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 지향의 보도, 더욱 강력한 저널리즘이 필요하다.”
[인터뷰] 제레미 드러커 트랜지션온라인 대표, “관점의 전환, 솔루션 렌즈로 들여다 보자.”
제레미 드러커(Jeremy Drucker)는 미국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국제 문제를 전공했다. 뉴욕대학교 교수를 지내다가 체코 출신의 지금의 아내와 결혼해서 프라하로 건너왔다. 2017년 봄 우연히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 데이빗 본스타인의 강연을 듣고 솔루션 저널리즘에 뛰어들게 됐다. 그때만 해도 데이빗의 강의를 들은 체코의 언론인들이 대부분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체코도 한국처럼 언론에 대한 불신이 매우 높은 나라다. 언론인들의 좌절과 무기력도 그만큼 컸다.
제레미는 2018년부터 언론인들에게 솔루션 저널리즘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4년 동안 폴란드와 헝가리, 슬로바키아, 터키 등 650여 명의 동유럽 지역 언론인들이 참석했다. 제레미가 설립한 트랜지션온라인(TOL, 이하 트랜지션)은 동유럽의 솔루션 저널리즘 허브 사이트로 자리 잡았다.
트랜지션은 솔루션 저널리즘을 소개하고 교육하는 것 뿐만 아니라 직접 솔루션 저널리즘 취재를 하고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기도 한다. 여러 언론사들에 교육과 멘토링, 컨설팅, 공동 취재 등을 지원하면서 솔루션 저널리즘의 네트워크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트랜지션은 프레스스타트(Press Start)라는 이름으로 동유럽의 언론인들을 지원하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도 운영하고 있다. 미국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솔루션 트래커에 공개된 솔루션 저널리즘 사례를 번역해 체코어와 헝가리어, 루마니아어, 알바니아어 등으로 번역해서 소개하기도 한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6월24일 프라하에 위치한 트랜지션 사무실 인근 카페에서 제레미 드러커를 만났다. 제레미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체코도 뉴스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너무 심했다”면서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변화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제레미와의 일문일답.
– 해마다 솔루션 저널리즘 어워드를 시상하고 있다고 들었다. 체코 언론인들의 반응은 어땠나.
“사실 처음 몇 년은 후보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솔루션 저널리즘의 기준에 맞는 기사가 거의 없었다. 기자들이 냉소적이었고 언론이 왜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들었다. 내가 조언하고 싶은 건 정말 바뀔 것 같지 않지만 계속해서 강조해야 한다는 거다. 이런 이벤트를 계속하면서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다고 생각한다. 상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기자들이 늘어났고 이 상의 취지가 알려지게 됐다. 상금이 크지는 않다. 사실 상금이 중요한 건 아니다. 인식을 바꾸려면 끈질기게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
트랜지션의 공동 설립자 가운데 한 명인 루시 체르나(Lucie Černá)는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와 인터뷰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하는 이 이상한 개념이 유행어처럼 확산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한 번쯤 들어보기는 했다고 말할 정도가 됐다”는 설명이다.
제레미는 “우리의 목표의 3분의 1 지점까지 왔다고 생각한다”면서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이해가 늘었지만 여전히 솔루션 저널리즘이 프로세스로 자리 잡은 단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저널리스트들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더란 대목이 특히 관심을 끌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널리스트가 이런 것까지 해야 돼? 언론의 사명은 진실을 보도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저널리스트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해결했나.
“쉽지 않았다. 우리도 오랫 동안 고민해 왔던 문제다. 하지만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현장의 기자들도 문제를 알고 있고 다른 대안을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토론을 했다. 몇몇 기자들이 관심을 보였고 설득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1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수 있다. 끈질기게 계속 제기해야 한다. 우리가 어워드를 진행하면서 얻은 교훈은 기자들도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거다. 많은 기자들이 기사의 영향력을 고민한다. 독자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게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안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체코 국민의 34%만 뉴스를 신뢰한다고 답변했다. 핀란드(69%)와 덴마크(58%) 등 북유럽 국가들은 평균 보다 높지만 동유럽의 헝가리와 슬로바이카 등은 27%와 26% 수준이다. 참고로 한국은 30%다.
– 한국에서는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이 어색하다. 사례도 많지 않다. 기자들은 여전히 어려워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문제 중심의 취재와 보도에 익숙한 기자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경력이 많은 기자들일수록 저항이 컸다. 우리가 기사에 대한 의견을 말하면 언짢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이 뉴스룸에서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바뀌지 않으면 뉴스룸의 문화를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 멘토링이나 컨설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파트너십 정도로 시작하는 게 서로 부담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계속해서 방향을 제안하고 설득하는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지역 이슈에서 출발하는 게 좋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사례를 이야기해 봐야 그런가 보다 하기 쉽다. 우리의 이야기로 시작해야 한다.”
– 한국의 언론인들은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까다롭다고 생각한다. 이런 건 솔루션 저널리즘이 아니고 이런 건 이런 문제가 있고 등등의 기준을 불편하게 여기는 경우도 많다. 그동안 하던 대로 문제를 잘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문제 해결에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하는 기자들도 있다.
“어려운 문제다. 우리가 쓰는 기사도 이런 가이드라인을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건 아니다. 우리도 처음에는 문제 해결의 과정에 집중하고 한계와 전망을 반영하고 등등 가이드라인을 고민했지만 현실적으로 모두 만족하는 기사를 쓰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이해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럴수록 기본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칫 해법을 고민한다는 접근을 적당히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포장하다 보면 방향이 모호해진다. 철저하게 문제 해결의 과정을 드러내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 그래서 당신들은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가 제안하는 가이드라인을 엄격하게 지키나. 아니면 좀 느슨하게 가져가나?
“가이드라인은 큰 방향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당신들이 결정하면 된다. 가이드라인을 따를 수도 있고 좀 더 유연한 원칙을 만들 수도 있다. 쉽지 않다는 걸 전제하고 시작하면 설득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기자들은 이게 맞는 방향이라는 걸 알 거다. 기사 형식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깊이 있는 기사는 분량도 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해법을 충분히 설명하면서도 짧고 강력한 기사도 얼마든지 있다.”
– 기자들이 생각이 바뀌게 되는 계기가 있었나.
“기자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반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두가 해결 지향의 보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다. 결국 우선 순위의 문제고 조직 문화의 문제다. 데이빗 본스타인이 강조한 ‘솔루션 렌즈’라는 걸 생각해 보자. 기사를 작성하기 전에 한 번 더 질문을 던지고 해법이 무엇인가 좀 더 들어가 보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행운이 따랐던 것 같다. 동료 기자들이 이해가 빨랐고 열정이 넘쳤다.”
– 언론사들과 협업은 잘 진행됐나.
“언론사들에 취재 비용을 지원할 때도 있지만 경험이 많은 저널리스트들과 함께 일할 때는 멘토링보다는 파트너십으로 접근했다. 여전히 많은 언론인들이 문제 중심의 보도에 익숙하기 때문에 논조나 방향에 대한 코멘트를 거부하거나 불편해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본다.”
– 당신 이야기를 해 달라. 당신은 액티비스트인가 저널리스트인가. 솔루션 저널리즘 기반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물론 나는 액티비스트가 아니라 저널리스트다. 이걸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우리가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는 건 아니다. 문제에 개입하는 것도 거리를 둬야 한다. 나는 액티비스트는 아니지만 좋은 저널리즘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나는 지역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변화가 작동하는 방식을 기록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을 설득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기사가 쌓이면 쌓일수록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해외 사례를 찾는 건 매우 중요하지만 단순히 사례를 가져와서 소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가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체코에서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유료 구독이나 후원이 늘어나고 있나.
“뉴스에 돈을 내는 사람은 매우 적고 체코 역시 마찬가지다. 후원이나 기부로 시작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선의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도 있다. 우리는 철저하게 콘텐츠에 집중하기로 했다. 비용을 줄이면서 임팩트를 극대화하고 유료 구독자를 꾸준히 늘려가는 게 최선의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충성 독자를 확보해야 한다. 지금은 교육도 하고 직접 뉴스도 만들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뉴스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게 우리가 가장 잘 하는 일이고 잘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액 기부자가 있으면 훨씬 쉬웠겠지만 특정 개인의 영향력에 휘둘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우리 기사를 지지하는 독자들이 늘고 있다.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후원자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제휴 제안도 많다.”
–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빌 게이츠나 록펠러 재단 같은 큰 손의 지원이 있었다. 당신들은 어땠나.
“우리는 처음부터 구독과 후원 모델로 시작했다. 초기 운영 자금이 충분하지 않다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우리는 정규직과 파트타임, 그리고 프리랜서, 인턴 등이 함께 일하고 있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솔루션 저널리즘도 결국 비즈니스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고 콘텐츠의 경쟁력을 계속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정적 어려움에 빠지게 될 거다. 기사 수는 많지 않아도 된다. 다만 확실하게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 프레스스타트는 트랜지션과 다른 프로젝트인가.
“프레스스타트는 헝가리와 루마니아, 불가리아, 슬로베니아 등의 언론인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와 구글뉴스이니셔티브(Google News Initiative)의 지원도 받고 있다. 국제 마약 네트워크에 대한 탐사 보도와 폴란드의 가정 폭력 등의 이슈를 다뤘다. 우크라이나 언론인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캠페인은 4만7000달러를 모금했다. 지금은 탐사 보도 프로젝트가 많지만 장기적으로 탐사 보도와 솔루션 저널리즘이 만나는 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국경을 넘는 협업 보도가 가능한 건 우리가 모두 같은 문제를 겪고 있고 우리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