인 해결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솔루션 스토리텔링의 세 가지 팁을 제안하고 있다.

첫째, 렌즈를 옮기라(Shift your lens)는 것이다. 기자들은 흔히 “피가 흐르면 기사가 된다(If it bleeds, it leads.)”고 말하곤 한다. 지금까지 문제를 추적하는 데 집중했다면 한 번쯤 이런 문제가 해결되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여 보라는 이야기다.

둘째, 문제의 작은 조각에 집중하라(Focus on a small slice of a problem)는 것이다. 기후변화라는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없다. 더 작게 쪼개고 더 가볍게 시작해도 좋다. 먼저 자동차 통행량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고 도심 지역에 혼잡 요금제를 도입한 런던과 뉴욕의 경험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호기심을 따라 가라(Live a life of curiosity)는 것이다. 궁금한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프리랜서 기자 크리스 말로이는 “우울하고 슬픈 이야기를 취재하는 건 힘들고 지치는 일”이라면서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해법에 이르는 과정을 추적 보도하는 건 기자로서도 큰 보람이었다”고 말했다.

솔루션 저널리즘 툴킷(tool kit)에는 언론인들의 다양한 경험이 소개돼 있다. 퍼블릭라디오인터내셔널의 마이클 스콜러는 “가장 어려웠던 건 해법엔 관심이 없고 문제 자체에 집중하는 기자들의 문화였다”면서 “문제나 갈등 보다는 대안에 집중하도록 하는 본능의 변화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페이엇빌옵서버의 마이클 아담스는 “데스크가 솔루션 저널리즘에 매우 회의적이었느지만 첫 번째 기사를 쓴 뒤에 완벽하게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시애틀타임스의 캐시 베스트는 “우리는 독자들과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게 됐다”고 말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기사 작성의 새로운 대안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기사에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문제에 기반한(problem-based) 기존의 기사 작성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도를 추가하라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단순히 사실을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지역에서 더 나은 대안을 실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의미죠.”

다음은 지난 2월10일 솔루션 저널리즘 네트워크의 온라인 워크숍 가운데 각각 로젠버그와 본스타인의 답변 일부다.

“기후 위기와 같은 큰 문제는 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럼 저는 전구나 갈자고 말합니다. 5톤짜리 문제에 5온스짜리 해법이죠. 이런 걸로 세상이 바뀌겠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더 근본적인 해법이 없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데이터를 찾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문제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데이터베이스를 살피는 거죠. 그걸 작은 조각들로 나눕니다. 기후 변화는 크죠. 그럼 작은 조각으로 자르세요. 분리 수거 이슈도 있고 친환경 에너지 전환도 있고 산호초나 생물 다양성 문제도 있고요. 수많은 작은 조각들이 있을 거고 각각의 데이터가 있습니다. 누가 더 잘하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여기에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변화가 있는지 조사하는 겁니다. 적절한 무게의 기사 거리를 찾는 거죠.”

“우리는 저널리즘이 피드백 시스템이라고 말합니다. 사회가 스스로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도록 피드백을 줘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저널리즘이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를 다루는 언론 보도 가운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다룬 기사는 5%도 채 되지 않습니다. 만약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내가 얼마나 아픈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95%고 치료에 대한 이야기가 5% 밖에 안 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다른 병원을 찾아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좀 더 자세히 묻고 싶겠죠. 기후 위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어떤 변화가 가능할까요? 이런 질문이 필요할 것입니다.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문제에서 그치면 안 됩니다. 기후 위기가 얼마나 급박한 문제인지 강조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동시에 신뢰를 확보해야 합니다. 완화(mitigation)와 회복력(mitigation)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고요. 아니면 불안과 공포는 냉소와 방관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나쁜 뉴스의 해독제가 아니다.

지난 4월6일 이탈리아 페루자에서 열린 국제 저널리즘 페스티벌(International Journalism Festival)에서 도이체 벨레(Deutche Welle)의 기자 아지트 니란잔(Ajit Niranjan)은 “솔루션 저널리즘을 부정적인 뉴스에 대한 해독제로 보는 시각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나치게 절망과 공포를 부추기는 것도 옳지 않지만 일부의 해법을 지나치게 포장하는 것도 위험하다. 실제로 대부분 사람들은 지나치게 절망하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냉소적인 태도를 버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음은 아지트 니란잔이 소개한 솔루션 기사를 다룰 때 편집자가 해야 할 네 가지 질문이다.

첫째, 이 해법이 보도할 가치가 있는가. 여기에 구체적인 인사이트가 있는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면 잘못 전달할 위험이 있다.

둘째, 이 해법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과 이야기해 봤나. 실제로 구체적인 영향과 변화, 드러나지 않는 한계를 확인할 수도 있다.

셋째, 이 해법이 완전히 성공하는 데 장애물이 되는 게 있나. 특정 환경에서만 효과적일 수도 있고 정부 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거나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 외부적인 변수가 있을 수도 있다.

넷째, 이 해법이 문제의 어떤 부분에 대응하는가. 문제의 원인과 증상에 대한 대응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문제를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잃어버린 엄마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죽음이었다.

“We don’t pay enough attention(우리는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산부인과 병원 간호사였던 로렌 블룸스타인(Lauren Bloomstein)은 그가 일하던 병원에서 자연 분만으로 딸을 낳은 뒤 20시간 만에 숨졌다.

미국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산모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2000년까지만 해도 산모 10만 명 가운데 9.8명이 죽었는데 2014년에는 21.5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프로퍼블리카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에서 아이를 낳다가 죽거나 아이를 낳은 직후 죽은 여성이 1년에 최대 900명에 이른다. 미국 여성들을 캐나다 여성들보다 출산 이전 1년에서 출산 이후 1년 사이에 죽을 확률이 세 배나 높다. 스칸디나비아 나라들과 비교하면 여섯 배나 높다.

프로퍼블리카는 2016년에 출산 전후로 사망한 산모 134명을 추적 조사해서 ‘Lost Mothers(잃어버린 엄마들)’라는 연속 기획 기사를 내보냈다. 기자들이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뒤지면서 산모 사망 사건의 사례를 수집했고 가족들을 접촉해서 설득을 하고 구체적으로 사망 원인을 추적해서 분석 기사를 작성했다. 미국의 경우 산모 사망의 13%가 출산 6주 이내에 발생하는데 이 가운데 60%는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실제로 6만5000명 정도의 여성이 출산 전후로 심각한 위기 상황을 맞는다고 한다. 영아 사망률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데 산모 사망률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그 원인도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

로렌 블룸스타인의 사망 원인은 흔히 임신 중독이라고 부르는 자간전증(pre-eclampsia)이었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자간전증으로 죽는 경우가 흔치 않지만 미국은 여전히 해마다 50명 이상 사망 사고가 발생하고 있었다.

개별 사건이 아니라 사건이 연결되는 방식과 구조를 읽어야 한다.

프로퍼블리카와 인터뷰한 한 산부인과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맙소사, 우리는 환자들에게 산후 건강 관리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훈련 받지 않았어요. 병원에서는 산모가 아니라 아기에게 관심을 집중했죠.”

실제로 로렌 블룸스타인의 병원에서는 신생아가 위독하다고 판단되면 중환자실로 옮기는데 산모들은 갑자기 치명적인 상황을 맞게 되더라도 전문적인 대응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미국 전체를 봐도 고위험군 아기를 위한 병원은 있었지만 고위험군 산모를 위한 병원은 없었다. 산모들은 퇴원을 앞두고 아이가 아플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을 받았지만 스스로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 아이를 낳을 때는 통증이 따르기 마련이고 아기를 낳고 나면 자연스럽게 치유된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다.

로렌의 죽음은 비극이 어떻게 반복되는가에 대한 몇 가지 힌트를 준다. 마침 그날은 토요일 오후였다. 주말에 출산하는 산모는 사망 확률이 50%나 더 높다. 출산 한 시간 뒤 로렌의 혈압은 160/95까지 치솟았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때부터 평소보다 혈압이 높았지만 병원은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영국은 고혈압 병력이 없는 산모의 혈압이 140/90을 넘으면 자간전증을 의심하고 수축기 160을 넘으면 최대한 빨리 황산마그네슘 치료를 시작한다는 등의 지침이 있었만 로렌의 병원에서는 180/110을 컷오프 기준으로 두고 있었다.

로렌은 출산 직후 “기분이 좋지 않다(I don’t feel good)”고 말했다. 가슴에 심한 통증이 있었고 식사를 하지 못했다.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로렌의 남편이 혹시 자간전증이 아니냐고 물어봤지만 의사는 식도염증 같다고 판단했다. 제산제와 진통제를 투여했으나 모두 토해냈고 상태가 악화되자 뒤늦게 자간전증 테스트를 했지만 진단 기준을 넘지 않았다. 가슴에 통증이 있고 혈압이 치솟을 경우 자간전증을 의심해야 한다는 지침이 있었지만 실제로 현장에서는 단순히 예 아니오로 판단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산모 사망의 원인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로렌의 경우 자간전증 진단을 받은 건 4시간이 흐른 뒤였다. 혈압이 197/117까지 치솟았고 급기야 바빈스키 검사에서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의사가 “희망이 있다”고 말했지만 로렌은 뇌출혈을 일으켰고 뒤늦게 신경외과 전문의가 도착해 수술 준비를 했지만 이제는 혈소판이 부족했다. 다른 병원들에 수소문을 했지만 혈소판이 도착하기까지 다시 몇 시간이 흘렀다. 로렌의 죽음은 단순한 의료 사고가 아니라 시스템의 실패였다.

프로퍼블리카는 단순히 비극을 중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스템의 문제를 파고 들었다. 부부가 모두 병원에서 근무했던 로렌은 다른 산모들과 비교해서 의료 접근성이 훨씬 높은 편이었다. 최고의 동료 의료진들이 로렌을 돌봤고 특별 대우를 받았다. 문제는 로렌 같은 사람들도 속수무책으로 죽음에 이를만큼 시스템이 취약하다는 데 있다.

로렌의 죽음 이후 조사가 진행됐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보고서에서는 간호사들이 혈압을 제때 체크하지 않았고 과거 의료 기록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했을 뿐 결국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진의 실수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이 사건은 간호사들에게 산전 기록과 혈압을 비교하고 4시간 마다 바이탈 사인을 확인하라는 등의 원론적인 교육을 받게 하는 것으로 별다른 징계 없이 끝났다. 특별히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봤다는 이야기다.

영국은 달랐다.

렌셋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자간전증으로 죽는 산모가 1시간에 5명 꼴이다. 프로퍼블리카에 따르면 영국의 대응은 달랐다. 앤드류 셰넌은 “자간전증으로 인한 죽음을 피할 수 있는가(Are most maternal deaths from pre-eclampsia avoidable)”라는 논문에서 “영국에서 아이를 낳는 일이 훨씬 더 안전해졌다(Being pregnant in the UK has never been safer)”고 평가했다. 자간전증 사망자 가운데 63%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고 “의심할 여지 없이 피할 수 있다(undoubtedly avoidable)”는 이야기다.

프로퍼블리카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산모 사망 사건이 문제가 되자 관련 사건을 전수 조사하고 의료 기록을 수집해서 데이터를 분석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필요하다면 공개 심문을 열어 병원과 의료진이 직접 해명을 하도록 했다. 영국은 자간전증 사망자가 2012~2014년 3년 동안 2명으로 줄었다. 사망률은 100만 명당 1명. 반면 미국은 자간전증으로 죽는 산모가 여전히 1년에 50~70명, 전체 산모 사망의 8%를 차지했다.

뒤늦게 미국에서도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이 산모 사망을 줄이려는 노력이 시작됐다. 캘리포니아주 산부인과 의사들의 연구 모임인 CMQCC(California Maternal Quality Care Collaborative)는 출혈과 자간전증의 경우 각각 70%와 60%의 비율로 예방 가능하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들이 제안한 해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응급 수술 도구를 담은 출혈 카트를 둔다. 다섯 개의 서랍이 달린 바퀴달린 빨간색 카트 안에 바크리 풍선과 IV라인, 산소 마스크 등의 모든 필요한 장비를 담았다. 둘째, 간호사나 의사가 감으로 판단하지 않도록 혈액을 수집해서 무게를 측정하도록 한다. 스폰지와 패드의 무게를 알고 있기 때문에 거의 정확하게 출혈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셋째, 위기 프로토콜을 만들고 반복해서 훈련한다. 황산마그네슘만 제때 투여했어도 로렌은 충분히 살 수 있었을 것이다.

NPR 보도에 따르면, 실제로 이런 툴킷을 채택한 병원들은 1년 만에 사망률이 21% 줄어들었다. 툴킷을 채택하지 않은 다른 병원들이 1.2%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확실한 변화였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캘리포니아의 산모 사망률은 55%나 줄어들었다. 2018년 6월 기준으로 캘리포니아의 산부인과 병원 가운데 88%가 이 툴킷을 활용하고 있는데 전체 출산의 95%를 차지하는 규모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게 프로퍼블리카의 지적이다. 많은 의사들이 이런 가이드라인을 ‘cookbook medicine(요리책 의학)’라고 불렀다. 실제로 의료 현장에서는 돌발 사건이 쏟아지기 마련이고 “설탕 세 스푼에 우유 반 컵”처럼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하면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러 가지 다른 방식을 그때그때 뒤섞는 것보다 표준화된 방식을 선택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레시피를 도입하라고 설득하는 전문가들과 현장의 감에 자부심을 갖는 의사들의 갈등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특히 작은 병원들을 설득하는 게 더 어려웠다고 한다. 1년에 500명의 아이를 받는 병원에서는 몇 년 동안 산모 사망 사고가 한 건도 없을 수도 있지만 향후 10년 안에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고 보는 게 맞다.

프로퍼블리카와 NPR이 공동으로 기획한 이 시리즈는 솔루션 저널리즘의 사례로 소개되는 기사는 아니지만 몇 가지 중요한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첫째,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둘째, 구조를 이해해야 하지만 개별 사례에서 출발해야 한다. 셋째,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서 만나고 무엇이 차이를 만드는지 추적한다. 넷째, 데이터로 입증해야 한다. 다섯째, 한계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전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실수와 실패를 피하려면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라.

외과 의사인 아툴 가완디는 체크리스트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다음은 아툴 가완디의 뉴요커 기고 가운데 일부다.

“우리는 단순한 문제들에 둘러싸여 있다. 의학에서는 카테터를 삽입할 때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든지 심혈관 모니터에 일직선으로 가로줄이 나타나는 심장마비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칼륨 과잉 투여라는 것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든지 등이 바로 단순한 문제에 속한다. 법률 업무에서는 탈세 사건을 변호하는 주요 방법을 모두 기억해 내지 못했거나 다양한 법정의 마감 시간을 잊어버렸을 때 이런 단순한 문제가 생긴다. 경찰 업무에서는 목격자가 용의자의 얼굴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한 줄로 정렬시키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목격자에게 줄을 선 사람들 중에 용의자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을 깜박 잊어버리고 하지 않았거나 목격자가 있는 자리에 용의자와 안면이 있는 사람을 동석시키는 등 단순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체크리스트는 이처럼 기본적인 실수를 막을 수 있도록 해준다.”

세상의 모든 문제가 이렇게 단순하고 이렇게 간단한 아이디어로 해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캐나다 요크대학교 교수 브렌다 짐머만(Brenda Zimmerman)은 세상의 수많은 문제들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간단한 문제와 복잡한 문제, 복합적인 문제다. 이를 테면 케이크를 굽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문제다. 달에 로켓을 보내는 건 복잡한 문제고, 아이를 키우는 건 복합적인 문제다. 로켓을 쏘는 건 복잡하지만 한 번 성공하고 나면 그대로 반복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다르고 날마다 다른 사건이 발생한다. 무엇보다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체크리스트가 필요한 것이다.

가완디는 “복잡한 일을 많이 처리해야 하는 현대인이 실수와 실패를 피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체크리스트”라고 강조한다.

가완디에 따르면 미국에서 수술 도중 죽는 사람이 15만 명인데 이 숫자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의 세 배 규모다. 가완디는 병원에 제대로 된 체크리스트만 있어도 의료 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거라고 제안했다. 가완디는 “현대 의학도 B-17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4만 명 이상의 외상 환자들을 조사한 한 연구에서는 1224가지 증상을 포함한 3만 2261건의 조합이 있었다. 가완디의 표현에 따르면 3만 2261대의 완전히 다른 비행기를 착륙시키는 것과 같은 모험을 일상적으로 치러야 한다.

뉴요커의 기사가 2007년 기사라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란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에, 그리고 기자가 아닌 의사가 솔루션 저널리즘의 모델 같은 기사를 쓴 것이다. 단순히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문제에서 해법의 아이디어를 얻고 작은 변화를 끌어내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원칙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아이디어는 지나치게 단순해서 오히려 설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가완디에 따르면 의사들은 체크리스트가 필요하다는 프로보노스트의 제안을 불쾌하게 생각했다. 한 의사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서류 나부랭이는 치우고 환자나 치료하죠.”

피터 프로노보스트가 시나이그레이스병원 경영진을 처음 만났을 때 체크리스트를 도입하라고 요청하는 대신 카테터 감염 비율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확인해 봤더니 전국 평균을 웃도는 수치였다. 그때서야 이 병원도 ‘키스톤 이니셔티브’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그룹에 참여하기로 했다. 병원마다 프로젝트 매니저를 두고 한 달에 두 번씩 전화회의를 하는 모임이었다. 병원 경영진은 처음에는 투덜거렸지만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카테터 감염 사고를 절반 이하로 줄인 피터 프로노보스트의 실험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 http://www.solutionjournalism.kr/story/2831)

많은 병원에서 경영진과 의사들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경영진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걸 좋아하는 의사는 없다. 그런데 클로르헥시딘이 비치된 집중치료실이 3분의 1도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클로르헥시딘 구입 예산을 늘리고 새로운 의료 장비를 개발하는 등 변화가 시작됐다.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따르면 미시간주에서 ‘키스톤 이니셔티브’ 프로젝트에 참여한 병원들은 18개월 만에 1억 7500만 달러의 비용을 절감하고 1500명 이상의 환자들의 목숨을 살린 것으로 평가했다.

기후 변화, 충격과 공포를 넘어 해법과 행동을 이야기하자.

종말론적 프레임이 문제 해결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멈춰야 한다’에서 ‘시작해야 한다’로 프레임을 바꿔라

“이러다가는 다 죽어. 제발 그만해.”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의 대사 가운데 일부다. 11월9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마련한 ‘KPF 저널리즘 컨퍼런스’ 기조 강연에서 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은 오일남의 대사를 인용하면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연못에 물벼룩이 있는데 한 번 분열할 때마다 두 배가 된다고 가정해 봅시다. 1분 마다 두 배씩 늘어 어느 새 연못의 절반이 찼습니다. 최재천 같은 물벼룩이 나서서 ‘이러다 다 죽는다’고 했더니, 다른 물벼룩들이 ‘아직 이렇게 공간이 많은데 뭐가 문제냐’고 합니다. 멸망의 순간이 1분 밖에 안 남았는데 ‘기술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줄 거다’ 이런 타령을 하고 있습니다. 내일 멸망이 닥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인데 말이죠.”

최재천은 “기후 변화 회의론자들에게는 빼도박도 못할 증거를 보여줘도 말이 안 통한다”면서 “그래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고 비유의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기자 신혜정은 이날 토론회에서 “독자들은 양질의 기사가 없다고 하고 기자들은 써도 안 읽는다고 하는데, 눈에 잘 띄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기사와 언론이 선호하는 방식과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기후 변화 보도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이태원 참사 같은 큰 사건이 터지면 기후 이슈가 뒤로 밀리는 경우가 많은데 기후 이슈가 정치, 경제, 사회 이슈보다 덜 시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실제로 당장 나가야 하는 게 아닌 것도 맞다”고도 말했다.

기후 위기 보도,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10대 후반부터 60대까지 한국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4.7%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고 답변했고 67.8%는 “언론의 기후 보도에 문제가 있다”고 답변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부정적 결과와 피해의 심각성은 잘 다루는 편이지만(63.4%), 제도적·정책적 해결 방안 등은 잘 다루지 못하는 편(67.1%)이라는 답변도 눈길을 끌었다.

신혜정은 “독자들은 기후 변화의 해결책을 듣고 싶어한다”면서도 “기후 변화는 선과 악이 구분되지 않고 단일한 책임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자들이 흔히 하는 말로 야마가 뾰족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책임자를 찾기 보다는 더 나은 해결책이 뭔가를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기후 변화 저널리즘의 문제는 단순히 기사가 부족하거나 취재 인력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기사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언론사가 의제 설정을 주도할 수도 있겠지만 열독률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편집의 우선 순위에서 뒤처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현장 기자들의 하소연이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원 진민정은 결국 뉴스룸의 우선 순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프랑스의 AFP는 2019년 기후 변화를 뉴스룸의 우선 순위로 정하고 ‘지구의 미래(The Future of The Plenet)’ 서비스를 시작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203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하고 화석 연료를 채굴하는 기업의 광고를 싣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Columbia Journalism Review)’는 “탁월한 기후 변화 보도가 지금까지 가디언에서 나왔다”면서 “가디언은 세계적 문제인 기후 변화의 과학적,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보건상의 측면을 강력하고 명확하게 보도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BBC는 ‘퓨처 플래닛(Future Planet)’이라는 버티컬 섹션을 두고 솔루션 저널리즘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2010년대 후반까지 기후 침묵(climate silence)이라고 부를 정도로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지만 비영리 언론사 중심으로 기후 변화를 다루는 보도 늘어나면서 2020년대 들어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에서 기후 변화 섹션을 마련하고 전담 기자를 두는 등 전면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반복된 문제, 새롭지 않다고?

옥스포드 기후 저널리즘 네트워크(Oxford Climate Journalism Network) 공동 설립자 볼프강 블라우(Wolfgang Blau)은 위스콘신대학교 언론윤리센터와 인터뷰에서 “기후 담당 기자들과 이야기해 보면 기후 변화 보다 더 중요한 다른 주제가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면서 “데스크들은 황금 시간대에 예정된 기사를 출고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데스크들은 새로운 게 뉴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기후 변화는 이미 새롭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기후 변화 이슈는 지난해에도 있었고 내년에도 여전히 남아있을 텐데 왜 굳이 오늘 그 이야기를 써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흔히 기상 이변을 더 중요하게 다루기도 합니다. 당장 그 언론사가 있는 지역의 홍수 피해가 몇 년 뒤에 닥칠지 모르는 기후 재난 보다 더 심각하게 다뤄지죠. 기상 이변은 단순하지만 기후 변화는 인과 관계가 복잡하죠. 남극에서 커다란 빙산이 무너졌다거나 사상 최악의 산불이 났다거나 하면 기사가 되지만 중요한 과학적 연구 결과는 거의 뉴스에 나오지 않거나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IPCC 보고서 같은 게 발표됐거나 어쩌다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때가 그나마 이벤트가 되죠.”

뉴요커 기자 엘리자베스 콜버트(Elizabeth Kolbert)는 ‘콜롬비아 저널리즘 리뷰’와 인터뷰에서 “세상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는 기사를 반복해서 쓰기는 정말 어렵다”면서 “날마다 쓸 수는 있지만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고 독자들은 우울하고 답이 없는 뉴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기자들 스스로도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건 알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이야기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있다”는 이야기다.

‘콜롬비아 저널리즘 리뷰’는 “기후 저널리즘이 ‘진짜다(It’s Real)’ 시대에서 ‘나쁘다(It’s Bad)’ 시대를 지나 솔루션의 시대(the solutions era)에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나쁘다’ 시대는 오랜 ‘진짜다’ 시대의 투쟁의 결과였다. 한 때 기후 위기가 거짓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기후 위기를 전면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얼마나 나쁜 상황인지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단순히 나쁘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끌어내기에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진단이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산불이 꺼지지 않고 사상 최악의 폭염에 생물 다양성 붕괴와 식량 위기 등 재앙이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 훨씬 더 큰 재앙이 닥칠 거라는 언론 보도가 쏟아지고 있지만 이렇게 사람들을 겁주는 것만으로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예일대학교 환경대학원 앤서니 라이세로위츠(Anthony Leiserowitz) 등이 미국 국민들의 지구 온난화에 대한 인식을 조사해 6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바 있다.
– ‘The Alarmed(깨우친 사람들)’는 지구 온난화가 진행 중이라고 확신하고 인간이 초래한 심각한 위협이라는 사실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 ‘The Concerned(우려하는 사람들)’는 지구 온난화가 심각한 위협이라고 생각하고 기후 정책을 지지하지만 당장 영향을 미치는 급박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후 변화 이슈가 상대적으로 우선 순위에서 밀려 있다.
– ‘The Cautious(신중한 사람들)’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사람들이다. 지구 온난화가 일어나고 있나요? 사람이 원인인가요? 심각한 건가요? 등의 질문을 한다.
– ‘The Disengaged(동떨어진 사람들)’는 지구 온난화에 관심이 없거나 거의 모른다. 언론 보도도 찾아보지 않는다.
– ‘The Doubtful(의심하는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를 믿지 않는다. 자연 순환이라고 생각하거나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 ‘The Dismissive(무시하는 사람들)’는 아예 지구 온난화를 사기극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믿거나 음모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추이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반복해서 같은 질문으로 설문 조사를 하면서 추적한 결과 ‘The Alarmed’는 18%에서 33%로 늘었고 ‘The Dismissive’는 11%에서 9%로 줄었다. 미국의 경우지만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고 문제 해결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분명히 긍정적인 신호라고 할 수 있다. 호주를 비롯해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확인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만약 독자들 가운데 ‘The Alarmed’의 비율이 높다면 좀 더 깊이 있는 논의를 시작해도 된다. ‘The Concerned’나 ‘The Cautious’에 해당하는 독자들이라면 여전히 기후 변화가 얼마나 심각한 이슈인지 계속 강조할 필요가 있다.

엑서터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샤프란 오닐(Saffron O’Neill) 등이 네이처(Nature) ‘기후 변화(Climate Change)’에 기고한 논문에 따르면 2015년 주요 언론이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5차 보고서를 인용 보도한 기사를 분석한 결과, 해수면 상승 등의 문제 중심으로 다룬 첫 번째 보고서는 65개의 기사에서 인용됐는데 감축 목표와 실행 계획을 다룬 두 번째 보고서를 인용한 기사는 51건에 그쳤고 기후 변화에 대한 대책을 다룬 세 번째 보고서는 27건에 그쳤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주요 언론 보도에서 합의 보다는 논쟁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영국보다 미국 언론이 IPCC 보고서를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비영리 조직 ‘기후 센터(Climate Central)’는 이 논문을 소개하면서 “기자들이 문제를 강조하는 게 문제의 해결 과정을 따라가는 것보다 뉴스 가치가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샤프란 오닐은 ‘기후 센터’와 인터뷰에서 이 같은 변화를 “언론의 ‘기후 기사 피로감(climate story fatigue)’이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하고 “기자들이 (실제로는 다른 내용이지만) 같은 보고서를 계속 인용 보도하는 데 지쳤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콜로라도대학교 환경과학협력연구소 교수 맥스웰 보이코프(Maxwell Boykoff)는 “우리는 일상적으로 ‘나쁜 뉴스’에 두들겨 맞는다(barraged)”면서 “기자들에게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하라는 건 아니지만 대중과 의사소통에서 중요한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앤서니 라이세로위츠는 “기후 변화를 가장 우려하는 사람들도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이런 ‘희망의 간극(hope gap)’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파멸이 임박했다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기후 위기를 다루는 비영리 단체인 클라이밋액세스(Climate Access)는 “기후 변화의 위험을 강조하는 보도는 대중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위기감을 조성하지만 체념과 절망으로 이어지고 정작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 기자 출신의 알래스카대학교 교수 엘리자베스 아놀드는 “많은 기자들이 기후 난민을 취재하러 알래스카에 와서 멋진 장면을 찍고 돌아가지만 그들 대부분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알래스카 키발리나의 문제가 아니라 보스톤과 마이애미, 뉴올리언스, 미국의 다른 지역 뿐만 아니라 지구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지만 스펙터클을 소비할 뿐 실제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하지는 않는다는 지적이다.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이 현상을 기록하려는 열망과 만나면서 북극 인근 주민들은 기획 취재의 단골 소재가 됐다. 기자나 과학자, 정치인들이 던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기후 피해자가 된 기분이 어떻습니까? 한밤중에 집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어떤가요? 당신의 문화를 잃는 것이 두려우신가요? 폭풍우가 얼마나 심합니까? 당신이 그것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은 어떤 느낌입니까?”

한국에서도 한빛나라 등의 연구에 따르면 2010년 1월 1일부터 2019년 6월 30일까지 경향신문과 매일경제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등 5개 신문에 실린 기후 변화 주제의 기사 1만9803건을 분석한 결과 2016년 4월 파리 협정이 체결되기 이전에는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가시적인 노력에 대한 보도가 많았는데 파리 협정 체결 이후에는 미국의 기후 협약 탈퇴와 같은 국제 사회 이슈나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쟁점 등 정책적이고 거시적 측면의 보도가 늘어났다.

이 연구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한국 언론은 기후 변화를 거대 담론을 형성하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환경적, 국제적, 경제적 이슈로 보도했지만 실질적으로 기후변화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일상에서의 대응 행동과 관련한 부분은 중요하게 다루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 성향 신문들은 상대적으로 자연 현상을 주제로 한 보도가 많았고 진보 성향 신문들은 상대적으로 기후 변화를 인류의 문제로 접근하면서 생태계 다양성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룬 것으로 나타났다. 단편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전달하거나 거대 담론 측면에서 기후 변화 이슈를 다룬 기사가 대부분이었다는 분석이다.

종말론적 프레임이 냉소와 체념 부른다.

한빛나라 등은 이 연구에서 “언론이 기후 변화로 인한 부정적 결과와 피해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면서 일상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대응 행동을 제시하는 데에는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기후변화 문제에서도 사람들은 언론이 논하지 않는 이슈 즉, 기후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거나,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는 쉽게 간과한다”면서 “위험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언론은 기후 변화의 부정적 영향을 보여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대응 행동을 위한 다양한 사회적 논의가 가능하도록 기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함승경 등은 “사람들은 기후 변화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기후 변화를 감소시키기 위한 사회적 대응을 강조하는 메시지에서 심리적 거리를 가깝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성향에 따른 차이도 확인됐다. “행동의 결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중시하는 사람일수록 기후 변화를 추상적으로 제시하는 메시지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심리적 거리가 먼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도 흥미롭다.

이를 테면 “인류와 동식물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는 메시지와 “쌀 수확량이 감소 추세를 보이고 감염병 유행 건수가 3배로 늘었다”는 메시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끌어낸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 중요할 때다”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때다” 역시 대응 행동의 의도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이런 메시지를 교차해서 보여주면서 응답자들의 반응을 조사했더니 행동에 대한 즉각적 결과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추상적으로 설명하거나 개인적 실천을 강조하는 메시지에 거리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 행동을 감소시키는 변인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심리적 거리를 가깝게 느끼게 만들려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그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기 보다는 사회적 대응을 강조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다.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루시아 그레이브스(Lucia Graves)는 “공포나 희망, 어느 어느 한 쪽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이를 테면 녹아내린 빙산 조각 위에 위태롭게 걸쳐 앉아 있는 굶주린 북극곰의 사진과 태양열 가로등 아래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행복한 가족의 사진 같은 것의 차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종말론적(Doom and Gloom)인 프레임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고 비판했고 “사람들을 겁주는 것이 그들이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반론도 있었다. 그러나 그레이브스는 최근 연구 결과를 인용해 “사람의 감정은 복잡하고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거칠게 조정하려는 시도는 효과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파멸 시나리오는 충분, 해법과 대응에 초점을 맞춰라.

기후 전문 기자 앤드류 레브킨(Andrew Revkin)은 유엔 뉴스(UN News)와 인터뷰에서 언론이 기후 활동을 지원하고 잘못된 정보에 맞설 수 있는 다섯 가지 방법을 소개한 바 있다.

첫째, 기후 변화 이슈를 지나치게 드라마틱하게 다뤄서는 안 된다. 일부러 긍정적인 전망을 유도할 필요는 없지만 필요 이상으로 침울하고 우울한 이야기는 사람들을 이슈에서 멀어지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당장 클릭을 불러들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신뢰를 잃게 되는 요인이기도 하다.

둘째, 기후 변화는 단순히 기후 이야기를 넘어서야 한다. 사상 최악의 산불이나 홍수에 대해 기사를 쓸 수 있지만 여기에 멈춰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기후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헤드라인에 기후라는 단어를 넣지 않는 게 좋다는 조언도 있다.

셋째, 지역 상황과 연계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루는 게 좋다. 기상 이변이 단순히 자연 재해가 아니라 기후 변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해야 한다. 물론 모든 이상 기후가 기후 변화로 촉발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불가항력의 재난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지역 사회의 대응에 초점을 맞추는 게 좋다.

넷째, 허위 정보에 맞서려면 신뢰와 관여를 구축해야 한다. 레브킨은 “속기사 같은 기자보다는 눈사태 이후 산악 가이드 같은 기자가 살아남을 것”이라면서 “상충되는 주장이 난무하는 가운데 믿을만한 언론이라는 신뢰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섯째, 과학을 근거로 긍정의 메시지를 만들어야 한다. 레브킨은 “30년 동안 환경 전문 기자로 일하면서 ‘멈춰야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왔는데 이제는 멈춘 이후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이야기해야 할 때가 됐다”면서 “프레임이 ‘멈춰야 한다’에서 ‘시작해야 한다’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악시오스 환경 전문 기자 에이미 하더(Amy Harder)는 기후 변화가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개별 국가 차원에서는 온실 가스를 크게 줄이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고 고립된 개별 국가에 더 나은 것이 지구 전체에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반대로 개별 국가에 더 나쁜 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구에 더 좋을 것이다. 미국 공화당은 중국과 인도가 배출량을 줄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배출량을 줄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데 이런 논리가 집단적인 사고로 나타나고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을 막는다는 이야기다. 더 큰 문제는 당장 온실 가스 배출을 줄이더라도 최소 수십 년 동안 지구 온난화의 속도를 늦추기 어려울 거라는 데 있다. 최소 2년 주기로 돌아오는 선거에서 장기적인 전망을 모색하기 어려운 이유다.

비용은 지금, 효과는 10년 뒤?

다른 정책과 달리 기후 변화는 누적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오래 기다릴수록 문제는 더 커지고 해결하기 어려워지며 해법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피드백 루프를 촉발한다. 정부 입장에서 즉각적인 효과를 만드는 다른 공공 정책이 얼마든지 있다. 의료법을 개정하면 당장 시행한 날부터 바로 효과가 발생한다. 트럼프의 이민 정책도 즉각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기후 변화는 당장 비용이 들지만 효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지금 지불할 것이냐, 나중에 지불할 것이냐, 시간 단절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기후 변화 대응의 핵심 아이디어가 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익사이팅에프엑스 대표 강정수는 지난 8월25일 미디어오늘 주최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기후 저널리즘의 실천 목표를 두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뉴스룸 내부의 기본 지식(basic knowledge)을 늘리는 것이고 둘째는 독자들의 기본 지식을 늘리는 것이다. 이를 테면 스포츠부에 있는 기자들도 필리버스터 등의 기본적인 정치 용어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고 정치부에 있는 기자들도 오프사이드나 삼진아웃 같은 상식적인 스포츠의 룰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기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메탄과 이산화탄소의 차이를 정확하게 모르고 1.5℃ 감축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뉴스룸 구성원들의 기본 지식이 부족하다면 아무리 훌륭한 기후 전문 기자가 있더라도 소용이 없다는 게 강정수의 주장이다. 아무리 뛰어난 정보기술 전문 기자가 있어도 뉴스룸에 디지털 마인드가 없다면 디지털 전환이 더딘 것처럼 기후 저널리즘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기후 변화는 언론사 차원의 디지털 전환 보다 훨씬 더 급박한 지구적인 이슈다.

독자들 역시 최소한의 기본 지식을 갖춰야 한다. 독자들이 성장해야 기자들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고 좀 더 진전된 논의를 제안할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음식 사진을 고르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계산해주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서비스를 내놓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의 기후 변화 퀴즈는 단순히 재미 요소 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인식도 조사 성격도 있다. 우리 독자들이 어느 정도 수준이니 낮은 단계의 설명은 건너 뛰어도 된다는 등의 편집 전략의 변화도 가능하게 된다.

“뉴스룸의 자원을 기후 변화 이슈에 집중 투자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저널리즘의 프레임워크가 바뀌어야 한다”는 게 강정수의 주장이다. “기후 변화 이슈가 디지털 혁신 못지 않게 중요한 시스템 혁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뉴스룸의 진화와 함께 독자들의 기본 지식을 키우는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해야할 때”라는 제안이다.

KPF 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프랑스의 기후 전문 기자 앤 소피 노벨(Anne-Sophie Novel)도 “언론에서 기후 문제를 단순히 하나의 섹션으로 다룰 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를 다루는 모든 언론인이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벨이 주도해서 만든 ‘환경 및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저널리즘 헌장’ 1항도 횡단적인 방식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은 미디어오늘에 실린 헌장 전문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원 진민정이 번역했다.

1. 횡단적인 방식으로 기후, 생명체 및 사회 정의를 다룬다. : 이 주제들은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환경 및 기후위기를 더 이상 환경의 틀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언론의 모든 주제를 기후 위기의 프리즘으로 바라봐야 한다.
2. 교육적인 작업을 수행한다. : 생태학적 문제와 관련된 과학적 데이터는 대체로 복잡하다. 이를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규모와 시간, 순서를 설명하고, 원인과 결과를 식별하고, 비교 요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3. 사용된 어휘와 이미지를 확인한다. : 기후 위기의 시급성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사실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올바른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황의 심각성을 왜곡하거나 최소화하는 엉터리 이미지와 손쉬운 표현은 피한다.
4. 문제를 다루는 범위를 확장한다. : 기후 위기의 주된 요인은 시스템 차원에서 발생하고 정치적 대응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개인 차원의 대응에 대해서만 언급하면 안 된다.
5. 현재 기후 및 생태 위기의 원인을 조사해야 한다. : 생태 위기에 있어 성장 모델과 그 행위자들(경제, 금융, 정치 행위자들)의 결정적인 역할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단기적인 고려는 인류와 자연의 이익에 반할 수 있음을 명심한다.
6. 투명성을 보장한다. : 언론에 대한 불신과 사실을 상대화하는 허위 정보의 확산이 심각하다. 언론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인용된 정보와 전문가를 주의 깊게 식별하고, 출처를 명확히 밝히고, 잠재적인 이해 상충을 밝혀야 한다.
7. 대중이 기후변화를 의심하도록 유도하는 전략들을 밝혀야 한다. : 몇몇 경제적 혹은 정치적 이해 관계자는 기후위기 관련 주제에 대한 이해를 오도하고, 진행 중인 위기에 맞서는 데 필요한 조치를 지연시키기 위한 주장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있다.
8. 위기에 대한 대응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한다. : 적용 규모와 상관없이 기후 및 생태 문제에 대처하는 방안을 엄밀하게 조사한다. 또한 이미 제시된 해법에 대해서도 질문한다.
9. 지속적으로 관련 분야의 교육을 받는다. : 진행 중인 기후 위기와 그것이 우리 사회에 의미하는 바에 대한 글로벌 비전을 가지려면 저널리스트가 경력 전반에 걸쳐 관련 분야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 권리는 뉴스 보도의 품질에 필수적이다.
10. 가장 많은 공해를 유발하는 활동으로부터의 자금 지원에 반대한다. : 환경 및 기후 위기 보도의 일관성을 보장하기 위해 언론인은 유해하다고 간주되는 활동과 관련된 자금 지원, 광고 및 미디어 파트너십과 관련하여 반대 의사를 표명할 권리가 있다.
11. 뉴스룸의 독립성을 강화한다. : 어떤 압력도 받지 않는 정보를 보장하기 위해 미디어 소유주로부터 편집 자율권을 보장받는 것이 중요하다.
12. 저탄소 저널리즘을 실천한다. : 필요한 현장 조사를 중단하지 않으면서 저널리즘 활동의 생태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행동한다. 뉴스룸이 사안과 관련된 지역의 언론인을 활용하도록 권장한다.
13. 협력을 육성한다. : 언론이 연대적인 미디어 생태계를 구축하고, 지구에서의 좋은 삶의 조건을 보존하기 위한 저널리즘 관행을 공동으로 보호한다.

지금 우리의 문제로 이야기하자.

다음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펴낸 보고서 ‘국내 기후 변화 보도의 현황과 개선 방안’에 실린 아홉 가지 제안을 요약한 것이다.

첫째, 지금 우리의 문제로 보도하라. 현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언론의 전통적인 문법에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시민의 기후 감수성을 높여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진민정 등은 “기후 위기를 지금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심리적 거리를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김민정은 “심리적 거리는 시간적 거리와 공간적 거리, 사회적 거리, 발생 확률 등으로 구성된다”면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지금’, ‘여기’서, ‘나와 내 가족, 내 친구’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사를 써야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빙하가 녹아서 북극곰의 터전이 없어진다는 이야기보다는 폭염으로 가을 모기가 기승을 부려 어젯밤 한숨도 못 잤다는 이야기기가 더 와닿는다”는 조언이다.

둘째,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접근하라. “뉴스가 늘 경고하고 비판하는데 머물 필요는 없다”, “‘부드러운 간섭(넛지효과, Nudge Effect)’을 통해 독자가 희망을 갖고 위기 극복에 동참토록 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라는 제안이다. “바람직한 기후보도는 개인과 공동체가 실행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고 실천하도록 함으로써, 시민들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는 효능감을 느끼게 한다”는 조언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셋째, 스토리텔링에 절반의 노력을 써라.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을 재미있고 ‘힙’하게 전달해야 한다. “전기요금을 낸다‘보다 ’전기회사에 현금으로 지불한다‘라는 표현을 접했을 때 이 일이 더 가까운 시점에 일어난다고 인식한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넷째, 올바른 관점이 좋은 보도를 이끈다. 기후변화는 과학적 사실이나 확률적 통계를 넘어 가치관과 세계관의 문제고 결국 언론사가 주관을 잡고 보도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기술이 기후위기를 해결해 줄 것이란 낙관론이나 기후위기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보도는 본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섯째, 전담 조직을 두고 전문성을 키워라. 여섯째, 기후 보도를 환경에 틀에 가두지 말라. “기후위기는 환경오염에 그치지 않고 인간 실존을 흔드는 문제가 됐다”는 사실을 뉴스룸 전체가 각성해야 한다.

일곱째, 지나치게 정치적 공방으로 다루지 말라. “의견은 자유지만 팩트는 신성하다”는 저널리즘 원칙은 기후변화 보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언론이 가치와 선호를 갖는 것은 불가피하나 이에 꿰맞춰 사실을 취사선택, 왜곡, 호도하는 것은 합리적 토론의 기초를 허무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전문성 부족이 문제라면 팩트체크와 교차 확인으로 보완해야 한다. 전문가들의 발언을 검증하고 반박해야 한다.

여덟째, 적극적으로 협업하라.

아홉째, 언론도 기업, 스스로 해결의 일부가 되라. 언론사가 앞장 서서 기사 작성과정의 탄소발자국을 측정하고 공개하라는 조언이다.

진민정 등은 “과도하게 기후 위기를 ‘재난과 죽음’이란 서사로 표현하거나 보통 사람에게 좋아하는 것을 일거에 억제할 것을 강조하는 ‘환경 청교도식’의 프레이밍은 대중의 방어 기제를 자극해 기후변화 메시지를 의식적으로 차단하는 역효과를 발생시키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과학자 등 전문가들은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황 을 고려하지 않은 채 주어지는 수치와 통계는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지적이다.

‘솔루션 저널리즘 네트워크’는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기후 변화 이슈를 다룰 때의 주의사항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사람들을 희생자나 영웅으로 보이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게 좋다.
둘째, 쾌도난마의 실버 불렛(silver bullet)은 없다. 해법을 부풀리거나 강조해서는 안 된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해법은 있을 수 없다.
셋째, 다른 변수들을 고려해야 한다. 산불은 가뭄과 기온 상승으로 발생하지만 인근의 주택 건설이나 개발 이슈와도 연결된다.
넷째, 완벽한 해법이 아니라도 효과가 있다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입증된 해법 보다 과정에 대한 이야기에 더 많은 인사이트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
다섯째, 기후 변화는 중요하지만 그 영향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 모든 기상 이변을 기후 변화와 연결지어서는 안 된다.
여섯째, 지역적 원인과 세계적 원인을 구별해야 한다. 정부가 가뭄과 홍수를 모니터링하고 계획하는 방법 또는 다양한 물 사용(수출 시장을 위한 작물 관개용)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야 한다.
일곱째, 특정 조직이나 단체가 아니라 그들의 접근 방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행동주의로 흐르는 걸 경계해야 한다.
여덟째, 잘못된 균형을 피해야 한다. 기후 변화에 반대하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독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을 논쟁의 영역으로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아홉째, 데이터를 제시하라.
열째, 지역의 사례로 시작해 구조와 시스템으로 끌어내라. 한곳에서 일어난 변화가 다른 곳으로 확장될 수 있는가.

결론.

조지메이슨대학교 커뮤니케이션센터는 기후 변화 담론의 핵심 키워드를 다섯 가지로 요약한다.

– It’s real. 기후 변화는 현실이다.
– It’s us. 기후 변화는 인간이 만든 것이다.
– Experts agree.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고,
– It’s bad. 매우 안 좋은 상황으로 가고 있다.
– There’s hope. 하지만 여전히 희망은 있다.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존 쿡(John Cook)에 따르면 기후 변화를 둘러싼 거짓말은 이 다섯 가지 키워드를 뒤집은 것이다.

– Global warming is not happening; 기후 변화는 거짓이고,
– Human-produced greenhouse gases are not causing global warming; 인간이 만든 온실 가스는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아니고,
– Climate impacts are not bad; 기후 위기는 심각하지 않고,
– Climate science or scientists are unreliable; 과학자들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
– Climate solutions won’t work. 해법은 작동하지 않는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기후 변화에 대한 과학적 인식 수준은 높은 편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매우 안 좋은 상황이라는 인식도 충분히 공유돼 있다. 다만 무엇을 할 것인가 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전기요금 인상에 동의한다는 답변이 48.4%나 된다는 설문 조사 결과도 있었지만 정부와 기업이 책임 주체라는 답변도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누군가가 해법을 찾고 있겠지만 나와 상관 없는 일이거나 자칫 일회용품을 줄이고 채식을 늘리라는 등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도덕 교과서 같은 해법에 그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그 효과가 지루하고 더디다고 보기 때문에 더욱 무력감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 해결의 과정에 집중하는 저널리즘이다. 근거를 제시해야 하고 검증 가능해야 하고 복제 가능해야 한다. 한계를 드러내야 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미디어오늘이 솔루션 저널리즘 현장의 언론인들을 인터뷰한 결과, 공통되는 조언은 문제 해결 과정을 추적하되, 해결에 대한 강박을 벗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해결을 지향하되, 섣불리 정답으로 건너 뛰려 하지 말고 문제의 본질을 파고 들고 구조를 드러내는 질문과 탐색, 검증의 과정에 우리의 역량을 더 쏟아부어야 한다는 조언이다.

해결에 대한 강박을 버리라는 건 솔루션 저널리즘의 목표가 정답을 선언하는 데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반복되고 서로 얽혀 있다. 해답을 알고 있지만 풀리지 않는 경우가 더 많고 결국 누가 비용을 지불하고 우선 순위를 어떻게 다시 설정할 것이냐로 귀결되는 경우도 많다.

문제를 잘 드러내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우리가 그동안 문제를 드러내는 데 그치면서 문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깊이 추적하지 않았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현장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건 아닌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해법과 대안은 구체적이어야 하고 데이터로 입증돼야 한다. 한 번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구조 개혁을 끌어낼 수 있는 본질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실패의 경험과 위험 요소까지 충분히 담고 있어야 한다.

거대 담론보다는 변화의 가능성과 디테일에 주목하라고 조언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데이빗 본스타인은 해법의 작은 조각(small slices)에서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설령 ‘이런 게 무슨 해법이냐’는 비난을 듣더라도 변화에 의미를 부여하고 인사이트를 끌어내야 한다. 가슴 따뜻한 희망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처럼 정교하고 분석적이어야 한다.

기후 변화는 긴 싸움이 될 것이다. 그 어느 이슈보다도 저널리즘의 힘과 사회적 연대가 필요한 사안이다. 개인 차원의 실천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치적인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시민 사회의 압력도 필요하다. 철저하게 과학과 근거로 접근해야 하고 한계와 전망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강력한 신뢰에 기반한 높은 수준의 저널리즘이 솔루션 저널리즘의 동력이다. 언론이 쾌도난마의 해법을 내놓을 수는 없지만 인류 공동의 절체절명의 문제에 맞서 문제 해결의 과정을 기록하고 관심과 참여를 끌어내는 것이 새로운 도전이고 저널리즘의 위기 해법이 될 것이라 믿는다.

기후 저널리즘과 솔루션 저널리즘의 만남이 자칫 재활용 분리 배출 같은 개인의 실천을 강조하거나 탄소 포집 등 기술 낙관주의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개인적 실천도 물론 중요하지만 시스템의 전환과 지구적 해법을 모색해야 하고 결국 교육과 토론, 정치적인 압력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추동해야할 수도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그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이 갖는 힘을 믿지만 사실과 사실을 연계하는 최선의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참고 논문.
진민정, 국내 기후변화 보도의 현황과 개선 방안, 한국언론진흥재단, 2021년.
한빛나라, 기후변화 언론보도 빅데이터 분석 : 시기 및 언론사 정치적 성향에 따른 차이를 중심으로, Crisisonomy, 2021년.
함승경, 해석수준과 대응수준이 기후변화 대응행동 의도에 미치는 영향 : 심리적 거리의 매개효과와 미래 / 즉각적 결과 고려의 조절효과 중심, 한국언론학보, 2021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질문을 바꾸면 해법이 보입니다.

이규원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 연구원이 말하는 감시견과 안내견, 언론의 새로운 역할 모델.

[편집자 주] 지난 8월25~26일 열렸던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이규원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 연구원의 발표를 지상 중계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오늘 제 이야기는 미국의 클리블랜드라는 도시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클리블랜드는 인구가 한 200만 명 정도 되는 한국으로 치면 대전이나 한 대구 정도 규모 되는 도시고요. 메이저리그 야구팀으로도 익숙한 도시이기도 하죠. 우리한테 익숙하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는데 클리블랜드는 이 도시 전역에 걸쳐서 그리고 수십 년에 걸쳐서 노후 주택에서 검출되는 납 중독이 문제였습니다. 특히 빈곤층 주거 지역에서 임신부와 영유아들의 납 중독이 치명적인 질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죠.

클리블랜드의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사 가운데 한 곳인 클리블랜드플레인딜러가 이 문제를 계속 다뤄왔는데요. 그러니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알리고 정책 결정권자들을 압박하고 이런 일들을 해왔던 거죠. 그런데 여러분 우리도 우리가 사는 곳의 어떤 문제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보면 알 수 있을 텐데요. 어떤 문제가 문제라고 처음 언론에 보도가 됐을 때, 사람들은 정말 큰 문제다, 해결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죠. 그런데 그 문제가 수년에 걸쳐서 계속해서 반복되고 지지부진 해결되지 않을 때 어떻게 되나요?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미세먼지라든지, 교통 체증이라든지 이런 문제들을 떠올릴 수 있을 텐데요. 클리블랜드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거죠. 처음에 기자들이 기사를 쓰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고 정책 결정권자들이 앞다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죠. 그런데 똑같은 문제가 몇 년에 걸쳐서 해결되지 않고 나니 더 이상 사람들이 언론 보도에 대해서 관심을 주지 않았던 겁니다.

같은 문제와 다른 접근.

그래서 2016년에 기자들이 시도한 것이 뭐냐면 문제를 단순히 지적하는 감시견 역할에서 나아가 동일한 문제가 다른 지역에서는 어떻게 잘 해결되고 있는지, 최소한 어떻게 개선되고 있는지를 함께 취재해 보자는 접근에서 안내견 역할을 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살펴보기 위해 로체스터도 가고 미시건도 가고 하면서 대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클리블랜드와 달리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해 나가고 있는 도시들은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하고 있길래 가능했는지를 항목별로 비교 분석해서 독자들에게 알려준 거죠. 이를 테면 첫 번째 항목을 보시면 클리블랜드에서는 어떤 노후 주택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가 납 중독으로 판명되고 나서야 그 노후 주택에 납 성분이 검출됐는지, 검출되지 않는지를 검사를 했는데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다른 도시에서는 그런 일이 있기 전에 선제적인 검사를 하고 있었던 거죠. 세 번째 항목을 보면 클리블랜드에서는 아이들이 뭔가 납 중독의 증상이 발현되고 나서야 아이들이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곤 했는데 다른 도시들에서는 그런 일이 있기 전에 또 역시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 이렇게 우리 클리블랜드에서는 얼마나 이 문제가 지지부진한지를 지적하는 보도와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음에도 성공적으로 잘 대응하고 있는 다른 도시의 사례들, 그리고 그것을 이렇게 자세하게 분석해서 보여줬을 때, 독자들의 반응과 사회 구성원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우리 클리블랜드에서는 이게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이건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인 줄 알았는데, 그동안 정치인들과 정책 결정권자들이나 보건 담당자들이 이건 당연한 거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변명만 내놓았었는데 이제 그런 변명거리가 사라진 거죠. 왜냐하면 동일 조건에 있는 다른 도시들을 이렇게 잘 해결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이 보도가 나가고 나서 어떤 일들이 있었냐면 클리블랜드의 보건 담당자들 4명 가운데 3명이 자진 사퇴하거나 해임됐고요. 납 성분 검사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3명에서 7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의회는 시 조례를 제정하고 통과시켰습니다. 오하이주에서는 주 차원에서 클리블랜드에 직접적이고 강력한 대응을 할 것을 촉구하는 일종의 주 차원의 압박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더 이상 이 문제를 지지부진 미룰 수 있는 변명거리가 없어졌기 때문이죠.

문제에 대한 대응과 한계, 그리고 통찰.

솔루션 저널리즘의 접근이란 바로 이런 겁니다.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던 것에서 나아가서 그렇다면 그 동일한 문제가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잘 개선되고 있는지, 혹은 해결되고 있는지를 보도에 함께 포함시켜 보자는 거고 그래서 다시 말하면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던 것에서 나아가서 그 문제에 대한 대응과 그런 대응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대응이 진짜 효과가 있는지, 정말 그게 믿을 만한 이야기인지, 근거와 함께 보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대응이 우리 독자들과 사회 구성원들에게 어떤 통찰과 교훈을 줄 수 있는지도 보도해야 하고요. 이런 대응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어떤 부분이 있을 수도 있죠. 한계가 있을 수도 있고요. 이런 부분도 모두 보도에 반영해야 한다는 게 솔루션 저널리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주요 방송사들의 사건 보도를 분석한 연구 결과가 있었습니다. 총격 사건 사고를 비롯해 허리케인으로 인한 자연재해, 그리고 집회와 시위 등등, 모든 방송사들이 처음에 그 일이 있고 나서는 하나같이 달려들어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이런 큰 문제가 났습니다, 이것 보세요”하고 말이죠. 우리도 서울에서 도심 지역에 침수 사고가 일어났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죠. 왜냐하면 모든 언론사가 달려들어서 이야기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고 나서 5일과 10일, 15일이 지난 뒤에 어떻습니까. 이야기가 사라집니다. 그러니까 우리 독자와 시청자 입장에서는 최소한 어떤 상황이 일어났다는 건 아는데 그 뒤 어떤 일들이 뒤따랐고, 어떤 대응들이 있었고 어떤 사회적인 노력들이 있어서 해당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제대로 전달받고 있지 못하다는 거죠.

그래서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애틀의 언론사 시애틀타임스는 교육 문제를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애틀은 중고등학생의 중도 퇴학 문제가 심각했는데요. 과거에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독자한테 반복적으로 자극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했었죠. 그런데 시애틀이라는 도시를 작은 단위로 쪼갠다고 했을 때, 전체 평균을 보는 것이 아니고 그 작은 단위들 중에서 그러면 어떤 지역은 중도 퇴학이 평균에 비해서 낮은 지역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거기서는 어떻게 뭘 잘하고 있길래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보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그 지역은 학부모와 교사, 학생, 교육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서 중도 퇴학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체계적인 고민을 하고 있었던 거죠. 이제 이런 시각을 적용해서 교육 문제에 대한 솔루션 저널리즘 시리즈를 보도하기 시작합니다.

이 솔루션 보도 시리즈가 나오고 난 후에 62%의 시애틀타임스 독자들이 “이런 접근이 문제에 대한 관점을 바꿨다”고 답변했습니다. 학부모의 50%와 교사의 84%가 “이런 솔루션 저널리즘 시각이 적용된 보도를 다른 사람과 한번 이야기하고 싶어졌다”고 응답했습니다. 매우 고무적인 수치죠. 페이지뷰는 102% 늘어났고 사람들이 페이지에서 머무르는 시간은 180% 증가했고요.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는 비율은 230% 그리고 독자의 재방문율은 64% 증가했습니다.

해법을 담으니 훨씬 더 많이 오래 읽었다.

미국의 일반 대중 독자 750여명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가 있습니다. 동일한 주제에 대해서 쓰인 두 가지 기사를 독자들한테 주는 거죠. 하나는 우리가 흔히 익숙한 이 문제 중심의 문제를 밝히는 그런 보도 기사, 다른 하나는 이제 더 나아가서 어떻게 이 문제가 잘 대응되고 있는지, 어디서 잘 해결 사례가 있는지, 개선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솔루션 보도입니다. 솔루션 보도에 대해서 독자들은 ‘더 읽고 어떤 새로운 영감을 받았다’, ‘같은 신문사더라도 이런 솔루션 보도를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해당 문제 해결에 내가 참여하고 싶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해당 기사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졌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일관되게 솔루션 보도에서 높게 나타났고요. 그리고 또 사람들이 페이지에 머무르는 시간 자체가 문제 중심 보도에 비해서 10~25% 높게 나타났습니다. 독자나 시청자로서 우리가 생각을 해보면 왜 그러냐면 가령 클리블랜드에 있는 내가 어린아이를 둔 부모라면 클리블랜드의 노후 주택에서 납 검출이 되고 있는 건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문제죠. 가령 시애틀에서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내가 학부모라면 이미 중도 퇴학이 우리 아이들의 면학 분위기를 해치고 있다는 건 이미 나한테 익숙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게 다른 지역에서 어떻게 해결되고 있고 거기에 증거가 있는지, 우리가 배울 점은 뭐가 있는지 알려주는 보도를 접하게 되면 당연하게도 더 주의를 기울여서 기사를 읽고 보도를 접할 수밖에 없게 되겠죠.

사람들이 점점 더 뉴스를 보면 뭔가 짜증나고, 화나고 뉴스 헤드라인만 봐도 뭔가 꺼버리고 싶고 그리고 뉴스를 읽으면 뭔가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만 같은 기분, 이 세상이 점점 더 그냥 안 좋아지기만 하고, 망해가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는 거죠.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이제 솔루션 저널리즘이 우리 독자들의 불만과 바람 사이의 그 어떤 간극을 채워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미국 남부에 있는 언론사 채터누가타임스프리프레스는 지역의 빈곤 문제에 대해서 ‘가난 퍼즐(The Poverty Puzzle)’이라는 솔루션 저널리즘 시각을 적용한 시리즈물 보도를 내놨는데요. 이 보도가 있고 난 후에 해당 신문사의 편집장인 앨리슨 걸버는 “지금까지 본 적 없던 독자들 그리고 지역 사회의 피드백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역시 페이지에 머무른 사람들의 시간 역시 300% 증가한 걸 볼 수 있었고요. 조앤 매클레인이라는 일선에 있던 해당 시리즈를 보도한 기자는 또 흥미로운 이런 이야기를 해줬는데 댓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흥미로운 발견 중에 하나는 댓글 창이 뭔가 건설적인 내용으로 사람들이 이제 진지하게 고민하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뭔가 장이 됐다는 겁니다.

프랑스의 니스마땅은 재정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태에서 독자들에게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안 좋은 상황에 처했습니다. 뭘 한번 해보면 좋겠습니까.” 그랬더니 흥미롭게도 독자들이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게 있다는데 그걸 한번 해봐”라고 한 거죠. 그래서 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솔루션 저널리즘 보도를 시작했습니다. 구독은 70%가 늘고, 페이지 방문은 300%, 독자들이 페이지에 머무는 시간 400% 증가했고요.

우리가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개념 접근을 소개했을 때 흔히 받는 오해 중에 하나는 “그러면 문제를 파헤치고 폭로하는 보도는 필요 없다는 이야기냐”, “모든 보도를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할 수는 없지 않느냐”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요. 모든 보도가 솔루션 저널리즘 보도가 돼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사회와 독자와 사회 구성원들이 해당 문제가 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때, 더 이상 문제를 계속해서 문제라고 그리고 더 자극적이고 문제라고, 사람들한테 알리는 보도를 할 것이 아니라 거기서 나아가서 그러면 이 문제가 어디서 잘 해결되고 있는지, 어디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도에 포함시켜주는 솔루션 저널리즘이 어떤 새로운 저널리즘의 접근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야기를 하는 거고요. 그래서 일선에 있는 기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비교적 명확합니다. 이게 완전 새로운 어떤 게 아니라, 시각의 차이라는 거죠. 어떤 문제를 다룬다고 했을 때, 내가 어떤 보도를 할 것인가를 처음 생각을 하는 건 동일합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우리 구성원들과 우리의 잠재적인 독자들이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한번 던져보자는 거죠. 독자들이 이미 이게 문제라는 걸 알고 있을 때, 그때 똑같은 문제 중심의 보도를 한 것보다 이 문제가 어디서 잘 해결되고 있는지를 보도에 포함시키는 해결 지향의 접근을 우리의 보도에 적용을 해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이 다르고 왜 다른가 묻자.

미국 성인 남녀의 신체 활동 비율을 나타낸 지도가 있습니다. 우리 기자들한테 익숙한 방식은 이런 거죠. 어디가 가장 문제가 많은지 살펴보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 뭔가 문제가 있다, “전국 최저”, “성인 건강 심각한 사태에 이르러”, 이런 게 우리한테 익숙한 방식이죠. 뭐 그것도 충분히 좋은 의미 있는 보도가 될 수 있지만 우리 모두가 그걸 하고 있을 때,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거죠. 왜냐하면 뭔가 신체 활동 비율이 엄청나게 높은 지역이 있다면 여기는 뭐가 다른가, 뭔가를 제대로 하고 있기에 이런 차이를 보이는 것인가 살펴보고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보도 역시 매우 의미 있는 보도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시계열 분석을 할 수도 있습니다. 빨간색에서 주황색, 노란색이 된 지역도 있을 거고, 과연 연두색에서 보라색이 된 지역도 있습니다. 10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어떤 조치를 취했기에 성인 남녀의 신체 활동 비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 역시 좋은 보도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아시다시피 굳이 이런 데이터를 미국에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데이터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기존까지 우리가 “강력 범죄가 이렇게나 높다”, “끔찍하다”는 접근이었다면 어디는 낮고 바로 옆은 높고, 그 차이가 뭔지 살펴볼 수도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런 시각으로 언론 보도를 구성하게 되면 던져볼 수 있는 질문들이 무궁무진하게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강력 범죄율이 어디서 가장 낮게 나타나는지 투표율이 어디서 가장 높은지, 가령 어떤 원격 의료가 어디서 가장 잘 작동되고 있고, 거기에 비결은 뭐였는지, 그런 새로운 무궁무진한 질문들이 나타날 수 있고요. 유사하죠.

그래서 이런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이 지금까지 없던 뭔가 새로운 걸 실험해보자는 게 아니라 이미 뉴욕타임스와 BBC, 가디언즈 같은 세계적인 언론사들 그리고 제가 방금 소개해드린 바 있는 클리블랜드플레인딜러라든지, 시애틀타임스 같은 지역의 언론사들, 캐나다의 나르왈이라든지 미국의 위치먼스로스라든지 프랑스의 메디아시떼 같은 기자 6~7명으로 구성된 영세 독립 언론사들까지 이미 도입하고 있는 개념이고요. 그리고 제가 솔루션 저널리즘을 이제 한국에서 이야기할 때 관찰한 흥미로운 것 중에 하나는 이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을 일반 시민을 그러니까 언론인 혹은 기자가 아닌 일반 독자 시민들한테 이야기를 했을 때, 이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해서 회의적이라든지, 부정적인 반응을 들어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면 언론인들은 부정적이거나 회의적이냐, 그렇지 않고요. 이미 현장에 있는 언론인들 중에서도 이 솔루션 저널리즘의 필요와 효과에 대해서 공감하고 그걸 기사 100건 중에 단 1건, 200건 중에 단 1건이라도 이미 기사 보도에 적용하고 있는 언론인들이 늘어나고 있고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에도 기자이자 언론 연구자로서 제 역할이 뭐냐고 생각했을 때, 저는 단순히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게 필요하다, 이걸 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역할이 아니라 이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것은 이미 일어날 변화이자 전환인데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더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라고 연구하고 교육하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래서 저도 이런 더 나은 보도, 그리고 더 나은 보도로 나아가는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도 함께 동참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해결 지향의 접근, ‘야마’를 버리고 복잡한 내러티브를 끌어내라.

다양한 의견과 관점 담을수록 완전하고 정확한 기사… 의도적으로 다른 의견에 부딪혀라.

한국 기자들은 ‘야마’에 집착한다. ‘야마’는 ‘산(山)’이라는 뜻의 일본 말에서 유래한 언론계 속어지만 단순히 기사의 주제라는 의미를 넘어 기자의 관점이나 프레임의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핵심 메시지를 강조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많다. 정확한 정의도 없고 실체도 모호하지만 ‘야마’가 명확한 기사가 좋은 기사라고 보는 학습된 편견이 한국 언론을 지배하고 있다.

한겨레 기자 박창석은 2012년에 출간한 ‘야마를 벗어야 언론이 산다’에서 “‘야마’를 중심에 두는 한국 언론의 취재 보도 관행은 저널리즘의 본령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면서 “미리 정해진 ‘야마’에 맞춰 사실을 재구성하거나, 보여주고 싶은 내용만 기사에 담거나, 전체 사실의 일부만을 과장해서 보여주거나, 엉뚱한 사실을 특정 사안과 관련 있는 것처럼 엮거나 하는 일은 ‘진실 보도’라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훼손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모든 ‘야마’에는 의도가 숨어있고 ‘야마’가 선명할수록 실체가 가려진다”는 이야기다.

미디어오늘이 솔루션 저널리즘 사례를 취재하면서 만난 여러 언론인들에게 반복해서 들은 조언 가운데 하나가 “내러티브를 복잡하게 하라(Complicates the Narrative)”는 것이었다. 한국 기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결국 ‘야마’를 선명하게 드러내려는 욕심을 버리라는 이야기였다. 애초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는 해법이라면 근본적인 해법이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실과 의견을 취사선택하고 ‘야마’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맥락이 사라지고 실체적 진실에서 멀어질 위험도 있다.

갈등이 폭발할 때 꿰맞춘 결론은 나쁜 저널리즘.

타임(Time)과 애틀랜틱(The Atlantic) 등에서 탐사 보도 기자로 일했던 아만다 리플리(Amanda Ripley)는 “거짓 단순성의 시대에 복잡성을 되살려야 한다(revive complexity in a time of false simplicity)”면서 “기자와 편집자들은 흔히 미리 결정된 결론에 맞지 않는 인용문을 잘라내거나 깔끔하고 일관된 스토리텔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갈등이 폭발하는 국면에서는 매우 나쁜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고정 관념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불완전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고 “그 장소와 그 사람의 모든 이야기에 참여하지 않고는 장소나 사람과 적절하게 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설명도 흥미롭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건의 전부를 알 수 없고 우리가 잘못 판단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의식적으로 다르게 보고 더 깊게 듣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리플리는 “다양한 의견과 관점을 담을수록 좀 더 완전하고 정확한 기사가 된다”면서 “사람들은 복잡한 내러티브를 맞닥뜨릴 때 호기심을 갖고 다른 생각에 귀를 기울인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호기심을 갖는 만큼 독자들도 사건의 이면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에서 제안하는 ‘복잡하게 쓰기’의 네 가지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다르게 듣는 방법이 필요하다. 아만다 리플리는 ‘루핑(looping)’이라는 질문 방법을 제안했다.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인터뷰이(interviewee)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왜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됐는지 질문을 던지면서 좀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테면 인터뷰이가 ‘절대’나 ‘항상’ 같은 단어를 쓰거나 머뭇거리고 답변을 꺼린다면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부분을 더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하는 게 핵심이다. 인터뷰이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했는지 요약하고 확인을 부탁하면서 반응을 관찰하는 것도 더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둘째, 모순을 파고 들면서 본질을 파악한다. “이 이슈에서 제대로 이야기되고 있지 않은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묻는다. “좀 더 말해주세요”라고 말하고 귀 기울여 듣는다. “그러니까 이런 말씀이시죠?” 인터뷰이의 말을 요약해서 확인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확실하게 만들고 신뢰를 확보한다. 중요한 것은 동의가 아니라 이해다. “제가 이해한 게 맞나요?”라고 물으면서 거듭 확인을 하는 게 좋다.

셋째, 복잡한 내러티브를 끌어들여라. 입장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숨은 맥락을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넷째, 서로의 확증 편향을 깨야 한다. 인터뷰 상대방에게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반대되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해 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뷰어 역시 스스로의 편견을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다른 이야기에 스스로를 노출할 필요가 있다.

‘복잡하게 쓰기’의 핵심은 잘 듣기.

캐나다의 인터넷 신문 나르왈(The Narwhal)의 에디터 샤론 라일리(Sharon Riley)는 폐쇄 직전의 탄광 노동자들을 만난 경험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당초 목적은 정부의 이주 대책에 대한 반발을 취재하기 위해서였지만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 보니 사안이 훨씬 복잡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내러티브 전략에서 중요한 건 우리의 가정과 추론을 체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때 당연히 여기에는 직장을 잃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고 기후 변화에 관심이 없거나 냉소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편견이었죠. 이야기를 해보고는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은 비건(베지테리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자리를 잃게 될 수 있다는 걸 오히려 즐거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오랫동안 탄광에 묶여있다고 생각했고 화석 연료가 우리 모두의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깊게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직장을 잃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완고한 입장인 사람들도 있었고 심지어 기후 변화는 가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는 나의 내러티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가 만든 나의 편견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질문하는 걸 시작할 수는 있다고 말이죠. 만약 내러티브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들고 싶다면 미리 리서치를 해보세요.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해보세요. 그게 여러분의 취재를 더 깊이 있게 만들고 대화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샤론 라일리는 탄광 노동자들이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보수주의자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만나 보니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단계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었다. 캐나다의 경우 석탄이 전력 생산의 9% 미만이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의 75%를 차지한다. 과거에는 탄광이 문을 닫으면 다른 탄광으로 옮겨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화력 발전 의존도를 지속적으로 낮추면서 그나마 잘 돌아가는 탄광들도 철수를 준비하는 상황이다.

라일리가 찾은 와바문(Wabamun)의 경우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석탄 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세수의 58%를 석탄 산업에 의존하고 있었다. 캐나다 정부가 석탄 공장을 폐쇄하는 대가로 14년 동안 10억 달러 이상을 공장에 지급했지만 정작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이 지급되지 않고 있다는 게 노동자들의 불만이었다.

나르왈이 만난 탄광 노동자들은 정부가 2030년까지 석탄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기업들에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에 왜 화력 발전의 온실 가스 배출을 줄이는 기술에 투자하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실제로 캐나다에서 가장 깨끗한 화력 발전소라고 알려진 와바문의 한 발전소는 석탄을 태울 때 발생하는 수은의 60%를 회수하기 때문에 온실 가스 배출량이 재생 에너지 발전소 보다 낮다고 한다.

물론 나르왈의 기사가 풍력이나 태양열 발전소 대신 화력 발전소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단계적으로 화력 발전을 폐지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의미 심장하다. 많은 나라들이 화력 발전소를 단계적으로 줄이면서 노동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사회적 타협의 지점을 찾고 있다. 재생 에너지 분야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노동자들의 재교육을 지원하는 것도 단계적 해법 가운데 하나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이규원 연구원은 지난해 출간한 ‘솔루션 저널리즘’에서 나르왈의 기사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기사에 나타난 한 개인의 이 같은 입체성은 독자들이 문제를 해석하는 이분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진 이들이 불가해한 존재가 아니라 나름의 합리성과 선한 의도를 지닌 존재라고 인식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처럼 갈등 상황과 이에 얽힌 이해 당사자들을 흑백 논리와 몇몇 짧은 단어로 규정하는 습관에서 벗어나면 언론 보도가 사회적 갈등과 집단의 상호 불신을 지속적으로 부추기는 매개로 되풀이되는 과정을 끊어낼 수 있다.”

나르왈의 편집장 엠마 길크리스트(Emma Gilchrist)는 “기자들은 객관적으로 사실을 전달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판단을 내린 상태에서 현장에 접근하거나 정해진 결론에 부합하는 사실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런 유형의 저널리즘은 오히려 정치적 선동과 갈등을 부추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길크리스트는 “내러티브를 복잡하게 만든다는 건 복잡한 사안을 하나로 묶고 싶은 충동에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속도를 늦추고 덜 반응하고 더 많이 듣고 더 나은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도 출신의 독립 저널리스트 프리앙카 샨카(Priyanka Shankar)는 “아만다 라일리의 ‘복잡하게 쓰기’ 강의가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샨카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가 한창일 때 벨기에에서 이 이슈를 다루면서 실험적으로 복잡한 내러티브의 기사를 썼다.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잠재적인 동기를 알아낼 때까지 계속 물어보는 겁니다.” 벨기에 사람들과 콩고 출신 벨기에 이주 노동자들을 교차 인터뷰하면서 인식의 간극과 구조적 차별을 드러내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샨카는 “‘루핑’은 취재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매우 유용하다”면서 “이제는 친구들과도 ‘루핑’을 한다”고 말했다.

갈등은 원래 복잡한 것, 단순하게 규정하려는 욕심을 버려라.

‘복잡하게 쓰기’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한 아만다 리플리는 “우리가 문제를 파고 든다고 할 때 그것은 본질적으로 갈등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누군가의 동기와 관심, 신념, 가치관을 이해해야 갈등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데 이런 정보를 끌어내려면 좋은 질문과 잘 듣는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리플리는 “‘루핑’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 실습을 해보면 첫째, 결코 어렵지 않고, 둘째, 그동안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고 말했다. 리플리는 “이제는 인터뷰 뿐만 아니라 아이와 함께 있을 때나 남편과 이야기할 때나 심지어 우버 기사나 길거리에서 소리치는 아무에게나 ‘루핑’으로 대화를 건네게 됐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양극화가 심화되고 갈등이 격화될수록 많은 중요한 이슈들이 지나치게 단순하게 소비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뉴스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기 쉬운데 격렬한 갈등 상황에서 매우 정상적인 행동입니다. 극단적인 갈등 국면에서는 전통적인 저널리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습니다.”

프레스디모크라트(Santa Rosa Press Democrat)의 기자 존 다나(John D’Anna)는 “갈등은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때때로 갈등이 긴장으로 이어진다”면서 “갈등이 만드는 긴장감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다면 독자들을 다시 불러 올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갈등의 구조를 외면하지 않고 ‘복잡하게’ 접근하는 게 오히려 문제 해결의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영국 BBC에서 ‘분열을 넘어(Crossing Devides)’ 시리즈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에밀리 카스리엘(Emily Kasriel)은 BBC에 솔루션 저널리즘을 소개하고 직접 솔루션 프로젝트를 실험하다가 ‘딥 리스닝(Deep Listening, 깊게 듣기)’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다. 카스리엘은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내 이야기를 누군가가 귀 기울여 듣는다고 생각하면 경계를 풀고 깊은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면서 “우리가 모든 문제에 서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을 배울 수는 있다”고 말했다.

아만다 리플리가 제안한 ‘복잡하게 쓰기’를 위해 필요한 여섯 단계의 체크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1단계, 사안이 지나치게 단순하지 않은가 스스로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갈등 이슈를 다루는데 충돌하는 주장이 두 가지 밖에 없다면 취재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쟁점은 없는 것일까.

2단계, 헤드라인과 리드에 두 가지 이상의 관점을 담는 게 좋다. 적어도 사안이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복잡한 헤드라인은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도 효과적이다.

3단계, 인터뷰할 사람들 목록을 살펴 보면서 다양성이 충분히 반영됐는지 검토해야 한다. 유명한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가? 반대되는 목소리를 충분히 담고 있는가?

4단계, 취재에 앞서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의 사례를 충분히 살펴보는 게 좋다. 다양한 접근과 해법을 검토하면 누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지 누구에게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는지 좀 더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5단계, 줌 아웃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간 축으로 확장하거나 공간 축으로 확장할 수도 있다. 과거 사례와 문제의 원인을 추적할 수도 있고 다른 지역이나 나라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살펴보고 기사에 충분히 반영하는 게 좋다.

6단계, 취재를 마무리 하기 전에 2단계에서 작성한 헤드라인과 리드를 다시 읽어보자. 선입견 없이 제로 베이스에서 여러 의견에 접근했나? 혹시 내가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예단하고 접근했던 건 아닐까?

아만다 리플리에 따르면 ‘복잡하게 쓰기’ 워크숍에 참여한 기자들은 처음에 인터뷰 훈련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자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동의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그렇게 강요 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리플리는 “잘 듣는 것과 동의하는 것은 다르고 우리가 발견한 것은 사람들이 그런 것을 혼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리플리는 ‘복잡하게 쓰기’가 저널리즘의 신뢰 위기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언론이 독자들을 가르치려 하는 태도를 벗어나 다른 의견을 반영하고 숨겨져 있던 쟁점을 드러내고 풍성한 맥락을 제공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때 비로소 떠났던 독자들을 다시 불러 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이다.

복잡한 내러티브를 위한 22가지 질문.

‘복잡하게 쓰기’의 핵심은 좋은 질문이고 좋은 질문은 ‘루핑(looping)’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기자가 듣고 싶은 답변을 끌어내는 게 아니라 기자가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사실과 관점을 끌어내기 위한 인터뷰 방법론이다. 인터뷰이와 신뢰 관계를 구축되고 관점 뒤에 숨은 동기를 이해하고 문제의 복잡한 층위를 밝혀내면서 해법에 접근하는 과정이다.

‘루핑’은 첫째, 인터뷰이의 말을 끝까지 듣고, 둘째, 이해한 것을 요약해서 전달하고, 셋째, 인터뷰이의 반응을 관찰하면서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넷째, 틀린 부분을 수정하고 빠뜨린 부분을 다시 질문하면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 이 네 단계를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프리앙카 샨카는 ‘루핑’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서로를 알려고 하는 거라고 생각해 볼까요? 서로 질문을 주고 받으면서 정보를 늘려가겠죠. 아마 당신이 ‘나는 의사에요, 그리고 내 일을 정말 사랑해요’라고 하면 내가 그걸 받아서 ‘오케이, 당신은 그 일을 왜 그렇게 좋아하죠?’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자세히 말해줄래요?’ 하겠죠. 의사 선생님이 설명을 하면 그 말을 요약해서 내 언어로 정리를 합니다. ‘아하, 그러니까 당신은 사람을 도와주고 생명을 살리는 것을 좋아해서 당신 직업을 사랑한다는 거군요. 맞죠?’ 그러면 내가 맞았는지 틀렸는지 의사 선생님이 말하겠죠. 그러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는 거에요. ‘나는 당신이 날마다 수많은 생명을 살린다고 확신하지만 굉장히 정신없이 바쁠 텐데 여유가 없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요?’, 이런 질문을 반복하면서 내가 너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다, 정확히 이해했고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죠. 중간중간 팩트 체크하듯 확인을 해가면서 말이죠. 질문을 주고 받을수록 심층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다음은 아만다 리플리가 뽑은 ‘복잡한 내러티브를 위한 22가지 질문’이다. 한국 상황에 맞게 의역했다. 리플리는 “이 리스트는 인터뷰 중간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도 유용하다”면서 “이 질문 리스트를 뽑아들고 종이에 있는 것 가운데 하나를 자주 말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를 테면 “그 부분을 자세히 말해주세요” 질문이 효과가 좋다고 한다.

모순을 증폭시키고 렌즈를 확대하기 위한 질문.

1. 우리가 서로 생각이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어떤 정보가 믿을만한지 어떻게 결정하시나요?
3. 쟁점이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4. 지금 가장 괴로운 게 뭔가요?
5. 상대방의 주장 가운데 그래도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인터뷰이의 동기 부여에 도움이 되는 질문.

6. 이게 당신에게 왜 중요한가요?
7.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8. 당신에 대해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있나요?
9. 반대 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부분이 뭔가요?
10. 이런 충돌이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11. 만약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입장에 동의한다면 당신의 삶이 달라질까요?
12. 만약 사람들이 당신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더 많이 듣고 더 잘 듣기 위한 질문.

13. 아, 방금 이야기한 그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14. 그래서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그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15. 그런 감정이 어디에서 온 걸까요?
16. 잠깐 끼어들어도 되나요?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17. 지금까지 아무도 묻지 않았던 질문이 있나요?

다른 생각에 노출시키고 확증 편향을 벗어나도록 돕는 질문.

18. 상대 편에서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 거 같으세요?
19. 상대 편에서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일까요?
20. 상대 편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싶은 것을 말씀해 주세요.
21. 사람들이 ○○○라고 이야기하던데, 어떻게 생각했는지도 궁금합니다.
22. 그동안의 언론 보도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게 있었나요?

“솔루션 저널리즘을 결합하면 이야기가 훨씬 더 풍성해진다.”

[인터뷰] 태미 코 로빈슨 한양대학교 교수, “소셜 미디어 세대에게 전통적인 저널리즘 문법으론 한계.”

태미 코 로빈슨(Tammy Ko Robinson) 교수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됐다. 영화 제작과 미디어 연구를 전공했고 시카고에서 미디어 활동가와 영화 제작자로 활동했다. 시카고예술대학(SAIC)과 샌프란시스코아트인스티튜트(SFAI)에서 시각문화연구(Visual Studies)와 문화 산업(Culture Industry/Media Matters) 등을 전공했다. 2019년 한국으로 돌아와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응용미술교육과에서 미디어 아트를 가르치고 있다. 과거 한겨레 영문판의 부편집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로빈슨 교수는 수업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을 소개하고 학생들에게 사회적 참여 저널리즘(socially engaged reporting)의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 6월2일 로빈슨 교수와 인터뷰 전문이다.

– 사범대학 교수인데 수업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을 가르친다. 어떤 배경이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원래 환경 정의(environmental justice)와 미디어 활동가로 시작했다. 미국에서 나는 유색 인종이면서 여성이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사회 정의(social justice)와 미디어 정의(media justice), 디자인 정의(design justice)가 모두 하나로 수렴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상황이 좀 다르지만.”

–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워크샵에 참가했다고 들었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가르치는 트레이너를 교육하기 위한 워크샵이었는데 참가자 거의 모두가 저널리즘을 가르치는 교수들이었다. 사례 중심으로 교육을 받았는데 이게 왜 새로운 것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 결국 탐사 저널리즘의 영역에 포함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동안 해왔던 것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정 중심의 보도라는 문제 의식을 교수들도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리가 정말 흥미롭게 여겼던 것은 저널리즘의 사업적 상황에 관한 것이었고 청년 세대가 저널리즘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소셜 미디어와 함께 자란 세대에게 전통적인 저널리즘 문법은 통하지 않는다. 그 간극을 솔루션 저널리즘이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이주 노동자 연구를 오래 해왔는데 이런 연구와 솔루션 저널리즘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고 보나.
“내 관심은 모바일과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인데 이 부분이 좀 아쉬웠다. 그래서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이규원 연구원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고 이 연구원과 함께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2019년부터 오스트레일리아와 대만, 태국 등의 연구자들과 함께 이주 노동자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일종의 사회적 지도(social map)을 만드는 게 내가 맡은 역할이다. 농업과 관광, 어업, 노인 복지 등 여러 섹터에서 발생하는 이주 노동자를 다루는 연구자나 인권 단체 등은 많은데 자신이 연구하는 섹터에 대해서만 알지 다른 섹터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주 노동 시스템은 나라마다 섹터가 다르기도 하다. 이를 테면 똑같은 사람이 미국으로 이주하면 농업으로 가지만 한국에서는 관광으로 가고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는 노인 복지로 갈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모형을 만들어서 추적을 하면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프로젝트에는 정책을 다루거나 연구를 하는 멤버들도 있고 공동체 기반 단체 소속의 멤버들도 있다. 저널리즘 스쿨 사람들도 있어서 나중에 함께 탐사 보도도 할 계획이다. 또한 학생들에게 저널리즘 트레이닝도 시키고 싶은 게 나의 생각이다. 이주 노동을 주제로 솔루션 저널리즘 콘테스트도 하려고 한다. 특히 이주 노동에 대한 연구가 서아프리카는 꽤 잘 되어 있는데 동남아시아는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를 테면 한국 학생들이 한국의 어업 섹터에서의 이주노동에 대해 취재하고 태국의 학생들이 태국의 어업 섹터를 취재해서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 소스를 공유하고 데이터 시각화나 멀티 미디어 스토리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결합하면 이야기가 훨씬 더 풍성해진다.”

– 한국에서도 솔루션 저널리즘 교육이 교과로 채택될 수 있을까. 수업 사례를 좀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좋겠다.
“한양대학교에서의 내 경험은 조금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내 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이 미디어나 커뮤니케이션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수업 시간에 프로퍼블리카의 ‘잃어버린 엄마(Lost Mothers)’에 참여했던 패트릭을 초대했을 때 학생들 반응이 정말 좋았다. 미국이 산모 사망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프로퍼블리카 기자들은 독자들에게 출산 도중 사망한 여성의 사례를 알려달라고 했고 134여 건의 사례를 취합했다. 1년 동안 미국에서 죽는 산모가 700~900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6분의 1 정도를 실제로 확인한 셈이다. 그 결과 인종과 소득 수준에 따라 산모의 건강에 큰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실제로 일부 위험 신호에 대한 치료 개선 등 정책 변화로 이어졌다. 학생들이 가장 좋아했던 사례는 BBC의 인터랙티브 기사를 이야기할 때였다. 국적과 나이를 입력하면 기대 수명과 건강 수명을 계산해 주고 다른 나라들과 차이를 보여준다.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는 아니었지만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토론 주제를 던져줬다. 인터랙티브하거나 기술적으로 높은 수준일 필요는 없다. 요즘에는 AI와 뉴스 디자인에 대해 살펴보는 사람들도 많다. 만약 AI와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수업이 있다면 우리 학생들이 매우 좋아할 것 같다. 솔루션 저널리즘과 집단지성 이론을 함께 배우거나 교육 이론, 시민참여(citizen power), 그리고 예술, 디자인 등에 접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일반적인 뉴스 조직이나 프로페셔널 저널리스트에게는 기존의 관행을 벗어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될 수 있겠지만 시민 사회 영역에서도 새로운 참여와 사회 혁신의 가능성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 한국에서는 솔루션 저널리즘이란 개념이 잘못 오해되고 있기도 하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해결사(problem solver) 저널리즘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 워크숍에서 배운 건 단순히 좋은 기사와 문제 해결 과정에 집중하는 기사는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 둘의 차이를 구분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완벽한 해법은 있을 수 없다. 한쪽에서는 해법인 게 다른 쪽에서는 해법이 아닐 수도 있고 부분적인 해법일 수도 있다. 저널리스트들은 솔루션 저널리즘의 경계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입양아 문제를 연구하면서 솔루션 저널리즘과 액티비즘을 결합한 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진행했기 때문에 해결 지향 스토리텔링을 실제로 문제 해결에 활용하는 게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의 핵심은 이해관계 충돌, 맥락과 과정을 드러내라.”

[인터뷰] 알프레도 카사레스 스페인 인스티튜토콘스트럭티보 설립자, “솔루션 저널리즘은 탐사 보도의 연장이고 확장.”

덴마크에서 시작한 컨스트럭티브(건설적인) 저널리즘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솔루션 저널리즘의 개념을 확장하고 있다. 인스티튜토콘스트럭티보(Instituto de Periodismo Constructivo)는 스페인에서 언론인들에게 솔루션 저널리즘을 교육하는 비영리 조직이다. 설립자인 알프레도 카사레스(Alfredo Casares)는 마이애미헤럴드와 디아리오나바라(Diario de Navarra) 등에서 탐사 보도 기자로 일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솔루션 저널리즘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실험에 뛰어들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6월29일 알프레도 카사레스를 만났다.

– 스페인에서의 솔루션 저널리즘 실험은 어떤가. 간단히 소개해 달라.
“먼저 미디어오늘의 글로벌 인터뷰에 참여하게 돼 영광이다. 내 생각에 이 프로젝트는 글로벌 무브먼트다. 우리는 서로를 지지하고 연대해야 한다. 우리는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을 스페인에 소개하고 언론인들을 교육하는 비영리 조직이다. 지난해 1월 설립했고 여전히 도전과 실험의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설립 이후 2년 동안 300명 정도의 저널리스트들을 교육했고 주요 대학의 저널리즘 관련 학과 학생들 450여 명을 교육했다. 주요 언론사들이 솔루션 저널리즘을 도입하도록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의 가장 큰 성과는 스페인에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는 거다. 적어도 스페인의 많은 언론인들이 솔루션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고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 인스티튜토콘스트럭티보는 수익 모델이 있나.
“우리는 비영리 조직이고 수익의 60% 정도는 국제 조직의 도움을 받았다. 다른 언론사들의 지원도 있었고 컨설팅과 워크숍 운영으로 매출을 만들기도 했다. 유일하게 풀 타임 직원은 나 혼자고 10여 명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들이 함께 하고 있다.”

–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펠로우십 지원으로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지원 금액이 그리 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실 거의 도움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솔루션 저널리즘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조직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됐다. 혁신 기업가들을 지원하는 아쇼카 스페인에도 연락했다. 아쇼카는 조건이 까다롭고 의미 있는 성과를 요구했다. 도대체 당신들이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당장 조직을 만드는 것보다 조직의 내러티브를 만들고 확장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조직의 기반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됐다. 중요한 건 속도를 만드는 거다. 우리가 모든 언론인들을 설득할 수는 없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컸다. 다행히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는 저널리스트들을 만나게 됐고 이 사람들과 함께 워크숍 프로그램을 실험할 수 있었다.”

– 두 가지 개념을 섞어서 쓰고 있는데 솔루션 저널리즘과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의 차이는 뭔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근본적인 차이는 솔루션 저널리즘은 2012년 무렵 미국에서 출발했고 굉장히 실용적인 아이디어라는 거다. 5가지 가이드라인을 요구하는데 이걸 따르면 솔루션 저널리즘이다. 2015년에 유럽에서 출발한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은 긍정의 심리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포괄하면서 시민의 참여와 사회적 토론을 이끄는 저널리즘이 필요하다는 제안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미국에서도 솔루션 저널리즘의 개념이 좀 더 넓어지면서 지금은 동의어처럼 쓰이는 것 같다. 두 가지 방향이 있는데 하나는 복잡한 내러티브를 끌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문제는 복잡한 이해관계의 충돌에서 비롯한다. 문제 해결의 과정에 다양한 맥락을 반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접근은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이 추구하는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까다롭거나 엄격하다고 생각하는 기자들도 많다. 이건 솔루션 저널리즘이고, 이건 솔루션 저널리즘이 아니고, 이런 구분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까다로운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가이드라인이 진입 장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탐사 저널리즘과 솔루션 저널리즘을 비교하면 우리가 권력을 감시하고 부패와 비리를 폭로할 때 철저하게 사실 확인과 검증, 반론 등의 절차를 요구한다. 기자들은 문제를 엄격하게 다루는데 익숙하다. 솔루션 저널리즘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이야기할 때나 문제에 대한 대응을 이야기할 때나 엄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문제 해결의 과정을 추적하는 탐사 저널리즘이라고 설명하면 좀 더 이해가 빠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솔루션 저널리즘의 형식적 요건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 핵심은 문제 해결의 과정에 집중하되, 근거와 한계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거다. 마법 같은 해법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실패에서도 배울 게 있고 그런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게 솔루션 저널리즘의 중요한 역할이다. 흔히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가 너무 길고 취재에 시간이 많이 드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좀 더 유연한 방식도 고민하고 있다. 좀 더 짧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고 기자들에게도 그렇게 제안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입장벽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시리즈 기사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모든 기사에 솔루션 저널리즘의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 한국의 경우 솔루션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사례가 많지 않아서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도 처음에 그 부분이 어려웠다. 미국이나 덴마크의 기사를 옮겨다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우리는 그래서 기자들에게 직접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를 써보게 했다. 같은 기사에 해결 지향의 관점을 담는 것만으로도 기사의 임팩트가 달라진다는 걸 체험해 보게 하기 위해서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솔루션 트래커에는 수천 건의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가 올라와 있는데 여기도 그렇게 까다롭지는 않다. 확장성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 해결에 이르는 과정에 집중한다는 사실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작은 해법이라도 의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근거와 한계를 언급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런 요건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과 다르지 않다.”

– 한국에서는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저널리스트가 이런 것까지 해야 돼? 언론의 사명은 진실을 보도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것 아닌가? 문제를 드러내는 게 언론의 역할이고 문제의 해결은 정치의 영역 아닌가? 이런 반응이 많았다.
“우리도 같은 질문을 맞닥뜨리고 있다. 기자들이 그동안 하던 방식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냉소를 극복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그게 가능하겠어? 라고 묻는 언론인들이 많다. 당장 뭔가 더 선정적이고 충격적인 기사를 찾게 된다. 그래야 많이 읽고 온라인 광고 효율도 좋아진다. 기자들도 관행적으로 잘 읽히는 기사를 쓰게 되고 에디터들도 그런 기사를 쓰라고 하게 된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단순히 좋은 이야기와 구분해야 한다는 건 솔루션 저널리즘의 문제 의식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다. 데이빗 본스타인이 경고한 것처럼 당장 누군가를 돕기 위해 집단 청원을 한다거나 후원금을 받아서 전달한다거나 하는 걸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런 접근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고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게 솔루션 저널리즘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기자들이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접근 방식을 바꾸고 인터뷰 대상과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워크숍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설명하면서 무엇이 솔루션 저널리즘이 아닌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첫 번째 기사를 쓸 때까지 구체적으로 기획과 스토리텔링을 함께 고민하는데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게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누구를 찾아가 만날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무슨 질문을 먼저 꺼낼 것인지, 어떤 질문을 더 던질 것인지, 어떤 부분을 더 강조할 것인지, 이런 차이가 중요하다.”

–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에서는 ‘솔루션 사기꾼(imposter)’를 경계하라고도 한다. 많은 기자들이 ‘내가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선언하고 싶은 욕망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기자들이 존경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해결 과정을 추적하기 보다는 해법을 찾겠다고 나서려는 유혹에 빠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부분을 기자들에게 어떻게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의견이 있나.
“기자들을 교육할 때 실제로 부딪히는 고민이다. 문제 해결에 이르는 과정을 보도하는 것과 기자들이 해법을 내놓는 것은 전혀 다른데 둘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기자들이 해법을 만들라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한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하는 일은 문제에 맞서는 과정에서 어떤 실험과 시도, 실패가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것이다. 기자들이 해법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를 테면 미국 콜로라도주에서는 미성년자 임신이 50%가 줄고 미성년자 낙태가 60%가 줄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무슨 변화가 있었고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여기에서 우리가 어떤 아이디어를 얻고 또 활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는 거다.”

– 당신 이야기를 해 달라. 저널리즘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목표를 갖게 된 동기가 있나.
“기자 생활을 하면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건 다른 많은 기자들과 비슷할 것 같다. 권력을 감시하고 부패를 추적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고발하고 등등. 나는 오랫동안 탐사 보도 기자로 일했다. 그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솔루션 저널리즘이란 개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게 저널리즘이라기 보다는 사회 운동이나 시민 활동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에서 트레이너 교육을 받고 아큐멘(Acumen) 펠로우십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난 뒤 솔루션 저널리즘이 새로운 도전이고 사회적 임팩트가 크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문제를 드러내고 책임자들을 고발하는 것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여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다른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 그게 우리가 보도해야 하는 또 다른 반쪽이라고 생각한다.“

– 학생들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던데 당신들이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무엇인가. 기자들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과 다른가.
“기자들을 교육할 때는 솔루션 스토리텔링의 효과를 비교하면서 시작한다. 같은 기사라도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기사의 메시지가 달라지게 된다. 기사 작성 경험이 많지 않은 학생들과 이야기할 때는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가르친다. 둘을 비교하면 기자들을 교육하는 게 훨씬 더 어려웠던 것 같다. 그동안의 관행과 습관을 바꾸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스페인의 한 대학교와 12학점짜리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협의하고 있다. 제안서를 만들고 있는데 400시간 분량의 교육과 실습이 병행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 기자들이 잘 안 바뀔 텐데, 경영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결국 그동안 하던 뭔가를 포기하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문제다.
“저항이 적은 사람부터 시작하면 된다. 솔루션 저널리즘에 관심이 있고 의욕이 넘치는 사람들을 모으는 게 좋다. 워크숍을 해달라는 요청도 많은데 워크숍만으로는 안 된다. 고개를 끄덕끄덕하지만 지나고 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언론사 조직의 문화와 우선 순위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것과 뭐가 다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어떤 변화가 가능하다고 계속해서 설득해야 한다. 우리가 확신하는 건 솔루션 저널리즘이 독자들과 관계를 강화하고 더 많은 수익 기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거다. 의지를 갖고 변화를 실험해야 한다.”

– 다음 계획은 뭔가. 레거시 언론사들을 바꾸는 것인가, 아니면 젊고 혁신적인 저널리스트들을 만드는 것인가.
“일단은 조직을 재단으로 바꾸는 것이다. 후원 기반의 프로젝트를 운영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계였고 훨씬 더 큰 임팩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뭔가를 보여주려면 직접 콘텐츠를 기획하고 발행해야 한다. 레거시 언론사들을 설득하고 교육하는 일도 계속하겠지만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건 젊은 언론인들을 키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