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 실험, 뉴스룸이 바뀌기 시작했다.”

[지상중계]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 컨퍼런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

다음은 6월22일 독일 본에서 열린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왜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이 편집 전략에 적용돼야 하는가(Why constructive journalism is being adopted by journalism leaders as an editorial strategy)”라는 주제로 열린 세션을 정리한 것이다. 덴마크 함부르크미디어스쿨에서 저널리즘 혁신 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는 알렉산드라 보르하르트(Alexandra Borchardt)이 모더레이터를 맡고 조지아공영방송(Georgian Public Broadcaster)의 사장 티나틴 브레젠시빌리(Tinatin Bredzenishvili)과 도이체벨레(DW)의 아시아 부문장 데바라티 구하(Debarati Guha), 더타임스의 편집국장 제레미 그리핀(Jeremy Griffin), 덴마크의 TV2FYN의 최고경영자 에스벤 시럽(Esben Seerup)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알렉산드라 보르하르트 :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이 편집 전략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덴마크부터 시작할까요?

에스벤 시럽 : 저의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전략을 시행하려고하면 여러분들과 같이 일하는 직원들은 즉각적으로 두 가지 질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첫째, 이 변화는 나에게 더 많은 일거리가 생기게 되는 것일까. 둘째, 이 변화를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내가 보는 손해 또는 나의 명성의 변화가 있을까 하는 것이죠. 4년 전에 우리는 한 가지 결정을 했습니다. 최고 경영자인 저는 다른 경영진과 함께 어떻게 하면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을 모든 프로세스에 도입할 수 있을까 의논했죠. 컨스트럭티브 뉴스 하우스를 만드는 데 3년 정도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와서 돌아 보니 이게 모두 과정이지 끝이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과정을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덴마크에 있는 지상파 방송국이고 하루 네 번 뉴스를 전달합니다. 우리는 온라인에 훨씬 더 많은 독자들이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로 꼽히기도 했고요. 컨스트럭티브 프로세스를 도입하면서 가장 좋다고 생각했던 건 저널리즘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날마다 기자와 에디터, 데스크들이 회의를 하죠. 우리는 이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토론합니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전달하는 게 맞는 것일까, 이 이야기를 방송에 내도 될까, 등등 말이죠. 우리는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집을 짓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회의에 회의를 거듭했죠. 그리고 아직도 짓고 있는 중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컨스트럭티브한 언론사는 아니라도 적어도 덴마크에서는 가장 컨스트럭티브한 미디어 하우스가 되자, 그래서 그해 가을에 74명의 뉴스룸 스탭들이 모여서 11개 팀으로 나뉘어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1주일 동안 우리가 생각하는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의 정의가 무엇인지 이야기했죠. 컨스트럭티브 에디터라는 직책도 만들었습니다. 11개의 팀이 서로 소통하는 역할을 맡았죠.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컨스트럭티브 조직으로 진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기자들도 많았지만 조금씩 오해가 풀렸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끝낼 무렵,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했는데 그래서 우리가 배운 것들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우리는 이 집의 지붕을 올렸습니다. 세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지역 선거가 있을 때는 10개의 구역을 나눠 10개의 토론 이벤트를 주최했습니다. 지금은 또 새로운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판적인 동시에 컨스트럭티브해야 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안을 찾아야합니다.

보르하르트 : 티나틴은 처음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컨스트럭티브인스티튜트의 제안이 계기가 됐나요. 아니면 기존의 생산 방식이 지긋지긋해졌나요. 아니면 독자들이 떠나기 때문이었나요.

티나틴 브레젠시빌리 : 일단 몇 차례 단일 프로젝트의 결과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긍정적이고 뜨거웠습니다. 출발이 좋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7년에 컨스트럭티브인스티튜트가 출범하면서 협업 프로젝트도 진행할 수 있었고요. 확실히 언론과 독자의 연결이 끊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뉴스룸의 변화는 더디고 어렵죠. 어떤 새로운 전략이 필요할까 늘 고민했습니다. 물론 울리크 하게룹(Urlik Haagerup)의 책을 읽고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조직 문화를 바꾸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사람들을 모았고 TV와 라디오, 온라인의 벽을 허물고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모임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기자와 PD들은 행복해 했지만 수많은 질문이 생겨났죠. 컨스트럭티브 뉴스를 시작하게 된 건 이런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경영진도 적극적이었습니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자고 제안하고 지원해줬습니다. 우리 동료들은 울리크의 강의를 듣자마자 매료됐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널리즘이라고 저에게 메시지를 보낸 동료도 있었습니다. 많은 동료들이 영감을 받았고 다른 동료들에게 이를 전파했습니다. 9월부터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주 1회 컨스트럭티브 뉴스를 내보낼 것이고 더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기자들을 설득하는 게 가장 어려웠지만 지금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기존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모으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르하르트 : 영국도 뉴스 회피 현상이 심각하죠. 이 부분을 이야기해 볼까요. 컨스트럭티브한 전략이 효과적었는지 궁금합니다.

제레미 그리핀 : 몇 년 전 울리크가 우리를 만나러 왔을 때가 기회였습니다. 팬데믹 직전이었죠. 우리는 지난 10여 년 동안 숨 쉴 틈도 없이 바빴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제가 이렇게 장담하는 건 우리 모두가 끝없이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와 뒤따르는 사건들에 치이고 있기 때문이죠.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리포트에서 드러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뉴스를 회피합니다. 브렉시트 국민 투표 이후 더 심해졌고요. 흥미로운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2000명 정도의 영국 거주 무슬림에 대한 설문 조사가 발표된 적 있습니다. 영국에서의 그들의 삶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여전히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좋아진다는 거죠. 그런데 마침 같은 날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예언자 무하마드의 딸을 다룬 ‘천국의 여인(Lady of heaven)’이라는 영화였는데 이 영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여러 영화관에서 상영을 취소했습니다. 가장 큰 멀티 플랙스인 씨네플렉스도 모든 일정을 취소해 버렸죠. 이 두 사건이 모두 같은 날에 일어났는데 흥미로운 건 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입니다. 대부분의 언론이 이 두 사건을 다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국에 있는 무슬림에 대한 설문 조사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문사들이 반 이슬람 정서를 크게 다뤘죠. 여러분은 우리가 뉴스 가치를 판단하는 데 다른 기준을 다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논쟁을 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왜 두 이야기를 다 다룰 수 있는데 다루지 않는지에 대한 아쉬움을 갖게 됐습니다. 좀 더 컨스트럭티브하게 다룰 수 없을까. 우리는 젊은 무슬림 기자 한 명에게 추가 취재를 맡겼습니다. 실제로 기사가 나간 뒤 확연한 차이가 드러났습니다. 부정적인 이야기보다 훨씬 더 많이 읽고 반응도 좋았죠.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의 가치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겠지만 중요한 건 구독자들을 붙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독 기반의 뉴스 기업에게는 정말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저널리스트로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 구독자들이 읽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중앙 난방이 친환경적이라는 기사가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킨 적 있는데요. 영국 전역에서 토론이 벌어졌고 가스 보일러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기도 했고요. 사실 이런 기사는 아주 기본적인 부분을 건드렸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사를 더 많이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에서 가장 열독률이 높은 기사가 뭔가 조사한 적이 있는데 우리 과학 에디터가 쓴 기사였습니다. 팬데믹의 원인과 해법을 이야기한 기사였죠. 전체적으로 냉소적이기도 하고 비판적인 부분도 있지만 컨스트럭티브한 기사였죠. 이런 기사를 더 많이 써야 한다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우리 기자 가운데 컨스트럭티브인스티튜트에서 인턴 생활을 한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를 에디터로 키울 계획입니다. 우리 경험으로는 컨스트럭티브한 접근은 열독률을 끌어올리고 구독 확대에도 도움이 됩니다. 저널리즘 차원에서도 좋은 기사지만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되죠.

보르하르트 : 구독 모델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많죠. 실제로 뉴스에 돈을 내는 사람은 많아 봐야 9% 수준입니다. 영국은 특히 BBC나 가디언 같은 공영 언론 모델이 있어서 유료 구독이 더 어렵기도 하고요.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을 지향하겠다고 선언한 뒤에 구독자 수에 의미있는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핀 : 우리는 유료 구독자가 65만 명 정도 됩니다. 최근 2년 사이 15만 명이 늘어난 규모입니다. 지금도 계속 늘고 있죠. 목표는 100만 명입니다.

보르하르트 : 컨스트럭티브한 기사가 더 잘 읽힌다고 볼 만한 근거가 있나요?

그리핀 : 우리는 열독률 지표를 관리하는 독자 분석 팀이 있습니다. 우리는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이 특별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일반적인 프로세스로 자리잡기를 원합니다. 컨스트럭티브한 기사가 훨씬 더 많이 읽히고 구독으로 연결되는 비율도 훨씬 높습니다. 구독 연장 비율도 높고요.

보르하르트 : 도이체벨레는 어떤가요? 젊은 사람들이 컨스트럭티브한 뉴스를 더 좋아한다는 분석도 있었는데 그렇게 본다는 건가요. 실제로 근거가 있는 분석인가요?

데바라티 구하 : 확실히 지표로 나타납니다. 기후 변화 이슈는 젊은 여성 독자들의 열독률이 높습니다. 이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살펴보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보르하르트 : 다행입니다. 제가 자라던 시대에는 여성이 핵심 독자가 아니었죠. 그래서 저는 남성의 시각으로 저널리즘을 다뤘던 것 같습니다. 도이체벨레에서 실험하고 있는 컨스트럭티브 포맷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구하 : 저는 아시아인으로 도이체벨레의 아시아 디렉터를 맡은 첫 사례입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인데 많은 사람들이 50년 안에 방글라데시가 물에 가라앉을 거라고 믿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기후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우리는 기사로 쓰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죠. 우리는 단지 기후 변화가 어떻다 오존층이 어떻다 이런 기사를 쓰는데 독자들은 그런가 보다 하게 되죠. 복잡하고 심각하고 재미없는 이야기죠. 이게 우리가 컨스트럭티브한 기사를 고민하게 된 계기입니다. 하지만 해결 지향의 보도를 해보자고 제안하고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도이체벨레는 전 세계에 32개 언어로 뉴스를 송출하고 있죠. 경영진은 뉴스에 집중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이 변화의 계기가 됐습니다. 독자들이 뉴스에서 멀어지고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포맷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였던 거죠. 사실 우리가 솔루션 저널리즘을 실험한 건 6~7년 전입니다. ‘에코 인디아(Eco India)’라는 프로그램이 반응이 좋았습니다. 인도에서 출발했지만 인도와 유럽이 마주하고 있는 기후 변화 이슈와 몇 가지 해법을 제안했습니다. 사람들을 겁주고 공포에 빠져들게 하는 보도 말고 실제로 뭔가 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보도를 고민했습니다.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은 적당히 밝고 따뜻한 이야기가 아니라 희망을 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코 인디아는 힌두어와 영어, 뱅골어, 타밀어 등 네 가지 언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단순히 해법을 던지는 게 아니라 함께 해법을 고민해 보자고 제안하는 성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캄보디아에서는 이런 사례가 있었습니다. 플라스틱을 주워다 전등을 만들었죠. 캄보디아에는 아직도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지역이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여전히 많은 아이디어를 줍니다. 캄보디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함께 읽을 수 있는 기사죠.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을 환경 문제 뿐만 아니라 다른 이슈로 넓힐 수 있을까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포맷을 실험했고요. 이를 테면 이런 건데요. 42명의 자녀를 둔 남자가 있습니다. 실제로 이 사람의 아이들이 아니라 HIV를 겪고 있는 아이들을 입양해서 보살피고 있는 거죠. 젠더 평등에 대한 이야기도 다뤘습니다. 라틴아메리카계 전문가가 있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반대했죠. 아시아 사람들이 왜 라틴계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하느냐고 생각했죠. 그래서 방글라데시에 대한 이야기면 방글라데시나 인도에서 전문가를 찾고 파키스탄의 문제면 파키스탄이나 최소한 같은 언어로 소통이 되는 전문가를 찾았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문제도 다뤘습니다. 인도에서는 금기어자 마찬가지였죠. 인도에 있는 그 누구도 세 번째 젠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도에서 모더레이터를 섭외해서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설명했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보는 오리엔털리즘이 아니라 아, 이 사람이 우리를 충분히 알고 말하는구나, 민감한 부분이 어디인지 아는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죠. 고질적인 카스트의 문제도 컨스터럭티브 포맷으로 다뤘습니다. 엄청난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동영상 구매 문의도 많았고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방송을 보게 됐고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음식 쓰레기를 다룬 기사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리포트는 단순히 어느 정도의 음식이 버려지고 있는가를 다룰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안하는 형식입니다. 기자가 직접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보여줍니다. 누군가가 이 리포트를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 그게 바로 컨스트럭티브한 거죠. 제가 생각하기에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은 새로운 게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실제로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담긴 좀 더 적극적인 저널리즘 문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르하르트 : 여러 나라를 커버하고 있잖아요. 아시아는 문화가 정말 다양한데 한 지역에서 만든 컨스트럭티브한 포맷이 다른 나라에서도 효과적인가요?

구하 : 저는 이란부터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넓은 영역을 맡고 있는데 문제는 중국 대륙에 있는 구독자가 읽고 싶은 것이 파키스탄이나 인도 또는 방글라데시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과 공통점이 거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지 자료가 매우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쓰는 마스터 포맷이 있습니다. 일러스트를 이용해 언어의 차이를 좁혀 나가는 거죠. 지역의 차이를 고려해 단순 번역이 아니라 전달 방식도 바꿔야 합니다. 지역 전문가들이 필요합니다. 하나의 포맷으로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물론 비용 문제도 고려해야죠. 하지만 우리는 이런 실험을 계속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일단 3개월은 해보고 그 뒤에도 어렵다면 그때 그만둬도 된다고요.

보르하르트 : 질문이 있습니다. 컨스트럭티브 뉴스를 만들려면 일이 더 늘어날까요? 회사 입장에서는 인력 투입이 늘어날까요? 심층 저널리즘이 더 비싸고 자원이 많이 필요하다는 오해가 있습니다.

시럽 : 중요한 질문입니다. 저희가 처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4개월 안에 추가로 인력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문서로 결재까지 받았죠. 잘 되길 바랐기 때문이죠. 그런데 실제로 추가 지원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쓰는 기사가 수많은 기사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더 어렵거나 더 복잡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약간의 방향의 차이일 뿐이죠. 그래서 토론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상대적으로 더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은 새로운 어떤 것이라기 보다는 약간 다른 종류의 기사일 뿐입니다. 전달 방식이 다른 거죠.

구하 : 동의합니다. 우리는 전통적인 스타일의 기사도 같이 씁니다. 모든 기사를 컨스트럭티브하게 써야 하는 건 아니고요. 정보 전달이 의미가 있는 경우도 많죠. 만약 컨스트럭티브하게 구성재 보자고 한다면 직접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해야 합니다. 당연히 비용과 시간이 더 많이 들죠. 동일한 예산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도 필요합니다. 어제 BBC의 솔루션 에디터를 만나서 물었더니 BBC도 수요가 더 큰 포맷에 집중한다고 하더라고요. 당연히 속보도 필요하죠. 하지만 사람들은 발생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뭔가 더 분석적이고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는 이슈를 찾죠. 케이크 위에 체리처럼 말이죠. 결과적으로 비용이 더 들지만 한정된 자원을 잘 분배해야 합니다.

보르하르트 : 컨스트럭티브한 이슈에 비용을 더 들이나요?

그리핀 : 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희가 생각하는 건 독자들이 더 많은 콘텐츠를 원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양보다 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거죠. 결과적으로 효율적으로 전략을 세우면 비용은 중립을 지키게 된다고 믿습니다.

보르하르트 : 뉴스룸에서의 인센티브 구조가 어떻게 되나요? 기자들에게는 평판과 명성도 중요한 동기 부여가 되죠?

브레젠시빌리 : 컨스트럭티브 뉴스는 단순히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관점을 제안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접근이 확실히 더 큰 반응을 끌어냅니다. 뉴스룸 안에서 컨스트럭티브 뉴스에 대한 별도의 지원은 없습니다. 적어도 예산을 더 쓰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무엇이 더 중요한가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결국 한정된 자원으로 우리가 가장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죠. 저는 이런 새로운 도전과 실험이 너무나도 즐겁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동기 부여와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동의합니다. 고민해 보겠습니다.

보르하르트 : 이 정도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좀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 기사를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다들 쉽지 않은 환경에서 도전하고 있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기자는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는 사람.”

[인터뷰] 메디아시떼 독자 에디터 피에르 리보비치, “솔루션 저널리즘도 탐사 보도의 연장… 독자들에게 답이 있었다.”

프랑스의 메디아시떼(Mediacite)는 리용(Lyon)과 낭트(Nantes), 툴루즈(Toulouse) 등의 지역을 다루는 탐사 보도 전문 매체로 출발해서 지역 단위의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실험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7월22일 메디아시떼의 독자 에디터를 맡고 있는 피에르 리보비치(Pierre Leibovici)를 만났다.

– 메디아시떼는 솔루션 저널리즘 전문 매체는 아니다. 탐사 저널리즘과 솔루션 저널리즘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2016년에 지역 기반의 탐사 보도 신문으로 출발했다. 창간 초기에는 탐사 보도에만 주력했다. 지방의 정치 권력과 기업, 기관에 대한 보도가 많았다. 2018년부터 솔루션 저널리즘 취재를 시작했다. 솔루션 저널리즘과 탐사 보도는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솔루션 저널리즘 방식을 도입한다고 해서 탐사 보도를 중단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솔루션 저널리즘 역시 탐사보도의 한 형태 또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메디아시떼에서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를 본격적으로 작성하기 시작한 건 코로나 팬데믹 직후 2020년부터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지원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지역 차원의 해결 방안을 다루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를 테면 전국적 봉쇄령이 내려진 뒤 노숙자들을 위해 지역 주민들이 먹거리를 제공하거나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전달하는 사례가 있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이런 접근이 지속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갖게 됐고 이듬해 먹거리 문제에 대한 기획 기사를 준비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먹고, 무엇이 더 지속가능한 방식이고 취약 계층을 돕는 방법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독자들에게 질문을 받았고 ‘마스크를 전자렌지에 돌려서 재활용할 수 있느냐’는 가벼운 질문부터, ‘격리 기간에 아이들 교육 격차를 어떻게 해소해야 하느냐’는 무거운 질문까지 답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해결 지향 보도에 적응하게 됐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독자들에게 설명할 수 있었고 피드백을 주고 받으면서 우리 스스로 확신을 하게 됐다.”

– 한국도 주요 언론사들이 서울에 집중돼 있고 지역 신문들은 정작 심층적인 보도에 취약하다. 지역 신문사들이 정작 지역 주민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다. 메디아시떼가 지역에서 신뢰와 평판을 구축한 비결이 있나.
“프랑스 언론의 관심도 파리에 집중되어 있고, 탐사 보도 역시 파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거나 전국 단위 이슈를 다룬다. 지역 신문들은 탐사 보도에 투입할 재원이 없다. 이미 20여 년 전부터 지역 기반의 탐사 보도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지방 정부의 권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데 언론의 감시와 비판이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 신문이 그동안 성장했던 건 이런 독자들의 수요에 반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가 독자들에게 보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구독자들의 85%가 우리 신문을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할 의향이 있다고 답변했다. 굉장히 높은 비율이라고 생각한다. 2020년부터 레이더(Radar)라는 섹션을 만들어 지방 정부의 공약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이런 시도가 구독자 확보에 큰 도움이 됐다고 보고 있다.

– 구독자가 5500명인데 아직 부족하지 않나.
“맞다. 매우 어렵다. 팬데믹 기간에 방문자가 크게 늘었지만 팬데믹 관련 기사를 무료로 풀었기 때문에 실제로 유료 구독 증가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나마 2022년에 들어서면서 하락 국면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구독자 감소는 우리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모든 독립 언론이 겪고 있는 현상이다. 독립 언론 메디아파르트(Mediapart)는 구독자가 21만 명 정도 되는데 우리는 5500여 명에 머무르고 있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도 구독자 수가 줄었다. 독립 언론의 전반적인 위기라고 할 수 있다.”

– 매출 구조는 어떤가. 취재 프로젝트 단위로 후원을 받기도 하나.
“여러 경로로 후원을 받고 있다. 물론 후원과 사업 매출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 매출의 89%는 구독자들의 구독료다. 나머지 11%는 협력 언론기관에서 우리의 기사를 구입하면서 지급한 대금이다. 메디아파르트나 TF2(프랑스 공영 텔레비전 채널)가 주요 고객이다. 자금 조달의 경우 우리 회사는 190명의 주주들이 있다. 주로 200유로 가량의 소액 투자를 하고 있는 독자들이다. 그리고 프로젝트별 지원금이 있다. 이 지원금은 당신이 언급한 세계적인 기관 및 단체에서 주는 지원금이 있고, 국가(프랑스 정부)가 주는 지원금이 있는데 이는 혁신적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금이다.”

– 독자들이 기사 기획에 어떻게 참여하는지도 궁금하다. 니스마땅(Nice-Matin)의 경우 기사 아이템 3개를 제안하면 독자들이 투표로 결정한다. 메디아시떼는 독자들과 어떻게 소통하나. 설문조사나 공개 토론으로 충성 독자를 확보했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우리는 독자들의 질문과 비판에 언제나 답변을 한다는 게 원칙이다. 독자들이 매우 간단하게 의견을 전달할 수 있게 만들었다. 둘째, 어떻게 하면 메디아씨떼가 더 나아질 수 있을지 묻는다. 설문을 3개월에 한 번씩 독자들에게 보내서 답변을 듣고 서비스 개선에 활용한다. 이를 테면 지난 1월에 독자들에게 보낸 질문은 우리의 기사를 볼 때 갖게 되는 감정이나 느낌에 대한 것이었다. 셋째, 사안별로 독자들의 의견을 듣는다. 지난해 먹거리에 대한 취재를 할 때는 우리의 계획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독자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고, 무엇을 알고 싶은지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물었다. 당신들 집 주변에 새롭게 연 식당이나 문을 닫은 식당이 있는지, 당신이 보기에 최근에 식당의 종류 및 형태가 변하고 있다고 느끼는지, 유행하고 있는 식당이나 음식이 있는지, 배달 음식점이 늘었는지 줄었는지 등등. 이에 대해 515개의 응답을 받았는데 전체 구독자의 10% 정도다. 이들의 의견이 상당 부분 기사에 반영됐다.”

– 네 지역에서만 서비스한다. 더 확장할 계획은 없나.
“자주 듣는 질문이다. 처음 설립할 때 이 지역을 선택한 건 이 곳에 탐사 보도 매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르세이에는 마르사튀(Marsactu)가 있고 보르도에는 뤼89보르도(Rue 89 Bordeaux) 같은 독립 언론이 있다. 처음 계획은 10개의 대도시를 기반으로 지역 언론을 만든다는 것이었는데 일단 네 군데서 시작했고 계속 확장할 생각이다. 다만 철저하게 지역에 기반한다는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 솔루션 저널리즘을 훈련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있나.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 프랑스 지부의 도움을 받았다. 처음에는 우리 기자들만 교육을 진행했고, 지난해에는 우리 회사 뿐만 아니라 외부 기고자들까지 포함해 35명이 교육을 받았다. 교육 내용은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올해 하반기에는 지역을 직접 방문해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 대표적인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를 소개해 달라.
“두 가지 기사를 소개하고 싶은데 하나는 말부프(malbouffe) 지역 시민들이 양질의 먹거리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실험을 소개한 기사다.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유기농 식재료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해 단순 원조가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유통 루트를 단축시키고 포장 용기 등의 비용을 줄이는 방법으로 가격을 낮췄다. 여전히 정크 푸드보다 가격이 비싸고 가격 장벽이 있지만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실험이었다. 의류를 물물교환하는 ‘그린디팩트(Greendy Pact)’라는 상점의 사례를 다룬 기사도 평가가 좋았다. 물물교환이지만 1회에 4유로의 수수료 또는 연간 회비 179유로로 운영된다. 오픈 2년 만에 회원이 2000명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1만5000개의 제품이 교환됐다. 옷 한 벌에 5000리터의 물이 필요한데, 그린디팩트는 3년 동안 10억 리터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에서 강조하는 확장성(scalability)과 복제 가능성(replicability)을 모두 담고 있는 아이디어였다.”

–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가 구독자 증가에 도움이 됐나.
“어떤 기사가 유료 구독으로 연결되는지 살펴본 바 있는데 탐사 보도 기사와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가 거의 반반이었다.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가 구독 전환율이 더 높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통령 선거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의 대형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 기사가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절망적이라는 지적을 받곤 했다. 그래서 솔루션 기사의 양을 더 늘려야 한다는 내부적인 문제 의식도 있다.”

– 솔루션 저널리즘을 처음 도입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단순히 좋은 기사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진 기사를 써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기자들은 하던대로 하는 익숙한 관행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나이든 기자일수록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나.
“우리가 맞는 길을 가고 있는지 계속해서 토론하고 반문해야 한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얻은 신념은 기후 변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미디어에 대한 불신에 맞서 작은 변화라도 이끌 수 있는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자가 직접 세상을 바꾸는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시선을 바꾸고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아이디어나 에피소드라도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보도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먼저 솔직함과 정직함을 유지해야 하며, 동시에 비판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둘째 언제나 독자들과 함께 가야 한다. 그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솔직하게 설명하고, 취재 과정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한계에 맞서는 과정이 저널리즘, 지치지 않길 바란다.”

[인터뷰] 레포르테데스뿌아 질 방데르푸텐 편집장, “솔루션 저널리즘도 비판에서 출발…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이 중요하다.”

레포르테데스뿌아(희망의 기자들, Reporters d’espoirs)는 프랑스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을 교육하는 비영리 조직이다. ‘희망의 기자들’은 2004년부터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아이디어를 프랑스 언론사들에게 소개하고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3000명 이상의 언론인들이 ‘희망의 기자들’에서 솔루션 저널리즘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7월5일 ‘희망의 기자들’을 이끄는 질 밴더푸텐(Gilles Vanderpooten) 편집장을 만났다.

– 미국에서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가 출범한 게 2013년이다. ‘희망의 기자들’은 그보다 일찍 프랑스에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을 소개한 건가.
“‘희망의 기자들’은 2004년에 시작했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빌 게이츠 등의 도움으로 비교적 초기에 자금을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많은 연구 성과를 냈다. 미국이 프랑스에 비해 8~9년 늦게 출범한 것 같지만 그 이전부터 문제 의식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1998년부터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고 그 흐름이 이어져서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가 출범했다고 봐야 한다. 영국과 미국에서 먼저 나타난 흐름이다. 물론 미국은 차별과 양극화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산적해 있고 이들이 사회 문제를 대하는 방식을 볼 때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전히 이런 움직임이 영미 중심적이라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 점에서 한국의 관심이 매우 반갑다.”

– ‘희망의 기자들’을 소개해 달라.
“성과도 있고 실패도 있었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희망의 기자들’은 2004년에 출범했다. 1500명 이상의 기자와 언론사 운영자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처음에는 대부분 회의적인 반응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시각과 제안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특히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해결 지향의 보도에 대한 문제 의식이 확산됐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와 별개로 비슷한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 기자들이 있었고 저널리즘 어워드를 만들게 됐다. 처음에는 의도를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냉소적인 반응도 많았다. 종교 기반의 언론사들이 우호적이었고 초창기에는 이 언론사들과 협업을 많이 했다. 나중에 리베라시옹도 합류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여러 언론사들이 솔루션 저널리즘 섹션이나 부서를 만들고 독립된 잡지를 출간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하지만 대부분 오래 가지 못했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렉스프레스(L’Express)는 사회적 기업이나 지역 기반의 혁신 모델을 다루는 여러 매체를 스핀 오프했는데 모두 실패했다. 지난 18년을 돌아보면 꾸준히 변화를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뭔가를 바꿨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적어도 기자들 사이에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저항은 많이 사라졌다. 이런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본다.”

– ‘희망의 기자들’이라는 이름도 궁금하다. 사실 기반의 저널리즘과 희망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왜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기자들인지도.
“현장성을 강조하다보니 기자라고 했다. 희망이라는 건 낙관이나 대안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보다 정확한 의미는 믿음이다. 언론이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라고 보면 된다.”

– 조직 구성은 어떤가.
“상근 직원은 5명이고 자문 위원이 10명 있다. 150여 명 정도 참가자와 기여자(재정 지원 및 프로젝트별 참여 자원봉사자 및 연구자 등)가 활동하고 있고 2만여 명의 뉴스레터 구독자들이 있다. 구독자의 대부분은 기자들과 언론사 경영진이다.”

– 기자 교육이 핵심 업무라고 보면 되나.
“앞으로 기자 교육이 핵심 업무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사례를 조사하고 가능성을 모색하는 리서치 중심 활동이 많았다. 기자 교육은 1년에 500명 수준이고 교육 기간도 반나절로 매우 짧았다. 하지만 앞으로 더 늘릴 계획이다. 원격 강의(MOOC)를 통한 온라인 교육도 진행할 계획이다. 프랑스의 주요 대학의 저널리즘 관련 학과와 제휴를 추진하고 있다. 2023년 1월부터 시작할 텐데 연간 교육생이 현재 500명 수준에서 4000명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프랑스에는 기자가 3만5000명 정도 된다. 지역 언론사들을 위해 전국 순회 교육을 하는데 주요 거점 대학에서 진행된다. 도시 마다 이틀 정도 머물면서 최대한 많은 지역 언론인과 언론 관련 단체들과 만나려고 하고 있다 학생 뿐만 아니라 직업 기자들까지 15~40명 정도의 현직 기자들이 참여한다.

– 기자들에게 상도 준다. 어떻게 운영하나.
“직업 기자들에게 주는 상은 후보자가 200여명, 청년 기자들은 후보가 140명 정도 된다. 지원자를 받기도 하지만, 협회에서 1년 내내 지속적으로 찾고 있다. ‘르플러스(Le Plus)’라는 플랫폼을 운하고 있는데, 2000여 건의 탐사보도 기사들이 있다.”

– 직접 만드는 콘텐츠는 얼마나 되나. ‘La France des solutions(솔루션 프랑스)’라는 행사도 운영하고 있던데.
“‘라디오 프랑스(Radio France)’와 협의를 통해 1년에 한 번, 연말에 솔루션 저널리즘과 관련된 기자를 포함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사들을 초청해 공연과 토크쇼 등의 행사를 진행하고 이를 라디오로 내보낸다. 초청된 기자들이 청중 및 청취자들과 그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설득하는 자리이다. 초청되는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은 고려하지 않으며, 매우 다양한 성향의 기자와 전문가들이 만난다. 현장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성과를 만들었는지 이야기하면서 기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

– 재정 구조는 어떤가. 개인이나 기업 후원, 정부 지원 등의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해마다 다르지만 대략 30만~45만 유로 정도 든다. 개인 후원으로 충당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언론사 경영진이고 우리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솔루션 프랑스’ 같은 행사를 통해 기업의 재정 후원을 받기도 한다. 직접 뉴스에이전시를 만들기도 했지만 잘 안 됐다. 지금은 수요에 기반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이를 테면 언론사들의 협업을 통해 솔루션 저널리즘 관련된 섹션이나 특별판, 정기간행물 등의 제작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 그나마 최근에는 주요 언론사의 재정 상황이 악화되면서 협업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지금은 협회로서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 한국의 기자들은 솔루션 저널리즘의 가이드라인이 너무 엄격하다고 불만을 이야기한다. ‘희망의 기자들’에서 기자들을 교육할 때는 어떤가.
“기자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저항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영진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이다. 관심을 끌만한 이슈는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거나, 논쟁적이거나, 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하는 것들이다. 또는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야 하는 의혹과 폭로 같은 것들이다. 특히 프랑스 사람들은 저널리즘이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면 그것으로 생명이 끝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감시와 비판이 언론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어의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방식을 설명하고, 기존의 보도 방식을 한계를 보여주고, 그것을 보완하는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기자들 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의심하게 된다. 우리의 자체 연구에 따르면, 솔루션 저널리즘의 확산을 통해 사업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현실에서 이 운동은 수많은 독자들을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구독자들을 신뢰를 두텁게 하는 일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보면 이러한 전략은 사업으로도 가능하다. 전통적인 저널리즘 교육 기관에서도 솔루션 저널리즘을 다루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아직은 일반적이라기 보다는 선택 가능한 하나의 구성 요소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학교도 있지만 적어도 거부감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 한 나라 또는 한 지역의 사례가 다른 나라와 다른 지역의 해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가장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기사를 이야기해 달라.
“영향력이 컸지만 사실 단순했던 기사가 있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시골 지역은 공연이나 영화 등 문화 콘텐츠에 대한 접근이 매우 어렵다. 그런데 한 여성이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호기심 버스를 만들었다. 이 버스로 한번에 5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을 태우고 연극이나 영화, 오페라 등을 관람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여러 언론에서 다루기 시작했고, 언론의 모방 속성 때문에 더 많은 언론에 노출됐다. 결국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서비스가 생겨났다. 흥미로운 시도였지만 이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는 복사하기 붙여넣기 수준이었다. 하지만 해결 지향의 보도가 어떻게 변화를 만들고 퍼뜨리는지 실감할 수 있는 사례였다.”

– 구글 어시스턴트와 협업도 하더라.
“맞다. 구글 홈에 ‘OK, Google, donne-moi une bonne nouvelle(OK, 구글, 좋은 소식 들려줘)’라고 말하면 우리가 선정한 기사 요약을 들려준다. 미국에서 영어 서비스를 먼저 시작했는데 우리가 처음 프랑스 법인에 연락했을 때는 거절 당했다. 그런데 얼마 뒤에 다시 연락이 와서 진행하게 됐다. 1년 동안 기사 선정과 녹음 작업을 해서 업로드했다. 한 편에 30초 분량이고 이용자가 월 6만 명 수준이다. 구글의 목표는 1만 명이었는데 6배나 됐다. 미국 보다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 경제, 고용, 환경 문제에 대한 입장은 언론사마다 다르다. 르피가로(Le Figaro)나 레제코(Les Echos) 같은 보수적인 대형 언론사들도 있다. 이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피가로나 레제코 같은 보수 성향 신문사들도 솔루션 저널리즘을 실험하고 있는데 사업적인 측면이 강한 것 같다. 스타트업이나 혁신 기술 등에 대한 소개가 많다. 우리는 왼쪽에 있는 위마니떼나 리베라시옹, 중도 성향의 르몽드, 중도 우파 성향의 리푸앙(Le Point), 그리고 좀 더 오른쪽에 있는 피가로 등 성향과 관계 없이 여러 언론사와 협업을 한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이념의 문제는 아니지만 난민 문제 같은 정치적 이슈의 경우는 입장 차이가 커서 함께 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 단순히 좋은 이야기와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 내는 기사는 다른 것 같다. 그리고 사실 매우 어렵다. 기자들은 익숙한 관행에 의존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현장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세상이 얼마나 비참하고 끔찍한지에 대해 보도하다 보면 여기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솔루션 저널리즘 역시 비판적인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다. 다만 어떤 문제에 개입할 때 그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서 해결을 위해 시도되는 다양한 실험과 도전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물론 이 역시 한계가 있고, 어려움이 있다. 어쩌면 그 자체가 저널리즘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치지 말기를 바란다.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언론사 내부의 지지자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들이 구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으며, 그것이 결국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언론사 경영진에게 설득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물고기가 아니라 그물을”, 작은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꾼다.

체코의 트랜지션온라인(Transitons Online, 이하 트랜지션)은 체코와 튀르키예, 슬로바키아, 헝가리,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지역의 솔루션 저널리즘 허브 사이트라고 할 수 있다. 트랜지션의 기사를 살펴보면 어느 나라나 비슷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고 다른 나라의 시행착오가 또 다른 나라에 새로운 대안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다. 트랜지션은 동유럽의 언론사들에게 솔루션 저널리즘 교육과 컨설팅을 제공하면서 여러 나라의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를 번역해서 소개하고 있다. 트랜지션이 공유한 몇 가지 솔루션 기사를 살펴보면서 해법에 접근하는 과정을 복기해 보기로 한다.

소액 금융과 오이 농사로 가난 탈출.

첫 번째 기사는 소액 금융과 오이 농사로 가난을 벗어난 헝가리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아틀라조(Atlatszo)의 기사다.

‘탈출(Way Out)’ 프로그램은 인도의 그라민 은행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저소득 계층 여성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로 2009년 출범했다.

헝가리의 파비안하자(Fabianhaza) 지역은 헝가리에서도 가장 소득이 낮은 지역 가운데 하나다. 아직도 동네 우물에서 식수를 길어 마시는 지역도 있다. ‘탈출’ 프로그램에 참여한 두 아이의 엄마 티미(Timi)는 2020년 봄부터 뒤뜰에서 오이 농사를 시작했다. 장비와 모종 구입 등의 초기 비용이 필요했지만 최대 15만 포린트(52만 원)까지 2년 만기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오이는 5월에서 9월까지 재배하는데 이 기간 동안 생계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오이 농사는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고 실패 위험이 낮고 판매도 꾸준한 작물이다. ‘탈출’ 프로그램은 참여 농가에서 생산된 오이를 한꺼번에 매입해서 가공 공장으로 보내고 농가에 1주일에 한 번 급여를 지급한다. 오이 가격이 폭락할 때도 미리 약속한 금액에 매입하기 때문에 농가는 안정된 수입을 얻을 수 있다. 한 시즌이면 50만 포린트(172만 원)의 매출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탈출’ 프로그램에서 생산한 오이는 2020년 기준으로 316톤, 순이익은 5100만 포린트(1억7493만 원)에 이른다. 참가자는 63명이었다.

‘탈출’ 프로그램의 모토는 “물고기가 아니라 그물을 주세요”다. 프로그램에서는 오이 재배 뿐만 아니라 오이 판매와 회계 기초 등 기업가 교육을 병행한다. 오이 농사로 사업에 뛰어든 여성들이 자영업에 진출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탈출’ 프로그램은 2009년 150만 유로의 유럽 연합 보조금으로 출범해 개인 기부금과 35만 유로의 헝가리 정부 예산의 도움을 받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독립된 기금으로 운영된다. 2012년까지는 설립 자금의 15%가 대출로 나가고 나머지는 시스템 구축과 임금, 세금 등으로 나갔다. 초기 대출의 상환 비율도 55% 밖에 안 됐다. 그만큼 대출 부실이 컸고 재정 건전성도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몇 차례 시행 착오를 거치면서 묘목과 비료 등의 원재료를 직접 구매하거나 인수하고 대출 기준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등 시스템을 강화했다. 그 과정에서 극도로 빈곤한 사람들에게는 이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당장 대출이 필요하지만 오이 농사에 의지가 없는 사람들을 걸러내는 것도 중요한 변수였다.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게 아니라 자립을 지원하는 것이다. 멘토들이 입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정신적 피해를 돌보는 것도 지속 가능한 시스템의 전제 조건이다. 초기에 합류한 멘토 37명 가운데 남아있는 사람은 4명 뿐이다.

이 프로그램의 문제는 농가를 돕는 것과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병행하는 모델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이 농사의 마진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운영 비용을 회수할 정도로 규모의 경제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탈출’ 프로그램은 몇 차례 시행 착오를 거쳐 금융 사업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으로 전환했다. 애초에 오이 농사가 한 철 농사라 이것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탈출’ 프로그램의 모델이었던 그라민 은행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그래도 공공에서 주도하는 일자리 프로그램보다 투자 대비 효과가 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헝가리 정부가 지원하는 공공 일자리는 월 소득이 5만4000포린트, 연간 65만 포린트 정도인데 ‘탈출’ 프로그램에 참여한 농부들은 한 시즌에 50만 포린트를 벌 수 있다. 월 소득으로 치면 대략 두 배 수준이다. 이 프로그램이 자리 잡으려면 오이를 재배하지 않는 기간에 수입을 담보할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헝가리 북동부에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헝가리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유럽 연합 지원이 2022년에 끝나면 연간 1000만 포린트(3440만 원)의 추가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생산자 직거래로 ‘윈윈’하는 해법, 가능할까.

두 번째 기사는 튀르키예의 주문형 채소(Grown-to-Order Veggies) 스타트업 파모바일(Farmobile)을 소개한 기사다. 파모바일은 도시 주민들에게 인근 시골의 농지를 분양해서 채소를 재배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배송해 주는 서비스다. 여름에는 토마토와 고추, 오이, 겨울에는 무와 시금치가 인기가 좋고, 양배추나 브로콜리, 가지, 옥수수, 당근 등도 선택할 수 있다. 언뜻 주말 농장과 비슷하지만 돈을 받고 농사를 대신 지어주고 배송까지 해준다는 게 차이다.

파모바일의 창업자는 은퇴한 농업 엔지니어 파티 굴렉(Fatih Gulec)이다. 굴렉은 농업이 지속가능하려면 가격 결정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농가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직거래 서비스를 만들었다.

튀르키예는 1980년대까지 정부에서 농업을 관리해 왔다. 민영화 이후에는 해외 자본이 들어오면서 농업의 붕괴가 시작됐고 정부가 보조금을 쏟아 부었지만 영세 농가의 몰락을 막기에는 부족했다. 종자와 비료 등 수입 의존도가 높았는데 가뜩이나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비용이 급증했다. 2002년 기준으로 농부가 250만 명이었는데 2020년에는 180만 명 미만으로 줄어들 정도로 농업의 붕괴가 심각했다. 농지는 같은 기간 동안 18% 이상 줄었다.

무엇보다도 여러 단계 중간 도매상을 거치면서 소비자 가격은 뛰는데 생산자들의 수익이 줄어든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레몬의 경우 산지에서는 1kg에 1리라(76원)에 팔리는데 도매 시장에서는 4리라(305원), 동네 슈퍼에서는 7리라(534원)에 팔렸다. 파모바일은 중간 거래상을 건너 뛰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모델이었다.

물론 출발은 순탄하지 않았다. 2018년에는 구독 회원이 4명 밖에 안 됐다. 2020년에는 회원이 35명, 경작 농지도 200평방미터로 늘었고 2021년에는 1500평방미터로 늘었다. 구독 연장 비율은 60%에 이른다.

파모바일의 구독 옵션은 세 가지다. 2000리라(15만2000원)의 에코(Eco) 패키지는 12평방미터에 농지에 세 가지 상품을 구독할 수 있다. 입문(Beginner) 패키지는 3000리라를 내고 25평방미터에 5가지 상품, 프리미엄 패키지는 3500리라를 내고 25평방미터에 7가지 상품을 구독할 수 있다. 트랜지션이 지적한 것처럼 전체 노동 인구의 40%가 월 290달러의 최저 임금을 받는 나라에서 상당한 부담이 되는 금액이 아닐 수 없다.

파모바일은 아직 손익분기점에 이르지 못한 모델이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회원이 늘어날수록 배송과 마케팅 등 고정 비용이 줄어들고 생산 단가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비자가 전체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농업은 경쟁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농업은 언제나위험했습니다. 날씨에 따라 다르고 해충도 주의해야 합니다. 항상 긴장이 있지만 식탁에 놓인 채소를 보면 기쁘죠. 저는 이 두 가지를 고객들과 공유하고 싶고, 많은 고객들과 함께 그 지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굴렉의 이야기다.

일자리를 만드는 ‘애국’ 토마토.

세 번째 소개할 기사는 슬로바키아 토마토 농장의 도전을 다룬 기사다.

슬로바키아도 공산주의 몰락 이후 시장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산업이 급격히 붕괴했다. 슈퍼마켓 체인이 들어오면서 수입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슬로바키아의 가장 큰 토마토 농장인 그린쿠프(GreenCoop)의 최고 경영자 졸트 빈딕(Zsolt Bindics)은 15년 전 다뉴브강의 온화한 기후가 토마토 농사에 최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유럽 연합의 기금을 받아 1.5헥타르의 토마토 농장을 만들었다.

토마토 농장은 고용 창출 효과도 매우 높다. 다른 농산물은 100헥타르에 2.5명을 고용하지만 밀집도가 높은 수경 재배 방식의 토마토 농장은 1500명을 고용할 수 있다. 오레무스(Oremus) 농장의 경우 1헥타르에 18명이 근무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입 방울 토마토는 너무 비싸서 엄두를 낼 수 없었죠. 요즘은 국산 토마토가 5~10% 더 비싸지만 기꺼이 국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슬로바키아에서 국산 토마토의 시장 점유율은 50%를 넘어섰다. 그린쿠프의 매출은 2012년 210만 유로에서 2020년 3070만 유로로 급격히 늘어났다.

다음은 트랜지션이 정리한 슬로바키아 토마토 산업의 체크리스트다.
첫째, 꾸준한 수요가 있는 제품을 찾았다. 토마토는 1년 내내 먹을 수 있고 누구나 좋아한다.
둘째, 가장 맛있을 때 수확해서 바로 먹을 수 있게 했다. 녹색 토마토를 따서 익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셋째, 품질로 승부했다. 수입산 보다 국산이 맛있다는 믿음을 심어줬다. 농약 사용량을 줄여 신뢰를 확보했다.
넷째, 국산 생산 농가들끼리 힘을 합쳐 브랜드를 키웠다. 슈퍼마켓에서 누구나 쉽게 국산을 구분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당연히 가격 협상력도 높아졌다.
다섯째, 현지에서 고용을 창출했다. 자전거로 출퇴근할 수 있는 지역 주민들을 채용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

물론 한계도 있다. 여전히 수입 제품이 국산보다 저렴하다. 네덜란드의 토마토 농가들은 미리 합의된 가격으로 사전 판매하고 남은 농산물을 동유럽에 싸게 팔면서 국산 농가들을 위협해 왔다. 국산 농가들은 이제 막 시설 투자와 대출금을 갚느라 허덕이는 반면 네덜란드는 시장을 확장하면서 후발 주자를 도태시켜야 하는 입장이다.

꿀벌의 떼죽음, 튀르키예가 찾은 해법은.

꿀벌 농가를 살리기 위한 튀르키예의 실험도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튀르키예도 꿀벌의 집단 폐사와 함께 벌꿀 수확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심각한 이슈가 됐다. 당장 식물의 번식과 생태계 균형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튀르키예는 2006년 대형 산불이 발생한 뒤 산림 보호를 위해 양봉 산업을 엄격하게 규제했다. 그러나 2007년 이스마일 벨렌(Ismail Belen)이라는 산림총국 부국장이 산림 양봉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진상 조사를 위한 정부 차원의 위원회가 출범했다. 산림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양봉 수확을 늘리는 해법을 찾기 위한 조사였다. 튀르키예의 양봉 산업은 양봉 농가만 15만 가구, 연간 4억5000만 달러 규모에 이른다.

조사위원회는 꿀벌의 떼죽음이 살충제 때문이라는 진단과 함께 기후변화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3년 동안의 실험을 거쳐 꿀숲(honey forests)을 육성하는 법이 통과됐다. 꿀숲으로 지정되면 꿀벌이 좋아하는 나무를 심고 연못을 파고 양봉 농가를 위한 급수 시설 등이 지원된다. 2020년까지 튀르키예 전역에 596개의 꿀숲이 지정됐고 이를 2023년까지 720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산림 보호도 중요하지만 꿀벌을 살리기 위해서는 양봉 농가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데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이다. 과수원에서는 살충제를 쓰지 않을 수 없고 결국 최대한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숲속에서 꿀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최선이라는 이야기다.

튀르키예 최대의 벌꿀 산지인 브르샤(Bursa) 산림청은 쿠르순루(Kursunlu) 숲을 꿀숲으로 지정하기 위해 라벤더와 헤더 등 꿀벌을 유인하는 데 효과적인 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었다. 규모를 키우기 위해 벌통 60개 미만을 관리하는 영세 농가들에 벌통을 지원하기도 했다.

꿀숲 법이 통과된 2010년부터 10년 동안 튀르키예의 꿀 생산량은 8만1000톤에서 11만톤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동안 벌꿀 통은 560만 개에서 800만개로 늘어났다. 양봉 농가도 2010년 이후 두 배인 8만 명까지 늘어났다. 튀르키예의 양봉 산업은 세계 3위에서 2위로 뛰어올랐다.

부르샤 양봉협회 회장인 우무트 브그라 카바스(Umut Bugra Kavas)는 “꿀숲이 생기기 전에는 연간 500kg의 로열젤리를 생산했는데 지금은 1.5~2톤까지 늘어났다”면서 “그 절반 정도가 브루샤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말했다.

테디 베어가 재범율을 낮춘다?

다섯 번째는 루마니아 몰도바 교도소의 실험을 다룬 기사다.

이 교도소는 미국에서의 경험을 벤치마킹해 수감자들 가운데 신청을 받아 부모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 교도소는 출소한 전과자들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돌아오는 비율이 50%가 넘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전과자들이 사회 복귀가 쉽지 않아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감자 가운데 아이가 있는 비율이 3분의 2 수준이다.

‘양육 인사이드아웃(inside out)’ 프로그램은 미국 오리곤주에서 시작돼 지금은 17개 주의 교도소에서 실행되고 있다.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로도 확산됐다. 워싱턴주 교정 전문가 브루스 우드(Bruce Wood)는 교육을 이런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는 여러분을 위해 여기 온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아이들을 위해 왔고 저의 목표는 여러분의 아이들이 이곳에 오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육은 1주일에 세 번씩 2시간30분 동안 3개월에 걸쳐 진행된다. 주제는 “더 나은 부모가 되는 방법.”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재소자들은 알 모양의 인형을 받아 1주일 동안 돌보게 된다. 1주일이 지나면 다른 재소자들에게 알을 넘기고 테디 베어 인형을 받게 된다. 갓난 아이를 남겨 두고 이곳에 왔다는 한 재소자는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교육에서는 감정 조절과 격려,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방법 등을 배우게 된다.

일부 재소자들은 인형 놀이에 극도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우드는 이렇게 말한다. “이 프로그램은 부모로서의 경험을 재연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죄수가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까.”

재소자들을 부모로 인식하면서 간수와 재소자들의 관계도 달라졌다. 아이를 주제로 하는 대화가 늘어났고 교도소 내부의 폭력도 줄어들었다.

다음은 한 재소자의 말이다.

“이 프로그램은 아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그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건네야 한다는 걸 알게 됐죠. 언젠가부터 아버지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실제로 양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재소자들은 석방 이후 1년 이내에 다시 수감될 확률이 31~41% 정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모든 프로그램이 순탄하게 돌아갔던 건 아니다. 테디 베어 인형이 마약이나 금지된 물건을 운반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었고 그래서 종이 인형으로 대신하는 곳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교도소 행정 당국을 설득하는 게 가장 큰 일이었다. 재범 비율을 줄인다는 통계가 명확했지만 상당수 교도소에서는 재소자들을 관리 대상으로만 봤지 이들이 바뀔 거라는 기대가 아예 없었다.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실제로 이런 질문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가족과 화상 통화를 하는데 아이가 수줍어하고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미국과 몰도바는 상황이 다릅니다. 테디 베어를 메고 다니는 위험을 감수할 재소자는 거의 없을 겁니다. 엄청난 트라우마가 될 것이고 동료들에게 굴욕을 당하거나 구타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치료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100%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에서 작동합니다. 아무도 그들을 비웃지 않아야 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곳에서 작동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 두 명의 모더레이터와 장난감 몇 개면 충분하다. 재소자 가운데서도 모더레이터를 찾을 수도 있다. 한계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고 있는 실험과 도전의 과정이다.

“재소자들이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있게 만드는 최선이 아닙니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보고 바꿀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감옥에서 나왔다가 반년 안에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죠.”

테러리스트들을 감옥에 가두는 방법.

2020년 튀르키예가 알카에다 테러 조직의 구성원으로 의심되는 청년들을 체포했을 때 이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된 적 있었다.

2014년 벨기에 브뤼셀의 유대인 박물관을 공격해 4명을 사망하게 한 메디 네무슈(Mehdi Nemmouche)는 석방된 지 3주 만에 시리아로 떠나 다음 테러를 준비했다. 2015년 파리의 코셔 상점에서 인질로 4명을 살해한 아메디 쿨리발리(Amedy Coulibaly)도 교도소에서 더욱 과격한 테러리스트로 거듭났다.

감옥이 테러리스트들을 교화하는데 실패하고 있지만 아무리 잔혹한 테러리스트라고 해도 하루 한 번 이상 산책을 허락해야 한다. 다른 수감자들과 접촉을 금지해야 하고 이들을 평생 감옥에 가둬둘 게 아니라면 장기적으로 사회 복귀를 지원해야 하는 과제도 남는다. 트랜지션이 번역해 소개한 폴란드의 일간 신문 가제타비보르차(Gazeta Wyborcza)의 기사에 따르면 이 분야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나라가 체코였고 다른 나라들의 벤치마크 모델이 됐다.

체코는 체코프라하공과대학(CVUT)에서 만든 온라인 교육 플랫폼 에르메스(HERMES)를 급진화에 맞서는 도구로 활용했다. 에르메스는 잠재적으로 위험한 개인을 다시 통합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대화형 학습과 케이스 스터디 등의 교육 자료가 포함돼 있다. 판사와 변호사, 보호 관찰 직원, 사회 복지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가제타비보르차에 따르면 체코에서도 처음에는 회의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었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확신이 생겨났다.

이탈리아 파도바 교도소에서 진행한 교화 실험의 결과도 흥미롭다. 핵심은 수감자들을 급진적인 지도자들과 분리하는 것이다. 교도소 내부에 콜센터와 제과점, 자전거 가게 등의 기업을 유치하고 외부 세계와 동일한 급여와 노동 조건을 지급하고 경력 증명서도 받을 수 있다. 입소 기업들은 세금 혜택을 받게 된다. 상대적으로 덜 급진적인 수감자들은 일반 재소자들과 비슷한 조건의 노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수감자들의 복귀율은 10% 수준으로 다른 이탈리아 교도소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나폴리에서는 이 비율이 최대 90%에 육박한다.

로마의 한 모스크의 이맘인 사미 살렘(Sami Salem)에 따르면 수감자들이 의지하는 온건한 이맘들과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진정한 이슬람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급진적 견해에서 벗어났던 수감자들의 참여도 성공적이었다.

문제 해결에 이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이밖에도 흥미로운 사례가 많다.

체코의 한 학교는 4년 차이가 나는 학생들을 멘토와 멘티로 짝 지워주는 P2P 교육을 도입했다. 5학년 학생은 1학년 학생과, 7학년 학생은 3학년 학생과 각각 한 팀이 되는 방식이다. 입학하면 4년 동안 멘토와 함께 지내다가 5학년이 되면 멘토가 돼서 1학년 학생을 배정받게 되는 시스템이다. 장점은 멘토 학생들이 멘티 학생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한계는 여전히 잘 맞지 않는 관계가 있고 또 다른 문제를 만든 경우도 물론 있다.

폴란드에는 커밍아웃을 선언한 LGBTQ 청소년들을 위한 임시 보호소가 있다. 폴란드는 성소수자 인권을 평가하는 무지개 지수에서 유럽 최하위로 평가 받은 바 있다. 유럽의 LGBTQ 인구 가운데 5분의 1이 노숙을 경험한다는 통계도 있었다. 부모가 아이의 성적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감금하거나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금지하는 등의 학대를 당하기도 한다. 이 보호소는 심리적 지원이나 상담이 필요한 청소년들을 최장 3개월까지 보호하고 사회 복귀를 돕는다.

결핵 치료에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몰도바의 사례도 흥미롭다. 몰도바는 결핵 발병률이 유럽에서 제일 높은 나라다. 문제는 최대 2년까지 항생제를 투여해야 하는데 환자들이 치료를 중단하면서 내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몰도바의 한 비영리 기구가 환자들이 약을 복용하는 방면을 비디오로 찍어 의사에게 보낼 수 있는 앱을 개발했는데 이 앱을 쓴 환자들은 상대적으로 치료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비율이 10%포인트 정도 높았다. 약을 제때 복용한다는 믿음이 있으면 의사들이 한꺼번에 많은 약을 처방할 수 있고 병원에 오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의 성적 고민을 해결해 주는 비영리 단체 ‘위험 없는 축복(Rozkos bez rizika)’을 다룬 파인맥(Finmag)의 기사는 2019년 솔루션 저널리즘 어워드를 받았다. 성적 만족과 자기 표현을 배우도록 돕는 서비스다. 논란이 많은 서비스였지만 합법적인 테두리에서 진행되고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지 말라는 내부 윤리 강령도 철저하게 지킨다고 한다.

유럽 최악의 교통 사고 사망률을 기록했던 슬로바키아가 한 달 월급 수준에 이르는 교통 범칙금을 부과하면서 사망률을 급격하게 떨어뜨린 사례도 흥미롭다. 사망자 수는 2012년 302명에서 2014년 267명, 2016년 192명으로 줄었고 2019년에는 66명까지 줄었다. 이웃나라인 폴란드의 과속 위반 벌금이 1997년에는 최저 임금의 127%였는데 2019년 기준으로 17% 수준까지 떨어진 것과도 비교된다.

우크라이나의 빈곤 농가를 돕기 위해 20마리의 암소를 기부하는 대신 새끼를 낳으면 이웃에 기부하도록 하는 조건을 내건 실험도 흥미롭다. 몇 년 뒤 이 마을은 젖소가 400마리로 늘어났다.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공용으로 쓰는 우유 비축 탱크를 늘려 단가를 높였더니 떠났던 청년들이 돌아왔다.

조지아에서는 그루지아족과 아제르족과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아제르어와 아제르 역사를 가르치는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원룸 학교로 시작했지만 제대로 된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자원봉사자들에게 약간의 급여를 지급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트랜지션이 소개한 해법은 모두 가능성 뿐만 아니라 한계를 정확하게 정리하고 있다. 제레미 드러커 트랜지션 대표는 “철저하게 문제 해결의 과정에 집중한다”면서 “카피 앤 페이스트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실패의 경험에서 문제 해결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해결 지향의 보도, 더욱 강력한 저널리즘이 필요하다.”

[인터뷰] 제레미 드러커 트랜지션온라인 대표, “관점의 전환, 솔루션 렌즈로 들여다 보자.”

제레미 드러커(Jeremy Drucker)는 미국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국제 문제를 전공했다. 뉴욕대학교 교수를 지내다가 체코 출신의 지금의 아내와 결혼해서 프라하로 건너왔다. 2017년 봄 우연히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 데이빗 본스타인의 강연을 듣고 솔루션 저널리즘에 뛰어들게 됐다. 그때만 해도 데이빗의 강의를 들은 체코의 언론인들이 대부분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체코도 한국처럼 언론에 대한 불신이 매우 높은 나라다. 언론인들의 좌절과 무기력도 그만큼 컸다.

제레미는 2018년부터 언론인들에게 솔루션 저널리즘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4년 동안 폴란드와 헝가리, 슬로바키아, 터키 등 650여 명의 동유럽 지역 언론인들이 참석했다. 제레미가 설립한 트랜지션온라인(TOL, 이하 트랜지션)은 동유럽의 솔루션 저널리즘 허브 사이트로 자리 잡았다.

트랜지션은 솔루션 저널리즘을 소개하고 교육하는 것 뿐만 아니라 직접 솔루션 저널리즘 취재를 하고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기도 한다. 여러 언론사들에 교육과 멘토링, 컨설팅, 공동 취재 등을 지원하면서 솔루션 저널리즘의 네트워크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트랜지션은 프레스스타트(Press Start)라는 이름으로 동유럽의 언론인들을 지원하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도 운영하고 있다. 미국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솔루션 트래커에 공개된 솔루션 저널리즘 사례를 번역해 체코어와 헝가리어, 루마니아어, 알바니아어 등으로 번역해서 소개하기도 한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6월24일 프라하에 위치한 트랜지션 사무실 인근 카페에서 제레미 드러커를 만났다. 제레미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체코도 뉴스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너무 심했다”면서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변화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제레미와의 일문일답.

– 해마다 솔루션 저널리즘 어워드를 시상하고 있다고 들었다. 체코 언론인들의 반응은 어땠나.

“사실 처음 몇 년은 후보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솔루션 저널리즘의 기준에 맞는 기사가 거의 없었다. 기자들이 냉소적이었고 언론이 왜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들었다. 내가 조언하고 싶은 건 정말 바뀔 것 같지 않지만 계속해서 강조해야 한다는 거다. 이런 이벤트를 계속하면서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다고 생각한다. 상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기자들이 늘어났고 이 상의 취지가 알려지게 됐다. 상금이 크지는 않다. 사실 상금이 중요한 건 아니다. 인식을 바꾸려면 끈질기게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

트랜지션의 공동 설립자 가운데 한 명인 루시 체르나(Lucie Černá)는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와 인터뷰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하는 이 이상한 개념이 유행어처럼 확산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한 번쯤 들어보기는 했다고 말할 정도가 됐다”는 설명이다.

제레미는 “우리의 목표의 3분의 1 지점까지 왔다고 생각한다”면서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이해가 늘었지만 여전히 솔루션 저널리즘이 프로세스로 자리 잡은 단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저널리스트들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더란 대목이 특히 관심을 끌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널리스트가 이런 것까지 해야 돼? 언론의 사명은 진실을 보도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저널리스트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해결했나.

“쉽지 않았다. 우리도 오랫 동안 고민해 왔던 문제다. 하지만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현장의 기자들도 문제를 알고 있고 다른 대안을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토론을 했다. 몇몇 기자들이 관심을 보였고 설득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1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수 있다. 끈질기게 계속 제기해야 한다. 우리가 어워드를 진행하면서 얻은 교훈은 기자들도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거다. 많은 기자들이 기사의 영향력을 고민한다. 독자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게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안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체코 국민의 34%만 뉴스를 신뢰한다고 답변했다. 핀란드(69%)와 덴마크(58%) 등 북유럽 국가들은 평균 보다 높지만 동유럽의 헝가리와 슬로바이카 등은 27%와 26% 수준이다. 참고로 한국은 30%다.

– 한국에서는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이 어색하다. 사례도 많지 않다. 기자들은 여전히 어려워한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문제 중심의 취재와 보도에 익숙한 기자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경력이 많은 기자들일수록 저항이 컸다. 우리가 기사에 대한 의견을 말하면 언짢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이 뉴스룸에서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바뀌지 않으면 뉴스룸의 문화를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 멘토링이나 컨설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파트너십 정도로 시작하는 게 서로 부담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계속해서 방향을 제안하고 설득하는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지역 이슈에서 출발하는 게 좋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사례를 이야기해 봐야 그런가 보다 하기 쉽다. 우리의 이야기로 시작해야 한다.”

– 한국의 언론인들은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까다롭다고 생각한다. 이런 건 솔루션 저널리즘이 아니고 이런 건 이런 문제가 있고 등등의 기준을 불편하게 여기는 경우도 많다. 그동안 하던 대로 문제를 잘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문제 해결에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하는 기자들도 있다.

“어려운 문제다. 우리가 쓰는 기사도 이런 가이드라인을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건 아니다. 우리도 처음에는 문제 해결의 과정에 집중하고 한계와 전망을 반영하고 등등 가이드라인을 고민했지만 현실적으로 모두 만족하는 기사를 쓰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이해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럴수록 기본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칫 해법을 고민한다는 접근을 적당히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포장하다 보면 방향이 모호해진다. 철저하게 문제 해결의 과정을 드러내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 그래서 당신들은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가 제안하는 가이드라인을 엄격하게 지키나. 아니면 좀 느슨하게 가져가나?

“가이드라인은 큰 방향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당신들이 결정하면 된다. 가이드라인을 따를 수도 있고 좀 더 유연한 원칙을 만들 수도 있다. 쉽지 않다는 걸 전제하고 시작하면 설득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기자들은 이게 맞는 방향이라는 걸 알 거다. 기사 형식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깊이 있는 기사는 분량도 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해법을 충분히 설명하면서도 짧고 강력한 기사도 얼마든지 있다.”

– 기자들이 생각이 바뀌게 되는 계기가 있었나.

“기자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반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두가 해결 지향의 보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다. 결국 우선 순위의 문제고 조직 문화의 문제다. 데이빗 본스타인이 강조한 ‘솔루션 렌즈’라는 걸 생각해 보자. 기사를 작성하기 전에 한 번 더 질문을 던지고 해법이 무엇인가 좀 더 들어가 보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행운이 따랐던 것 같다. 동료 기자들이 이해가 빨랐고 열정이 넘쳤다.”

– 언론사들과 협업은 잘 진행됐나.

“언론사들에 취재 비용을 지원할 때도 있지만 경험이 많은 저널리스트들과 함께 일할 때는 멘토링보다는 파트너십으로 접근했다. 여전히 많은 언론인들이 문제 중심의 보도에 익숙하기 때문에 논조나 방향에 대한 코멘트를 거부하거나 불편해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본다.”

– 당신 이야기를 해 달라. 당신은 액티비스트인가 저널리스트인가. 솔루션 저널리즘 기반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물론 나는 액티비스트가 아니라 저널리스트다. 이걸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우리가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는 건 아니다. 문제에 개입하는 것도 거리를 둬야 한다. 나는 액티비스트는 아니지만 좋은 저널리즘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나는 지역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변화가 작동하는 방식을 기록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을 설득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기사가 쌓이면 쌓일수록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해외 사례를 찾는 건 매우 중요하지만 단순히 사례를 가져와서 소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 솔루션 저널리즘 기사가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체코에서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유료 구독이나 후원이 늘어나고 있나.

“뉴스에 돈을 내는 사람은 매우 적고 체코 역시 마찬가지다. 후원이나 기부로 시작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선의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도 있다. 우리는 철저하게 콘텐츠에 집중하기로 했다. 비용을 줄이면서 임팩트를 극대화하고 유료 구독자를 꾸준히 늘려가는 게 최선의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충성 독자를 확보해야 한다. 지금은 교육도 하고 직접 뉴스도 만들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뉴스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게 우리가 가장 잘 하는 일이고 잘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액 기부자가 있으면 훨씬 쉬웠겠지만 특정 개인의 영향력에 휘둘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우리 기사를 지지하는 독자들이 늘고 있다.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후원자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제휴 제안도 많다.”

–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빌 게이츠나 록펠러 재단 같은 큰 손의 지원이 있었다. 당신들은 어땠나.

“우리는 처음부터 구독과 후원 모델로 시작했다. 초기 운영 자금이 충분하지 않다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우리는 정규직과 파트타임, 그리고 프리랜서, 인턴 등이 함께 일하고 있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솔루션 저널리즘도 결국 비즈니스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고 콘텐츠의 경쟁력을 계속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정적 어려움에 빠지게 될 거다. 기사 수는 많지 않아도 된다. 다만 확실하게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 프레스스타트는 트랜지션과 다른 프로젝트인가.

“프레스스타트는 헝가리와 루마니아, 불가리아, 슬로베니아 등의 언론인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와 구글뉴스이니셔티브(Google News Initiative)의 지원도 받고 있다. 국제 마약 네트워크에 대한 탐사 보도와 폴란드의 가정 폭력 등의 이슈를 다뤘다. 우크라이나 언론인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캠페인은 4만7000달러를 모금했다. 지금은 탐사 보도 프로젝트가 많지만 장기적으로 탐사 보도와 솔루션 저널리즘이 만나는 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국경을 넘는 협업 보도가 가능한 건 우리가 모두 같은 문제를 겪고 있고 우리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느린 저널리즘, 지역에 뛰어드니 해법이 보이더라.”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 컨퍼런스 지상 중계, “중요한 건 해법에 이르는 과정… 실패에서 더 많은 걸 배웠다.”

거대 담론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해법. 솔루션 저널리즘 실험에 뛰어든 언론인들이 하나 같이 하는 이야기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데이빗 본스타인 대표는 “해법의 작은 조각부터 출발하라”고 조언한 바 있다. 지역 차원의 솔루션 저널리즘 사례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미국에서 출발했다면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은 덴마크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문제 뿐만 아니라 해법을 찾는 과정에 주목하고 독자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발상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방법론이라기 보다는 저널리스트의 직업적 사명을 강조하는 규범적 개념에 가깝다.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이 솔루션 저널리즘을 포괄하는 개념처럼 보이지만 강조하는 지점이 다를 뿐 언론의 네거티브 편향을 극복하고 문제 해결의 과정에 집중하자는 큰 맥락은 같다고 할 수 있다.

6월22일 독일 본에서 열린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지역 보도를 위한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Constructive journalism for local reporting)”이라는 주제로 열린 세션을 정리했다.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 교육 기관인 본인스티튜트(Bonn Institute)의 트레이닝 코디네이터 리사 울바우어(Lisa Urlbauer)가 모더레이터를 맡고 스웨덴텔레비전의 지역 방송 에디터 마르쿠스 멜린다(Marcus Melinder)와 솔루션 저널리즘 스타트업 그레이터고반힐매거진(Greater Govanhill Magazine )의 발행인 리아논 데이비스(Rhiannon Davies)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리사 울바우어 : 리아논은 지역 신문사에서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시작하셨는데요. 경험과 통찰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리아논 데이비스 : 네. 우리는 하이퍼 로컬을 지향하는 신문사입니다. 고반힐(Govanhill)은 인구 1만5000명의 작은 도시입니다. 다국적인 지역이고 인종 분포도 다양합니다. 주류 언론은 이 지역을 늘 부정적으로 다뤘습니다. 많은 오해와 선입견을 주곤 합니다. 어떤 골목이 너무나도 위험하고, 그 골목은 가능하면 피해야하고, 이런 내용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곳에서 활기찬 지역 사회를 발견했습니다. 여러 풀뿌리 조직들과 사회적 기업들,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그 누구도 이런 부분을 이야기하지 않았죠. 그래서 우리는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주류 언론이 다루는 문제도 다루지만 해결 방안이 무엇인지 모색했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지역 주민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뉴스에서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리사 : 질문이 있습니다. 왜 로컬 저널리즘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지역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긴 합니다만 지역에서 기후 변화 같은 큰 내용을 다룰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기후 변화는 큰 주제지만 당장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상 고온이나 홍수처럼 말이죠. 크고 무거운 주제를 좁혀서 우리 주변의 문제로 다루면 로컬 저널리즘의 이슈가 되죠. 본인스티튜트에서 하고 있는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가 북부의 한 지역 신문사와 함께 도시 재개발의 해법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1970년 대에 두 도시가 병합돼 25만 명의 도시를 이루고 있는데 여러 가지 구조적 문제가 있어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제 6개월 정도 됐는데요. 우리는 도시의 비어있는 곳을 채우려는 게 아니라 두 개의 다른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게 목표입니다. 우리는 그 지역 기반의 신문사와 함께 온라인 쇼핑몰의 확산으로 지역 경제가 얼마나 황폐화하는지 보여주는 것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법을 찾을 수 있는지 또는 주변의 다른 도시에서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재개발을 진행한 곳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상업적으로 도시를 부흥시키는 게 아니라 하나의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사실 큰 주제들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어떻게 그것을 지역화하고 사람들을 참여하게 만들 것인지가 중요하죠. 이 과정에서 지역 사람들과 더 이야기하고 함께 배우고 있습니다. 리아논에게 좀 더 듣고 싶은데요. 문제 해결 저널리즘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게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합니다.

리아논 :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지역의 독자들도 언론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언론에서 늘 문제를 들춰내고 또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이 사실이 아니거나 본질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사람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좀 더 지역적인 이슈를 파고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역을 좀 더 잘 알고 실제로 지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지역에서 높은 차원의 문제를 다룬다는 게 저에게는 가슴이 뛰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문제 해결 저널리즘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제가 이곳에 오기 전에 영국의 포지티브뉴스(Positive News)라는 곳에서 프리랜서로 일한 경험 때문입니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에서 교육을 받았고 솔루션 저널리즘 트레이너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느린 저널리즘’에 관심을 갖게 됐죠.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고요. 이런 경험이 저에게는 정말 소중했습니다. 잘 닦인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제가 직접 길을 만들어 가고 이 길이 누군가가 따라올 수도 있을 테니까요. 사실 영국의 로컬 저널리즘은 여건이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역 기반 기업들이 신문사를 소유하고 있고 대부분 직원 수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뭔가 지역에서 의미 있는 실험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해보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최근 저희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하나 있습니다. 라디오 쇼를 시작했는데요. 난민이나 망명 신청자들이 출연합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지원하고 싶었고 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스스로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들떠 있습니다. 오프라인에서도 우리는 좀 다르게 접근해 보려고 했습니다. 문제를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해결 방안을 제안하는 거죠. 다른 지역에서 잘 안 됐다면 왜 안 됐는지 어떻게 이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지 등등. 가장 중요한 건 문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누군가를 찾는 것입니다. 물론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소통을 확장하려고 합니다. 저는 과거에 ‘고반힐 토크’라는 이름으로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줌으로 자신의 나라, 언어, 문화를 소개하면서 공통점을 찾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도 있습니다. 이런 여러 프로젝트가 모두 연결돼 있고 하나의 목표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리사 : 정말 흥미롭습니다. 해법을 찾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사례를 찾는다고 하셨죠. 다른 지역의 사례가 우리 지역에서도 가능하다는 걸 어떻게 설득하나요? 애초에 우리 지역과 비슷한 환경의 지역을 우선적으로 살펴보는 건가요?

리아논 : 어려운 질문인데요. 그곳이 어디든 정확하게 같은 문제를 겪는 다른 곳은 없습니다. 그냥 찾는 겁니다. 누군가는 상파울루나 캘커타를 잘 알 수 있지만 제가 살고 있는 글래스고우를 잘 알지는 못할 거에요. 하지만 중요한 건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겁니다. 여기에 이런 문제가 있는데 이렇게 하면 해결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문제가 이런 식으로 풀리지는 않으니까요. 여전히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이런 시도가 가능하더라, 이런 시도는 실패했다더라 등등의 정보를 공유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해결 방식도 중요하지만 차이와 한계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리사 : 그렇군요. 마르쿠스는 좀 더 전통적인 언론에서 일하고 있죠. 스웨덴TV는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을 어떻게 실험하고 계신가요?

마르쿠스 멜린다 : 우리는 스웨덴텔레비전의 21개 지역 방송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발생 사건도 다루고 심층 보도도 다루죠. 그래서 모든 뉴스가 컨스트럭티브한 건 아닙니다. 우리 뿐만 아니라 모든 스웨덴 방송사들이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을 위해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왜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을 시작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정확히 답을 하기는 어렵고요. 다만 컨스트럭티브한 접근이란 게 무엇인지 이야기해보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테면 풍력 발전이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우리 지역에서는 풍력 발전소를 어디에 설치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많았습니다. 핀란드에서는 풍력 발전소에 재산세를 부과하는데 스웨덴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핀란드에 가서 어떻게 이런 문제를 해결했는지 물어봤습니다. 스웨덴에 돌아와 국회의원들을 만났고요. 핀란드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가능성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리사 : 모든 기사가 컨스트럭티브할 수는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이렇게 여쭤볼까요? 좀 더 컨스트럭티브하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어떤 도전이 필요할까요? 이런 질문을 드리는 건 우리의 전통적인 독자들이 뉴스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확보하기 어렵게 됐죠.

마르쿠스 : 좋은 질문입니다.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해야겠죠. 하지만 기자들을 교육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을 시작했을 때 이런 고민에 부딪혔죠. 우리는 이제부터 착한 이야기만 써야 하는가. 비판을 줄여야 하는가. 이런 건 전형적인 컨스트럭티브에 대한 오해입니다. 그래서 뉴스룸 교육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겁니다. 기자 몇 명이 바뀐다고 될 일이 아니고, 부서 차원의 실험으로도 부족합니다. 조직 전체가 참여해야 합니다. 컨스트럭티브한 기사 몇 건으로 뉴스의 브랜드가 바뀌지 않습니다. 결국 가장 큰 도전은 모든 기사를 컨스트럭티브하게 풀어쓰거나 모든 기자들이 함께 하게 만드는 것이죠.

리사 : 컨스트럭티브한 질문을 취재 프로세스에 녹여 넣는 것, 이게 핵심인 것 같습니다. 일상적으로 이런 질문이 기사에 담기면 독자들도 그런 질문을 시작할 것이고 우리는 이런 질문에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좀 더 컨스트럭티브한 접근할 하게 될 테니까요. 리아논에게 다시 여쭤볼까요? 스타트업 창업을 하기까지 고민이 좀 있었을 것 같은데, 실제로 해보니 어떠신가요?

리아논 : 창업을 준비하면서 평소에 만나지 않던 사람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기존의 취재원들은 내가 자신들과 관계 없는 영역으로 갔다고 생각했고요. 2020년 말에 회사를 설립하고 보니 사실 크게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1월에는 큰 규모의 컨퍼런스도 열었습니다. 원래 사람도 많이 뽑으려고 했는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계획이 틀어졌죠. 그래서 웹 사이트를 만들었고요. 원래는 종이 잡지만 가려고 했는데 모바일을 무시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창간호를 내면서 크라우드 펀딩도 했습니다. 그때쯤은 사람들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무엇을 바꾸려고 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죠. 지금 우리가 부딪히고 있는 도전은 아무래도 우리가 전문적인 저널리스트들과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우리에게 기사 거리를 들고 올 때 이들의 관심과 걱정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저널리스트들이 빠지는 편견에서는 자유롭지만 기본적인 저널리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리사 :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볼프강 블라우(Wolfgang blau)가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은 운동이 아니라 방식이 돼야 한다고 말했죠. 컨스트럭티브든 솔루션이든 기사 작성의 도구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취재 결과를 피쳐로 쓸 때도 있고 스트레이트로 쓸 때도 있는 것처럼 말이죠. 질문을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지역 공동체 기반의 잡지를 만들잖아요. 과거에는 TV 기자로 일했죠. 어떤 차이가 있나요. 독자들을 사로잡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리아논 : 지역 공동체 언론이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기사를 쓰기 위해 또는 인터뷰를 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토요일 오후에 식사를 같이 하기 위해 만나는 거죠. 며칠 전에 워크숍을 진행했는데요. 스피치와 글쓰기 강의를 했습니다. 공동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이런 노력이 필요한 거죠. 많은 언론사들이 이런 비슷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 이벤트에 그치죠. 이런 이벤트가 성공하려면 진짜 그들을 위해서 한다는 건 보여줘야 합니다. 신뢰를 쌓아나가는 거죠. 특히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구독자들과 소통을 강화했습니다. 수많은 질문을 받았죠. 우리가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은 전문가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우리가 얻은 교훈은 구독자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답을 줘야 하고요. 우리는 모두가 전문가가 돼야 합니다. 이를 테면 기후 변화 이슈를 다루려면 기자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합니다. 컨스트럭티브한 보도가 비용이 많이 든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테면 다른 곳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찾으려고 할 때 그냥 구글에 검색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거나 사람들을 찾아 나설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접근 방식의 차이라고 보는 겁니다. 직접 만나면 다른 질문을 하게 됩니다. 뭐가 문제인지 물어보는 것을 넘어 뭐가 달라졌는지, 무엇을 할 수 있거나 해야 하는지 물어보라는 거죠. 한 교수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두 개의 도시 가운데 하나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요. 이미 죽어가는 상권이고 누구도 거기서 쇼핑을 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그 교수님을 다시 만나서 물어보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전망이 없는 곳이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곳이 있었는지 말이죠. 같은 사람한테 물어보더라도 질문이 다르면 다른 결론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해결 방안을 물어보세요. 이 사람들은 전문가들이니까요. 이들이 당장 해법을 내놓지 못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질문에 답변할 수 있는 누군가를 알고 있거나 소개해 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취재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죠.

리사 : 솔루션 저널리즘은 비즈니스 차원에서도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해법을 드러내는 컨스트럭티브한 기사를 읽을 때 더 오래 읽고 공유도 더 많이 합니다. 구독으로 이어지는 비율도 높고요.

리아논 : 그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년 쯤 우리도 좀 더 긍정적인 실적을 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그래서 계속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청중 : 저는 사실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짧은 강의를 몇 번 들은 게 전부고요. 저널리즘 스쿨을 졸업했지만 학교에서는 컨스트럭티브 뉴스에 대해 배운 게 없습니다. 제가 다닐 때는 가르치지 않았을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적어도 저는 여전히 질문이 많습니다.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기존의 문화를 바꿀 것인지 말이죠.

리아논 : 저는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의 웨비나를 활용했습니다. 강력 추천 드립니다. 아주 좋은 프레임워크가 있습니다. 문제와 해법, 통찰, 그리고 한계, 솔루션 저널리즘의 4가지 기둥에 대한 강의부터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솔루션 트래커에서 기사를 찾아볼 수도 있고 직접 기사를 업로드할 수도 있죠. 그리고 조디 잭슨(Jodie Jackson)이 쓴 ‘You are what you read(네가 읽는 것이 바로 너다)’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부정적인 뉴스와 긍정적인 뉴스의 파급 효과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이런 걸 저널리즘 스쿨에서 배운 게 아닙니다. 저의 관심을 발전시키고 그 관심을 실행에 옮겼을 뿐이죠.

리사 : 그리고 이런 모임에서도 많이 배우고 있잖아요.

리아논 : 네. 그렇습니다. 큰 도움이 됩니다.

청중 2 : 저는 우리 방송사가 얼마나 컨스트럭티브한지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사실 이런 게 지표가 명확하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무엇이 컨스트럭티브하고 무엇이 컨스트럭티브하지 않은지 구분하기도 어렵죠.

리사 : 그래서 우리가 하고 있는 건 해결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자는 겁니다. 우리는 문제 해결 저널리즘의 기준을 명확하게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데이터를 살펴보면서 분석할 거고요. 이미 데이터가 있죠. 사람들이 솔루션 기사를 좋아한다고 말이죠.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나 본인스티튜트에는 정말 많은 교육 자료가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의 질문… “120년만의 폭우,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편집자 주] 우리에게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고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해법을 찾을 수 있지만 여기에서 멈추면 우리의 질문은 “세상은 왜 이 모양이지?”에서 멈추게 되겠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해법을 만들어 내는 저널리즘이 아닙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를 벗어나는 게 아니라 문제를 더 깊이 파고 들어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제안입니다. 더 많은 질문을 끌어내고 최선의 선택을 모색하는 과정에 대한 저널리즘입니다. 미국에는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가 있고 덴마크에는 컨스트럭티브인스티튜트(Constructive Institute)가 있습니다. 네덜란드에는 드코레스폰덴트(De Correspondent)가 있고 프랑스에는 리포르테데스포아(Reporters d’Espoirs), 체코에는 트랜지션스(Transitions)가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저널리즘의 확장을 고민하고 해결 지향의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적당히 따뜻하고 착한 이야기가 아니라 참여와 변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디어오늘은 기획 연재 ‘솔루션 저널리즘 현장을 가다’ 시리즈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의 솔루션 저널리즘의 실험과 시행착오의 경험, 아이디어, 가능성을 소개합니다.

지난 여름, 우리는 기상 관측 이래 사상 최악의 홍수를 치렀다. 기상 이변은 더 자주 찾아올 것이고 갈수록 더 큰 피해를 만들 것이다. 문제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달라진 건 없다. 기상 이변은 한국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그리고 언론은 어떻게 접근했는지 솔루션 저널리즘의 사례들을 살펴봤다.

“콘크리트를 거둬내고 빗물이 느리게 흐르도록.”

미국 뉴올리언스에서는 강변의 제방을 높이거나 빗물 펌프의 용량을 늘리는 것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2005년 허리케인 이후 도시 곳곳에 빗물 정원을 만드는 엄브렐러(Umbrella, 우산)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키워드는 홍수 복원력(flood resilience)이다. 기후 변화 이슈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그리스트(Grist)가 홍수에 맞서는 뉴올리언스의 경험을 자세히 소개한 적 있다.

뉴올리언스는 지대가 낮은 데다 지반 침하가 계속되는 지역이 많았다. 강력한 빗물 펌프를 돌리고 있지만 콘크리트 밑은 사막처럼 말라가고 있었다. 서울도 마찬가지지만 뉴올리언스에서도 더 큰 하수관과 하수 탱크를 설치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해법이 거론됐다가 천문학적인 규모의 비용이 드는 데다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라는 현실적인 판단에 이르렀다.

결국 뉴올리언스 시민들이 선택한 해법은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흙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흘러내린 빗물을 최대한 빨리 강으로 흘려 보내는 게 아니라 최대한 가두고 머금어 두자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서울 강남역의 경우처럼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돼 있고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아무리 잘 만든 하수 시설도 넘치고 역류하게 된다. 뉴올리언스의 해법은 높은 곳의 물이 높은 곳에 최대한 오래 머물도록 천천히 흘러내리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엄브렐러연합에 따르면 500평방피트(46평방미터)의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바닥을 걷어내고 투수성 포장이나 잔디로 대체하면 최대 1000갤런(3785리터)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300mm의 폭우가 쏟아질 경우 46평방미터면 대략 13.8리터가 된다. 빗물 정원 한 곳이면 거의 300배 넓이 면적에 쏟아지는 빗물을 담을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골목마다 있는 주차 공간만 투수성 포장으로 바꿔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물론 승용차 바퀴가 진흙 범벅이 되는 건 감수해야 한다.

비영리 단체인 어반컨서번시(Urban Conservancy)는 ‘앞마당 이니셔티브(Front Yard Initiative)’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를 뜯어내고 식물 정원과 자갈이 깔린 마당, 다공성 포장도로로 바꾸는 DIY 프로그램인데 여기에 일부 비용을 주 정부가 부담하고 기술 지원도 제공한다. 집집마다 옥상에 빗물 받이를 두고 빗물 저장 탱크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배수 용량을 크게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홍수 복원력은 효과를 확인할 때까지 상당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 정부 지원이 일부 있다고 하지만 저소득 계층은 당장 빗물 정원을 만드는 데 비용을 들일 여유가 없다. 임대 주택의 경우 집 주인의 허락 없이 공사를 할 수 없고 집 주인이 비용을 댈 리도 없다. 관리와 유지 비용도 감안해야 한다.

핵심은 공동의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뉴올리언스 주 정부는 연방 정부 예산으로 1억4000만 달러를 확보하고 녹색 기반 시설을 개발하는 200개 프로젝트에 22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저소득 계층 밀집 지역의 경우 주 정부가 비용을 모두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 1000년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네덜란드의 ‘Room for the River(강물의 여유 공간)’ 프로젝트도 세계 여러 나라의 벤치마크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는 이미 1100년대부터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누군가가 집 주변에 제방을 쌓으면 그 물이 이웃으로 넘쳐 흐를 것이기 때문이다.

수문학자 반 더 브렉(Van der Broeck)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강물의 범람을 막는 대신 흘러 넘치게 만드는 전략을 도입한 배경을 설명했다.

네덜란드는 1000년 이상 물과 싸워온 나라지만 1990년대 두 번의 홍수를 겪으면서 제방을 쌓고 수로를 파는 것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문제 의식을 갖게 됐다. 핵심은 강의 흐름에 맞서지 않고 강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제방을 허물고 새로운 물길을 냈다. 일부 마을을 통째로 비워야했고 과거 농지로 쓰던 곳이 오소리와 비버, 철새가 찾아오는 공원으로 바뀌었다. 홍수 때면 이곳이 넘치는 물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마스(Mass) 강 인근에 집수 지역을 30여 곳 만들어 물을 가두자는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져서 이렇게 조성된 범람원(flood plain)이 1300에이커(526만 평방미터) 규모, 투입된 예산만 27억 달러(3조5800억 원)에 이르렀다.

네덜란드는 ‘삼각주 계획(Delta Works)’라는 이름으로 1만 년만에 한 번 닥칠 수 있는 ‘종말론적(apocalyptic)’ 홍수에 대비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학교와 병원, 요양시설을 비롯해 기반 시설의 침수 가능성을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이전을 추진하는 것까지 포함된 전략이다. 삼각주 프로그램의 책임자인 페테 글라스(Peter Glas)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 훨씬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텍사스주 휴스톤도 2011년 사상 최악의 홍수를 겪고 50억 달러 규모의 피해를 입은 뒤 네덜란드의 경험을 벤치마킹했다. 인터넷 신문 복스(Vox)는 “최대한 빨리 물이 빠져나가게 만드는 게 20세기 시스템이었다면 최근 녹색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숲과 습지의 기능을 모방해 살아있는 유기체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콘크리트 시스템은 정해진 용량을 넘어서면 부러지기 쉽지만 풀로 뒤덮인 습지는 쉽게 구부러진다는 설명이다.

물의 순환을 만드는 방법.

미국 위스콘신주 메디슨 하수관리청은 지난 2016년 새로운 과제를 맞닥뜨렸다. 연방 정부의 하수 처리 기준이 강화되면서 엄청난 예산이 추가로 투입될 상황이었다. 위스콘신주는 야하라(Yahara) 강에서 검출되는 인(燐,Phosphorus) 95%를 제거하고 있지만 새로운 기준에 따르면 기준이 96%로 높아졌다. 1억3000만 달러의 추가 설비가 필요했다.

기후 변화 전문 매체 엔시아 보도에 따르면 위스콘신주는 최종 수질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수질 오염을 관리하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수 처리 단계에서 인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하수로 유입되는 비율을 낮춰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게 이른 바 ‘원 워터(One Water)’ 프로젝트다.

이를 테면 잔디밭에 뿌리는 물은 식수만큼 깨끗하지 않아도 된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에서는 화장실 변기에서 흘러내린 물을 조경 용수 등으로 다시 사용하도록 건축 법규를 개정했거나 준비하고 있다. 샤워실 배수구에서 흘러나온 물이 다시 변기로 흘러가도록 하는 방식이다. 텍사스의 다우케미칼 공장은 브라조스 강에서 물을 끌어오는 대신 인근 지역의 폐수를 처리해서 공업용수로 쓰고 있다. 49억 리터의 담수 사용량을 줄인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폐수에서 바이오 고형물을 추출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도 발견할 수 있다. 유기물을 메탄으로 전환해 전기를 얻고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아이디어도 실행되고 있다.


비영리 기업 그린인프라(Green Infra)의 CEO 토니 웡(Tony Wong)은 ‘원 워터’ 접근이 가뭄과 홍수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주요 도시의 물 균형(water balance) 데이터를 살펴 보면 빗물과 폐수, 하수를 합한 양이 실제로 우리가 소비하는 물보다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건물 사이에 습지를 만들고, 공공 장소에 커뮤니티 정원을 조성하고 도시 과수원을 확장하고, 생활 폐수를 재활용하면서 담수화 플랜트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이야기다.

복스는 빗물을 강으로 흘려 보내는 하수도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개울과 강변을 따라 토지를 개간하고 홍수 때 넘치는 강물을 저장할 수 있는 공원을 조성했다. 사유지에 빗물 정원이나 가로수 우물(street tree wells)을 조성할 경우 세제 혜택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런 녹색 공간이 오염 물질을 걸러내는 도시의 신장 역할을 하게 된다. 휴스턴의 인공 녹지는 연간 20억 갤런의 유출수를 걸러내고 130만 달러의 처리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미국 워터얼라이언스(Water alliance)의 CEO 래디카 폭스(Radhika Fox)는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깨끗한 물에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기후 변화의 위험에도 더 취약하다”면서 “’원 워터’는 기후 변화 대책일 뿐만 아니라 형평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 사는 부자들은 변기 물이 어디로 흘러가든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원 워터’ 순환을 이루지 못한다면 기후 변화는 취약 계층을 먼저 공격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재난이 닥친 다음은 이미 늦다.”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Nashville)은 반복적인 홍수를 근본적으로 막기 어렵다고 보고 상습 침수 지역에 사는 주택을 매입해서 공원으로 바꾸고 있다. 이미 발생한 피해를 복구하는 데 예산을 쓰는 게 아니라 미래에 발생할 피해를 줄이는 데 선제적으로 예산을 쓰자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한 번 피해를 입은 지역은 다음에 또 피해를 입거나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입게 될 수도 있다. 고쳐 쓰는 방식으로는 장기적으로 더 큰 피해와 부담을 안길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주택과 토지를 매입해 공원이나 산책로로 만들면 홍수가 나서 물이 불어났을 때 이 지역이 물을 가두는 역할을 하게 된다.

내슈빌은 어떻게 이런 프로그램을 도입하게 됐을까.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1998년에 실험적으로 상습 침수 지역의 주택 93채를 사들인 경험에서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2010년 홍수로 20억 달러 규모의 피해를 입은 뒤 주택 매입 프로그램을 확대했고 4300만 달러를 들여 400채 이상의 주택과 공터를 매입했다. 연방 정부가 매입 비용의 75%를 부담하고 나머지는 주 정부와 시 정부가 부담하는 방식이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에 따르면 재난 예산의 20%정도가 사전 예방에 투입된다고 한다. 내슈빌처럼 홍수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는 데 1달러를 투입할 경우 6달러 이상의 피해 감소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이런 계산에 따르면 내슈빌이 주택 이전에 쓴 4300만 달러는 2억5800만 달러 이상의 피해 감소 효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홍수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보험료가 연 300달러에서 월 700달러로 뛰어오르면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주민들을 모아놓고 설명할 때는 “25년 동안 처음 있는 홍수였지만 앞으로 10년 동안 이런 규모의 홍수가 4번 이상 발생할 수도 있다”면서 “지금 팔지 않으면 더 큰 피해를 입은 뒤에 떠나게 될 수도 있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내슈빌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한계를 빠뜨리지 않았다. 비가 올 때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살던 집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보상금이 1만 달러 밖에 안 된다면 컨테이너 박스 외에 집을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들은 가까운 미래에 또 다시 물에 잠길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다. 모기지론에 묶여 있는 노인들도 이사를 할 여유가 없다. 연방재난관리청이 30년 동안 매입한 주택이 4만 채에 이르지만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매입 프로그램의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매입하지 않으면 결국 개인들끼리 거래하는 수밖에 없는데 침수됐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거래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방글라데시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있었다. 2019년 7월 쿠리그람 지역에서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질 거라는 예보가 있었고 정부가 위험 지역에 사는 5000여명을 식별해 휴대 전화 뱅킹으로 1인당 10달러를 송금했다.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이 돈으로 미리 비상 식량과 대피 용품, 안전 장비 등을 구입하고 가축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재난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한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사례 가운데 하나”로 소개하면서 “재난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열심히 찾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0년 전만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침수 지역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구체적으로 피해 규모를 추산하는 것도 가능하게 됐다. 위성 데이터와 수학적 모델링을 활용하면 홍수나 가뭄을 최소한 며칠 전, 빠르면 몇 주 전에 미리 예측할 수 있다. 2017년 소말리아에 기근이 예상된다는 관측이 나왔을 때도 UN 등 구호기관에서 60만 가구에 상품권을 문자 메시지로 전송한 사례가 있었다. 재난이 예상된다면 피해 복구 이전에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비용을 쓰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루이지애나가 호치민에서 찾은 해법.

상습적인 홍수와 침수 피해를 겪었던 미국 루이지애나는 지구 반대편 베트남 호치민에서 해법을 찾았다. 메콩강을 끼고 있는 호치민 역시 루이지애나처럼 해수면 보다 낮은 곳에 자리 잡은 도시다. 비가 조금 많이 온 날이면 강이 불어나 제방이 무너지는 일도 있었다. 역시 아스팔트로 뒤덮여 빗물이 흡수될 곳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베트남 전쟁 때 불타버린 맹글로브 숲을 수십년에 걸쳐 복원하긴 했지만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염분을 견디지 못한 나무가 쓰러지고 나무 뿌리가 힘을 잃으면서 지반이 침하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베트남대학교 호롱피(Ho Long Phi) 교수는 뉴올리언스 공영 라디오 WWNO와 인터뷰에서 “그들이 우리를 보호하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WWNO의 연속 보도 ‘삼각주 블루스(Delta Blues)’를 소개하면서 “컨텍스트를 바꾸는 강력한 솔루션 접근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삼각주 블루스’ 3부작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구성돼 있다.

1부는 해수면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뉴욕의 맨해튼처럼 해안가에 멋진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콘크리트 건물이 늘어날수록 홍수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호치민에서도 처음에는 홍수 대책으로 지반을 높이는 선택이 최선이었다. 이 지역 주민 현탄후안(Huynh Thanh Xuan)은 3년 전 집을 통째로 들어 지반을 4피트 높이는데 3만 달러를 썼다. 주변 이웃들이 비웃었지만 지금은 달리 대안이 없다는 걸 모두가 안다.

2부는 벼 농사를 포기하고 새우 양식을 시작한 바닷가 농부들의 이야기다. “메콩강 인근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물과 같다. 물은 길을 따라 흐르고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제방 안에 가두는 것보다 그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도록 돕는 게 해법이 될 수도 있다.’”

호치민의 해수면 상승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1990년 후반 천문학적인 규모의 비용을 들여 해안선을 따라 거대한 제방을 건설했지만 이 제방이 완성될 무렵에는 상당수 농민들이 바다 새우 양식으로 직업을 바꾼 뒤였다. 수천 명의 농민들이 수문을 열어달라고 항의 시위를 벌였고 성난 농민들이 몰려가 강제로 수문을 개방하는 일도 벌어졌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 결과 새우 양식 등으로 지역 경제가 살아나긴 했지만 토지의 황폐화가 가속화됐다.

1부와 2부는 결국 대형 재난 앞에서 각개약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결국 이런 방식으로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3부에서는 현실적인 해법을 다룬다. 기본적인 홍수 피해 방지가 우선이지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공동체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루이지애나대학교 엘리자베스 모솝(Elizabeth Mossop) 교수는 “빗물 탱크를 집집마다 무료로 나눠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WWNO와 인터뷰한 루이지애나해양기금의 로버트 트윌리(Robert Twilley)는 “사람들을 겁주는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WWNO는 쾌도난마의 해법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만 선택 가능한 대안과 최선의 해법을 제안하고 있다.

“우리도 네덜란드처럼 높은 방파제와 제방을 건설할 수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현금이 많고 상대적으로 보호해야 할 인구가 많지 않다. 반면 사우스 루이지애나는 훨씬 넓은 지역에 재원은 적고 훨씬 더 취약하다.”

친환경 건축가 부트롱응야(Vu TrongNghia)는 “녹색 지붕을 만들지 않으면 건축 허가를 내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빗물을 거리로 밀어내는 대신 흡수하는 도시 계획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호치민은 1인당 녹지공간이 1평방미터밖에 안 된다.

루이지애나와 비슷한 여러 도시에서 선택한 해법은 결국 넘치는 물을 흡수할 수 있는 범람원과 공원을 만드는 새로운 도시 계획과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이다. 이 역시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겠지만 최선의 해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게 이들이 얻은 결론이다.

스폰지 시티를 만들자.

중국이 30개 스폰지 시티에 120억 달러 투입한다는 비즈니스인사이더의 기사도 눈길을 끈다. 진후아(Jinhua)의 얀웨이저우(Yanweizhou) 공원은 비가 오면 물에 잠기도록 설계돼 있다. 상하이는 푸동(Pudong) 지구 린강(Lingang)에 중국 최대 규모의 스폰지 시티 프로젝트를 도입했다. 건물 옥상에 정원을 조성하고 도시 곳곳에 습지를 만들고 도로에 투수성 포장을 깔았다. 옥상 정원의 규모는 430만 평방피트(39만 평방미터)에 이른다.

BBC 보도에 따르면 세계 주요 도시의 빗물 흡수력을 측정한 결과 호주 오클랜드는 빗물의 35%를 흡수해 흡수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집중 호우나 홍수 위험이 커지는 반면, 도시의 흡수력은 떨어지고 있다”는 게 BBC의 경고다.

오클랜드에서는 2016년 오클리 크릭(creek)이라는 하천 주변에서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자연을 복원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빗물 흡수력이 크게 늘어났다. 비가 많이 오면 이곳이 도시의 스폰지 역할을 하게 된다.

흡수력을 높이려는 다양한 아이디어도 눈길을 끈다. 뉴욕에서는 보행자 도로에 화분 상자 수천 개를 깔았다.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콘크리트를 제거하고 자갈을 깔고 옥상 정원을 늘리는 등의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BBC의 제안은 빗물 터널을 만들고 배수 펌프의 용량을 늘리는 등의 노력이 필요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녹색 인프라가 이런 회색 인프라의 규모를 크게 줄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진짜 해법은 인식의 전환부터.”

제레미 스투츠맨(Jeremy Stutsman) 미국 인디애나주 고센(Goshen) 시장은 이런 농담을 하곤 했다. “세상의 종말이 오면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인디애나로 가십시오. 그곳에서 50년 후에 종말이 닥칠 테니까요. 물론 50년이 걸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뭔가를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스투츠맨은 “기후 변화를 두고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라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설득한다”고 강조한다.

인디애나주는 전체 면적의 24%가 습지인 데다 수많은 강 줄기가 흩어져 있어 폭우가 발생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2018년 2월에는 기록적인 홍수로 3만20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과거에는 연방재난관리청의 지원을 받기도 했지만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기상 이변이 속출하면서 우선 순위가 밀리는 경우가 많다.

인디애나주는 재난 구호 기금이 있는 몇 안 되는 주 가운데 하나지만 기금 소진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인디애나주에서 홍수 보험에 가입한 가구와 기업은 1% 수준이었다. 나머지 99%는 홍수에 속수무책이라는 이야기다.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가 특별히 고센의 실험에 주목했던 건 재난에 맞서는 과정에서 주민들을 설득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환경 교육을 시작했고 청년들의 지역 사회 참여를 독려했다. 청년 의원들이 발의해 시에서 관리하는 나무 캐노피를 45% 늘리는 결의안도 채택됐다.

한국 언론에서도 해결 지향의 보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주간조선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거론됐던 ‘빗물세’를 대안으로 소개했다.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등 불투수 면적에 비례해서 세금을 부과하자는 아이디어다. 뉴올리언스나 루이지애나가 찾은 해법처럼 빗물을 밀어내는 게 아니라 스며들게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이다. 서울은 불투수 면적율이 54.4%에 이른다. 주간조선 보도에 따르면 미국 뉴저지에서는 2019년부터 ‘빗물세(Rain Tax)’가 도입돼 지붕과 주차장 같은 불투수 설을 대상으로 포장 면적에 따라 세금을 부과한다. 서울도 2012년 강남역 침수 사건 이후 빗물을 외부로 방출하는 정도에 따라 하수도 요금을 추가 부과하는 빗물세를 검토했으나 무산됐다.

다음은 김진수 국토해양팀 입법 조사관의 이야기다.

“불투수 면적이 적은 농촌 지역은 강수량의 약 45%가 지하로 침투하는데 도시 지역은 25% 이내의 강수량만이 지하로 침투한다. 도심지에서 발생한 강수가 지하로 침투하지 못하고 불투수면을 따라 흘러 유출량이 증가하면서, 반지하주택이나 지하차도, 터널, 지하철, 주차장 등의 도시시설에서 침수가 발생해 인명 및 재산피해로 이어진다.”

대덕넷은 예보 시스템 강화를 대안으로 제안했다. 홍수와 침수 위험을 3시간 전까지 분석하고 사물인터넷 기술을 활용해 하천과 도심의 수위와 유속을 모니터링하고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집계하는 시스템이 이미 구축돼 있다. 다만 황석환 건설연 수자원하천연구본부 박사에 따르면 이런 데이터를 종합해 대피 여부 등을 결정하는 콘트롤 타워가 없고 틀린 정보를 줬을 경우 책임 소재 등의 문제로 기관들이 나서지 않는 상황이다.

“침수는 10~20분 만에 발생한다. 홍수예보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한 기술이 어느 정도 마련된 만큼, 정확도가 70~80%라 하더라도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문제가 명확한 것처럼 해법 역시 숱하게 쏟아져 나왔다. 중요한 건 무엇을 선택하고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다. 한국은 네덜란드나 미국의 내슈빌, 베트남의 호치민과도 상황이 다르다. 밀집도가 높고 녹지 공간이 거의 없다. 반지하를 없애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없고 시간당 400mm의 기록적인 폭우에서는 빗물 탱크 역시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를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에 이르는 과정을 추적 보도하는 증거 기반의 보도 기법이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기후 변화와 기상 이변에 맞서 내놓은 여러 해법과 실패, 가능성을 살펴 보는 것은 우리 현실에 맞는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다음 연재에서는 유럽의 여러 솔루션 저널리즘 실험을 소개할 계획이다.

“대심도 터널 대신에 빗물 탱크 1만 개를 만들자.”

[인터뷰] 한무영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기상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폭우가 지나간 뒤 여러 언론에서 지하 대심도 터널을 만들어야 한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박원순 전 시장이 대심도 터널을 중단해서 피해를 키웠다고 비난했고 여러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저류 배수 시설을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서울시는 10년 동안 1조5000억 원을 들여 대심도 터널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한무영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는 빗물 전문가다. 미래형 물 관리 모델로 세계적인 벤치마크 모델이 된 서울 자양동 더샵스타시티도 한 교수의 자문을 받아 만들었다. 2006년에 완공된 스타시티는 옥상과 정원 등에 흘러내린 모아 3000톤 규모의 지하 빗물탱크에 저장하는데 이렇게 모아서 분수대와 화장실 용수 등으로 연간 4만 톤을 재활용하고 있다. 비용은 4억6000만 원.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서울시가 친환경 건축 기준에 따라 용적률을 3% 늘려주는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한 교수는 대규모 지하 저류조보다 더 시급한 것은 도시 전체에 빗물 순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음은 한 교수와 일문일답.

– 빗물 순환의 사례로 이야기하는 스타시티 역시 저장 용량이 3000톤 밖에 되지 않는다. 이걸로 400mm의 폭우를 막을 수 있나.

“대심도 터널을 만드는 데 1조 원 이상이 든다고 한다. 이 돈의 10분의 1만 있어도 빗물 탱크 수천 개를 만들 수 있다. 스타시티 규모의 빗물 탱크 설치 비용이 5억 원이라면 1000개면 5000억 원이고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30만 톤의 빗물은 저장할 수 있다. 핵심은 빗물을 빨리 흘려 보내는 게 아니라 최대한 오래 가둬두는 것이다. 만약 폭우가 예상된다면 미리 빗물 탱크를 비워두라고 안내하면 된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게 돼 있다. 발상을 바꾸면 된다. 낮은 곳의 빗물을 빨리 빼내는 것도 방법이지만 물이 흐르는 속도를 늦춰주면 된다.”

– 그래도 4억5000만 원이면 적은 돈은 아니다. 이 돈을 감당할 수 있는 아파트가 얼마나 있겠나. 스타시티의 경우 수돗물 절감 비용도 연간 400만 원 정도라던데 큰 돈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사례지만 벌써 15년 전에 지어진 아파트 이야기다. 왜 이런 해법이 확산되지 않는다고 보나.

“서울시에서 용적률을 3% 올려주는 인센티브를 줬는데 이게 실질적으로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인센티브는 건설사들 좋은 일만 시키게 된다. 발상을 바꿔야 한다. 오세훈 시장이 하겠다는 대심도 터널은 홍수 때 말고는 쓸 일이 없다. 1조 원 넘는 돈을 건설사들 퍼주는 프로젝트다. 그런데 빗물 탱크는 홍수가 나지 않을 때도 쓸 수 있다. 올해는 홍수가 문제였지만 가뭄이 문제될 수도 있다. 빗물을 받아뒀다가 정부가 사주는 방안도 가능하다. 소방용수나 농업용수 등으로 쓸 수 있다. 한국도 빗물을 화장실 변기나 청소 용도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대심도 터널 만들 돈이면 서울에 수천 개의 빗물 탱크를 만들 수 있다. 이것만으로는 안 되겠지만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하수 처리 용량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수 유입을 줄이는 것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 해외에서는 홍수 복원력을 높이기 위해 습지를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던데.

“서울은 조금 상황이 다르다. 불투수 면적을 낮추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한계가 있기 때문에 빗물 순환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집중적으로 비가 쏟아지기 때문에 ”

– 대심도 터널을 뚫어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세 가지가 잘못됐다. 첫째, 홍수 방지라는 단일 목적의 프로젝트다. 비올 때 잠깐 쓰고 1년 내내 안 쓰는 시설에 수조 원을 들여야 한다. 둘째, 집중형이다. 강남역 지하에 만드는 터널은 강남역 인근의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 문제가 여기 밖에 없나? 셋째, 빗물을 배제하는 방식이다. 빗물을 빨리 흘려 보내야 한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대안은 다목적으로, 분산형으로, 그리고 빗물 관리형으로 가자는 거다. 우리 집 지붕에 내리는 빗물을 우리가 관리할 수 있으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대심도 터널 만들 비용으로 건물마다 1억 원씩 지원해서 빗물 탱크를i 늘리면 하수도에 유입되는 빗물을 크게 줄일 수 있다.”

– 빗물 탱크 1000개를 설치한다고 해도 시간당 400mm의 폭우를 해결할 수 있나.

“물론 기록적인 폭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핵심은 부담을 N분의 1로 나누자는 거다. 한 군데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빗물을 활용한다는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빗물은 하수구에 흘러들면 하수지만 모아두면 깨끗한 물이다. 산성비라고는 하지만 하루 이상 가라앉혀 두면 중성으로 바뀌고 수돗물보다 더 깨끗한 물이 된다. 지하 주차장을 지을 때 한 층만 더 내려가서 빗물 저장 탱크를 만들면 된다. 이미 지은 건물이라면 주차 공간 몇 면만 벽을 쌓아서 탱크를 만들면 된다. 비용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 스타시티가 모델로 거론되는데 왜 15년 전 사례에서 멈춰 있나.

“지역마다 조례를 만들었는데 실제로 건설사들에게는 유인이 없었던 것 같다. 용적률을 높여주는 걸로는 부족하고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 결국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빗물을 흘려 보내지 말고 관리해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빗물을 모으면 서울시에서 수돗물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사준다고 해야 한다. 당장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빗물 탱크가 수백 수천 개로 늘어나면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이걸 왜 하느냐를 생각해 봐야 한다. 학교에서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학교 옥상에 빗물 탱크를 만들 수도 있고 운동장 밑에 저류 시설을 만들 수 있다. 학생들이 빗물의 순환 시스템을 직접 보고 경험하면 달라질 것이다.”

“변화를 만드는 경험이 기자들에겐 최고의 동기 부여.”

“변화를 만드는 경험이 기자들에겐 최고의 동기 부여.”
[인터뷰] 소피 카잘스 니스마땅 솔루션 에디터, “솔루션 기사는 구독 전환율이 두 배.”

니스마땅의 솔루션 섹션은 지역 경제와 관광 산업을 다루는 기사가 많지만 기후 변화와 실업, 주택, 이민자 등 지역 이슈에 한정되지 않는다. 팀장을 포함해 3명의 기자들이 팀을 이루고 있고 모두 여성이다. 다음은 지난 6월29일 니스마땅 대회의실에서 만난 솔루션 에디터 소피 카잘스(Sophie Casals)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 니스마땅의 솔루션 저널리즘 조직을 설명해 달라. 몇 명이 한 달에 몇 건의 기사를 쓰나.
“솔루션 저널리즘을 전담하는 기자는 3명이다. 한 달에 30건 정도 기사를 내고 있다.”

– 기후 변화 이슈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에 가뭄에 대한 해법을 다룬 시리즈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빗물이 스며들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에서도 있었지만 실제로 정책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프랑스는 어떤가?
“해법을 모색하고 제안하지만 실제로 변화를 끌어내려면 정치가 움직여야 한다. 심지어 법이 있어도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문제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물 부족 문제의 원인이 지하수 고갈 때문이고 빗물이 스며들게 만들어야 한다는 해법을 끌어냈다면 실제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걷어내는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고층 건물의 용적률을 높이고 자연 녹지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당장 효과를 보기는 어렵고 이제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다.”

– 가장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기사는 어떤 건가.
“소개하고 싶은 기사가 정말 많지만 최근 사례를 중심으로 두 가지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는 쓰레기로 뒤덮인 해변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얼마나 상황이 심각한가 보여주는 기사를 쓸 수도 있지만 독자들에게 해법이 무엇인지 제안을 달라고 했더니 600여 건의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이 가운데 50건을 선택해서 기사로 만들었다. 그 어떤 기사 보다 반응이 좋았고 실제로 변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버려진 농지에 대한 기사였다. 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은 땅이 없는데 여전히 비어있는 농지가 있다. 이 둘을 연결시켜주는 비영리 조직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는데 농지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이 열 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한다. 1년 뒤에 후속 기사로 변화와 한계를 짚는 후속 기사를 내보냈다.”

– 이런 기사로 구독자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었나.
“솔루션 저널리즘 콘텐츠는 니스마땅이 쓰는 많은 기사 가운데 일부다. 그래서 솔루션 저널리즘 덕분에 구독이 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일반적인 기사의 평균 체류 시간이 2분 정도인데 솔루션 기사는 6분이다. 유료 구독으로 연결되는 비율이 일반 기사는 6% 정도인데 솔루션 기사는 13% 정도로 나타났다. 구독자 수도 중요하지만 충성 독자를 늘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설문 조사를 한 적 있는데 응답자의 70% 정도가 솔루션 기사를 더 많이 다뤄달라고 답변했다.”

– 독자들에게 기사 추천을 받고 있다. 어떤 식으로 진행하나?
“달마다 세 가지의 주제를 선택해서 정기 구독자들에게 메일을 보내 어떤 기사를 다루면 좋겠느냐고 묻고 1주일 동안 투표를 한다. 구독자들은 뉴스 제작에 참여하는 기회를 구독료에 대한 보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주제가 풍성해지기도 한다. 폭염을 주제로 취재를 하고 있는데 한 독자가 실내 주차장을 늘려야 한다는 접근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제안했다. 단순히 기사를 읽는 데 그치지 않고 함께 해법을 찾는 새로운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편집회의에서 결정한다.”

– 다루는 범위가 매우 넓은데 서너 명의 기자들이 이를 모두 소화할 수 있나.
“솔루션 저널리즘을 전담하는 기자는 세 명이고 하나의 주제로 10~12건의 기사를 내보낸다. 깊게 파고 들지 않아도 되는 이슈는 그날그날 스트레이트로 다루고 좀 더 깊이 다뤄야 하는 아이템은 최대 6주 동안 시간을 두고 준비한다. 솔루션 팀은 세 명이지만 이런 접근을 편집국 전체로 넓혀가고 있다. 12개 팀이 있기 때문에 조금씩 이러한 실험을 확장하고 있는 과정이다.”

– 2014년의 경험을 이야기해 달라. 폐업 위기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37만 유로를 모금했고 유료 구독자가 크게 늘었다고 들었다.
“2014년에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 헐값에 팔려나갈 상황이었는데 차라리 직원들이 회사를 매입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시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니스마땅은 이 지역의 유일한 일간 신문이고 정기 구독자가 아니라도 애정을 갖는 시민들이 많다. 후원금이 쏟아졌고 법원이 시민들의 반응을 보고 회생 기회를 줬다. 37만 유로가 회사를 살린 건 아니지만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중요한 동력이 됐던 건 사실이다.

– 솔루션 기사는 유료 구독자들에게만 공개된다. 많은 뉴스 기업들이 겪는 딜레마지만 경쟁력 있는 기사가 유료로 묶이면 영향력이 줄어들게 되지 않나.
“우리는 마케팅 측면에서 접근했다. 2015년에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온라인 유료 구독을 도입했다. 시장 조사를 해보니 뉴스를 읽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의 뉴스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무료 기사라고 더 많이 읽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새로운 독자를 확보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니스마땅이 그동안 썼던 기사와 다른 기사를 디지털에서 실험하고 여기에서 젊은 독자들의 유료 구독을 끌어내는 전략이었다.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도 일부 기여하긴 했지만 1700명에서 시작해서 일곱 배 이상 정기 구독이 늘었다.”

– 구독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높은 기사들이 따로 있나.
“우리 삶의 주변 이야기와 우리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기사가 반응이 좋다. 구독으로 연결되는 비율도 높다. 문제를 드러내는 것 뿐만 아니라 문제의 해결을 모색하는 기사를 만드는 게 우리 팀의 미션이다. 구독료가 아깝지 않다는 댓글이 많고 덕분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댓글도 있었다.”

– 솔루션 저널리즘의 취재 가이드라인이 있나. 미국의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해법이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하고 결과와 한계를 풀어써야 한다고 한다.
“특별한 형식이 있는 건 아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다. 미국에 솔루션 저널리즘의 사례가 많다고 들었지만 특별히 교류가 있는 건 아니었고 우리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것인가 수많은 고민과 실험을 거듭했다.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오지 못했을 때는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설명했다. 실패의 원인과 개선 방안, 한계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기분 좋은 기사나 홍보 기사를 솔루션 기사로 부르지 않는다는 건 명확하다.”

– 솔루션 저널리즘의 실험 7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문제 해결의 과정을 추적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다.
“의미있는 변화를 끌어낸 기사도 있었지만 완결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후속 기사도 중요하다. 우리가 찾는 해법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가, 다른 변수나 한계가 있는 건 아닌가, 계속해서 취재하고 검증한다. 만약 다른 문제가 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하기도 한다.”

– 넷플릭스 시리즈처럼 기사를 순차적으로 공개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첫 번째 기사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두 번째 기사부터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다양한 아이디어와 사례를 소개하면서 접근한다. 어떤 과정을 거쳐 해법에 이르렀는지 최대한 자세하게 풀려고 노력한다. 기사 제목을 ‘어떻게’로 시작해서 ‘해야 하는가’로 끝나는 것도 우리 스타일이다.”

– 기자들 교육은 어떻게 하나.
“전통적인 방식은 문제를 드러내고 강조하지만 우리는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30%, 해법을 찾고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 70%를 할애한다.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누가 이 문제를 더 잘 알고 있는지, 한계는 없는지 등등을 계속해서 묻고 더 깊이 들어가려고 노력한다. 시리즈 기사를 쓰면서 시민들의 반응을 담으려고 노력하는데 이게 지역 정치인들에게 압박이 된다. 우리가 쓴 기사가 실제로 변화를 만든다는 경험이 기자들에게는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된다.”

– 다른 지역의 경험에서 해법을 찾기도 하나. 니스의 해법을 다른 지역에서 활용하는 사례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굉장히 많다. 보르도에서 공공 자전거가 대중교통으로 자리 잡은 사례를 보도한 뒤 많은 독자들이 왜 우리 도시는 그렇게 할 수 없느냐는 질문을 시작했다. 노인 빈곤 문제를 다루면서 덴마크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덴마크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늑대들이 양떼를 습격하는 경우가 많아 이탈리아의 경험과 비교하는 기사를 내보낸 적도 있다.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지역이 많고 접근 방식도 모두 다르다. 니스에서 찾은 해법을 서울에서 활용할 수도 있을 거라고 본다.”

– 많은 문제가 결국 정치로 풀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정치의 역할과 언론의 역할이 다르지 않나.
“정치의 역할이 큰 건 사실이지만 모든 문제를 정치로 풀 수 있는 건 아니다. 가뭄의 해법으로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녹지와 습지를 늘리자고 제안할 수 있지만 동시에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물을 계속 늘려야 하는 것도 현실이다. 정치인들이 그 판단을 하는 것 같지만 이들을 선출하고 이들을 압박하는 건 시민 사회의 영역이다. 언론은 이런 우선 순위에 대한 토론을 제안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답이 없는 문제? 우리가 더 깊이 들어가지 않았을 뿐.”

프랑스 남부 지중해를 끼고 있는 니스는 특별히 ‘꼬뜨다쥐르(푸른 바다, Cote d’Azur)’라는 애칭으로 부를 정도로 아름다운 해변을 자랑한다.

이 지역의 유일한 일간 신문인 니스마땅(Nice-Matin)은 ‘니스의 아침’이란 뜻이다. 니스마땅이 소속된 니스마땅그룹(Groupe Nice-Matin)은 니스마땅과 모나코마땅(Monaco-Matin), 바마땅(Var-Matin) 등 인근 세 지역에서 일간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전체 직원은 1000명, 발행 부수는 40만 부, 구독자는 온라인 포함 84만 명 정도다.

니스마땅은 2014년 경영부실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독자들의 크라우드 펀딩으로 회생 자금을 마련하고 독립 언론으로 거듭났다. 지역 기반의 차별화된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세계적으로 여러 언론사들의 벤치마크 모델로 자리 잡았다. 독자들에게 사전 설문을 통해 아이템을 제안 받고 팀장 포함 세 명의 기자가 하나의 주제를 6주 동안 취재하고 15건 정도 기사를 출고하는 시스템이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니스마땅의 유료 구독 서비스 가운데 핵심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취재를 앞두고 니스마땅 유료 구독을 신청하고 이런 저런 기사를 살펴보고 있는데 며칠 뒤 뉴스레터로 이런 설문이 왔다.

“솔루션 아이템을 선정하기 위한 설문에 투표해 주세요.”

메일을 열어보니 세 건의 기사 아이템 후보가 있었다. 첫 번째 아이템은 “테러 피해자를 지원하는 방법이 무엇인가”였고 두 번째는 “15~24세 청년들의 우울증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세 번째는 “‘의료 공백(Docto Vide)’의 해법은 없을까”였다. 1주일 뒤 받은 뉴스레터에는 응답한 독자들 가운데 42%의 독자들이 세 번째 아이템을 선택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한 달 뒤 기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니스마땅의 솔루션팀은 하나의 주제로 한 달 반 동안 집중 취재를 끝낸 뒤 한꺼번에 기사를 출고하는데, 이를 농담 삼아 넷플릭스 스타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제를 규정하고 여러 사례들을 하나씩 풀어놓으면서 해법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넷플릭스의 빈지 뷰잉(Binge Viewing, 몰아보기)처럼 복잡한 사안을 한눈에 조망하고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에서다.

‘의료 공백’은 프랑스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겪는 문제다. 이를 테면 니스 인근의 툴롱(Toulon)에서는 개업한 의사의 절반이 60세 이상인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후임자 없이 은퇴할 가능성이 크다. 니스마땅의 기자들이 이 지역 주민들을 만났다. 상이시도르(Saint Isidore)의 한 주민은 의사를 만나기까지 한 달 반을 기다려야 했다고 말했다. 급박한 상황이면 예약 없이 만날 수도 있지만 역시 4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비다우방(Vidauban)에 있는 한 여성은 고관절 장애로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가장 가까운 병원이 25km 떨어진 곳에 있다. 게다가 남편은 심장병을 앓고 있는데 이 병원 응급실은 저녁이면 아예 문을 닫는다. 툴롱의 한 주민은 “완전히 버려진 느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니스마땅이 찾은 해법은 여전히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를 테면 브리뇰(Brignoles)에서는 미래의 의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지역 병원과 연계해 인턴십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이 인턴이 끝난 뒤에도 이 지역에 남게 만드는 게 목표다. 인턴으로 머무는 동안 아파트를 제공하기도 한다. 인턴을 끝내고 이 지역에서 개업한 한 의사는 “좀 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겠다는 열망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 대가로 아이들 교육과 스포츠, 음악회 등을 포기해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다우방은 인구가 1만3500명인데 1년 만에 의사가 7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나머지 3명의 의사들도 몇 년 안에 정년을 맞게 될 상황이다. 시청에서 9500유로를 들여 헤드헌터를 고용했지만 “수영장이 있는 아파트와 법인 차량을 제공해 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두 차례나 받았다고 한다. 시청에서 건물을 매입해 의료 센터를 운영하고 파격적으로 낮은 임대료를 제시하는 조건으로 스페인 출신의 안과 의사를 어렵게 영입하기도 했다.

약사들이 스스로 해법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툴롱의 한 약국은 원격 키오스크를 설치하고 브르타뉴의 의사에게 원격 진료를 받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 의사는 1주일에 두 차례 툴롱의 환자들을 만나는데 전체 일정의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환자들이 내는 진료 비용은 4유로, 나머지는 100% 건강 보험이 적용된다. 니스마땅과 인터뷰한 한 약사는 “수익은 크지 않지만 지역 주민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장 의사 처방전이 필요한 약품을 구입해야 하는데 의사를 만날 수 없다면 이런 원격 의료가 큰 도움이 된다. 다만 아무래도 화면을 들여다 보면서 진료하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이 어려울 수도 있다. “필연적으로 불완전한 청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지네코버스(Gynécobus, 여성 버스)는 한국에서도 활용할 만한 아이디어다. 도심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을 운행하는 이동형 산부인과 트럭이다. 15명의 산부인과 의사와 7명의 조산사가 일정을 나눠 지역을 커버하면서 자궁경부암이나 유방암 검진 서비스를 하고 있다. 지역 방문 일정은 3개월 단위로 사전에 공개된다. 원래 프랑스에서는 이런 이동형 병원이 금지돼 있는데 한 산부인과의 외래 환자로 등록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로야(Roya) 보건소도 대안 모델로 거론된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7명의 의사가 숙직실에서 먹고 자는 교대 근무를 하면서 과로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장-루이스 게츠타인(Jean-Louis Geschtein) 소장이 부임하면서 ‘의료 사막’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하는 사람이 행복해야 하고 근본적으로 근무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합의를 끌어냈다. 출근과 퇴근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고 사생활을 존중하되 협업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교육과 기술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지금은 6명의 개업의를 비롯해 물리 치료사와 간호사, 심리학자 등 30여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일부는 다른 지역에 직장을 두고 파트 타임으로 참여한다. 행정 업무를 돕는 코디네이터도 고용했다. 이런 활기찬 조직 문화가 인턴들을 채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것은 역동적이고 짜릿합니다. 모든 모험의 핵심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가장 최근에 발행된 솔루션 프로젝트는 꼬뜨다쥐르의 높은 집값과 비어있는 세컨드 주택에 대한 해법을 다뤘다. 다른 지역의 부자들이 휴가철 별장으로 쓸 용도로 부동산을 사들이면서 1년 내내 비어있는 집이 늘어나고 있는데 정작 지역 주민들은 외곽으로 밀려나고 휴가철이면 관광객들이 숙소를 구하지 못해 아우성인 역설적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주거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아파트를 팔고 보트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고 2개월 만에 지을 수 있는 팝업 하우스도 흥미로운 대안이다. 건축비가 1평방미터에 2000유로 정도 든다고 한다. 4만5000유로에 만들 수 있는 28평방미터의 이동식 주택의 사례도 소개됐다. 주택협동조합과 공동 주택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두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보긴 어렵다. 직장은 이 지역에 두고 내륙으로 이사하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이탈리아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4000명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었다.

비어있는 집을 다시 팔게 만드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있다. 주 정부는 3년 안에 비어있는 집의 절반 정도인 5만 호를 다시 시장에 내놓는 걸 목표로 잡고 최대 85%까지 재산세 부분 면제 등의 혜택을 제안하고 있다. OQP라는 비영리 조직도 등장했다. 비어 있는 집들을 찾고 소유주를 컨택해서 리모델링 제안을 한다. OQP 홈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걸려 있다.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해결합니다.” 이를 테면 리모델링 작업에 4만2000유로의 비용이 드는데 2만3000유로를 OQP가 지원하고 임대료의 85%, 대략 월 780유로를 집 주인에게 돌려주는 조건을 제안할 수 있다. 집 주인 입장에서는 어차피 비어있는 집인데 공짜로 리모델링을 하고 임대료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OQP는 빈 집을 좋은 조건에 확보해서 임대를 하고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 지역 차원에서는 관광 수요를 해결할 수 있고 집값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니스마땅 솔루션팀이 다루는 문제들은 하나 같이 쉽게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으로 시작한다. “좀 더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실업에 맞서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실험했습니까”, “학교 왕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요”, “교통 소음을 줄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같은 주제들이다. 의미 있는 해법을 도출한 시리즈도 있지만 원론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데 그친 시리즈도 많다.

요양원을 다룬 시리즈에서는 “노인들이 요양원을 싫어하는 건 요양원이 집이 아니기 때문”이라면서 “문제의 핵심은 결국 재원과 인력 부족이고 병실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홈 케어를 권장하고 요양원 입소를 지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교통 체증을 줄이기 위한 해법으로 제안한 네덜란드의 ‘역 혼잡 통행료’도 흥미로운 아이디어였다. 도심 진입에 혼잡 통행료를 부과하는 게 아니라 운전자들이 차를 두고 나올 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하루 4유로, 한 달 40유로가 상한이고 5년 동안 1350만 유로의 예산이 책정됐다. 당장 교통량이 6% 가까이 줄어들었지만 더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참가자들의 습관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78%가 차량 이용을 줄였다고 답변했고 38%가 이를 위해 출근 시간을 조정했다고 답변했다. 이밖에도 카풀을 활성화하기 위해 카풀 전용 유료 주차장을 늘리고 카풀 전용 차선을 도입하는 아이디어도 소개했다. 10년 동안 자전거 이용자가 4배로 늘어난 보르도의 경험도 자세하게 다뤘다. 자전거 출퇴근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2개월의 자전거 대여 프로그램을 도입한 게 효과가 컸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절반 정도가 자동차 운전을 포기했다. 전기 자전거 보조금도 1인당 320유로까지 지원된다.

솔루션 에디터 소피 카잘스는 “여러 가지 해법이 작동하고 있지만 그 어느 것도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면서 “완벽한 해법을 찾기 보다는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누가 이 문제를 더 잘 알고 있는지, 한계는 없는지 등등을 계속해서 묻고 더 깊이 들어가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카잘스는 “해법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노력과 그 해법이 실제로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실제로 구조를 바꾸고 확장 가능한 해법인지 검증하고 분석하면서 논의하고 그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한다”고 덧붙였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이해하기 위한 10가지 질문.

다음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 진민정이 솔루션 저널리즘을 주제로 연구 보고서를 내면서 전문가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답변으로 정리한 것이다. 진민정이 묻고 이정환이 답했다. 미국에서 이런 걸 하니 우리도 해보자는 태도로 접근하는 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국 상황은 다르기도 하고 미국의 솔루션 저널리즘과 유럽의 컨스트럭티브 뉴스는 또 다르다. 한국형 문제 해결 저널리즘은 어떻게 가능할까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이 보고서의 전문은 한국언론진흥재단 홈페이지에서 내려 받을 수 있다.

1. 오늘날 저널리즘이 위기에 처하게 된 주요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콘텐츠의 위기와 저널리즘 환경의 위기를 구분해서 이야기해주세요.

먼저 콘텐츠의 위기는 이미 뉴스가 너무 많고 독자들은 현상의 이면, 맥락과 본질을 알기 원하는데 언론이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언론이 사안을 규정하고 답을 내려주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뉴스가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 시대도 아니고 뉴스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독자들도 없습니다. 뉴스가 진실을 규정하기 보다는 진실에 이르는 과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뉴스 기업들은 여전히 발생 사건 중심의 제작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널리즘 환경의 위기는 첫째, 콘텐츠에 투자할 재원과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둘째, 뉴스 기업의 수익 구조가 광고주 특히 자본 권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고, 셋째, 디지털 환경의 변화를 따라잡기에는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언론사 조직의 관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상당수 뉴스 조직들이 자본에 영합하거나 독자에 영합하는 건 진실에 복무한다는 저널리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하던대로 하는 관성이 강하다고 이야기하지만 미디어 환경이 바뀌는데도 계속 멈춰 있기 때문에 오히려 퇴행하는 것입니다. 독자를 잃고 의제 설정의 영향력도 약해지고 수익 기반도 무너지면서 생존을 위한 타협에 매몰되고 결과적으로 저널리즘을 희생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2. 한국 언론에서 해법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기사를 찾기 힘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수십 년 동안 계속된 출입처 중심의 취재와 발생 사건 중심의 보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건은 가깝고 사건의 맥락을 추적하고 본질을 파고들고 해법을 모색하기는 멀고 어렵거나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사건을 따라가기에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그거 우리가 늘 하던 거 아냐?”라거나 “좋은 건 알겠는데 그게 언론이 할 일인지 모르겠다”거나 “해법을 왜 언론이 내놓아야 하느냐”거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등의 냉소적인 반응이 쏟아집니다.

실제로 수십 년 동안 해왔던 것과 다른 방식을 고민해 본 적도 없고 고민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당장 맡고 있는 분야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사를 소화하느라 바쁜 건 조직 구성이 그렇게 돼 있고 누구나 맡은 분야의 부품을 조립하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가 더딘 것은 구조적으로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정치 냉소 때문일 수도 있고 언론에 대한 불신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독자들이 뉴스를 외면하고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이 무너지면서 오히려 낡은 관행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해법이나 대안은 한가한 소리처럼 들리고 더욱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분노를 판매하고 갈등을 중계하는 방식에 매몰되는 것이죠.

3. 뉴스가 단순 사실이나 비판적 내용만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활용 가능한 해법 사례들을 찾아 전달해야 한다는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새로운 저널리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새로운 모델이라기 보다는 저널리즘의 확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름을 뭐로 붙이든 또는 굳이 이름을 붙여서 이게 솔루션 저널리즘이다, 규정하지 않더라도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 그리고 기사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많은 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데스크가 이게 다야? 현장에서 사람들 이야기를 더 들어보지? 뭔가 답이 없을까? 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없을까? 좀 더 물어보자고 한 번 더 피드백을 주기만 해도 기사의 방향과 성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편집국 취재 가이드라인에 해법에 대한 질문을 추가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뭔가를 해보자는 게 아니라 기존의 방식에 해법을 찾는 과정에 대한 질문과 모색을 추가해 보자고 제안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4. 몇 년 전부터 솔루션 저널리즘을 표방한 매체들이 영미권과 유럽에서 확산하고 있습니다. 뉴스가 사안과 그 해결 과정을 통해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상상을 가능케 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이러한 확산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진단하십니까?

독자들이 좀 더 적극적인 저널리즘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뉴스에 싫증을 느끼고 겉돌고 맥락을 잃은 뉴스에 실망하고 좌절하기 때문입니다. 뉴스를 봐도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는커녕 무기력하고 분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읽고 즐거운 뉴스,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뉴스를 공유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데 그런 뉴스가 없죠. 언론이 해답을 내놓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변화의 가능성과 희망, 실제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람들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해결 지향 보도를 갈망하는 것이고요.

5.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보다는 해법을 중시하는 저널리즘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합의된 정의가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선생님께서 정의를 내리신다면 이 저널리즘을 어떻게(범주 혹은 방향 측면에서) 규정하시겠습니까?

‘해법을 찾는 과정에 대한 보도’라고 정의하겠습니다. 완벽한 해법이 아닐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더 많은 질문과 더 많은 실험과 시행착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니까 되더라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하니까 안 되더라, 우리는 이런 걸 해보고 있다, 이런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등등, 실제로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추적하고 성과와 한계를 기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기록하고 리스트업하는 것 뿐만 아니라 기록을 집적하고 다시 구조화하고 의미를 짚고 매뉴얼화하는 작업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6. 만약 솔루션 저널리즘에 유효한 측면이 있다면, 언론인들이 어떤 부분들을 경계하면서 솔루션 저널리즘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에서는 특히 ‘액션 저널리즘’이나 ‘해결사 저널리즘’을 솔루션 저널리즘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언론이 직접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언론인이 직접 문제 해결에 뛰어들 수도 있습니다. 많은 경우 기사를 써주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치를 움직일 수도 있고 공무원을 움직일 수도 있고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런 식의 ‘기자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는 적당히 박수만 치고 끝나거나 오히려 독자들을 관찰자로 머물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언론도 물론 많지만 언론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준다면 독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까요. 실제로 정의로운 어떤 언론인들은 ‘우리가 세상을 바꾸고 있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많은 것을 바꾸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독자들 입장에서는 ‘이런 언론인이 더 많아져야 해’, 아니면 ‘다른 언론은 모두 기레기야’라고 냉소하게 됩니다.

언론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지만 언론이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면 더 많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데이빗 본스타인이 이야기하듯이 영웅 만들기를 경계해야 하고(기자가 영웅이 되는 것도 포함), 미담으로 끝나서도 안 됩니다. (미담과 솔루션 저널리즘의 구분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주인공이 돼서는 안 되고, 과정에 주목해야 합니다. 숫자로 입증하고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하고요.) 전문가에 의존한 싱크탱크 저널리즘도 답이 될 수 없고요. 적당히 훈계하고 거대 담론으로 포장하거나 정치가 나서야 한다, 사회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등의 모호한 결론으로 끝나는 것도 솔루션 저널리즘이 될 수 없습니다. 더 철저하게 현장의 실험에 주목하고 숫자로 입증하고 검증하면서 시스템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 솔루션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이, 자칫 언론의 비판적 기능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규정하는 건 여전히 솔루션 저널리즘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시와 비판, 의제 설정은 여전히 저널리즘의 고유한 기능이고 지금보다 더욱 강화돼야 합니다. 그걸 하지 말고 이걸 하자는 게 아니라 이런 것도 해보자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해왔던 것에서 조금 더 나가는 것,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 취재와 보도의 무게 중심을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사 현장에서 추락 사고로 죽는 사람이 1년에 300명이라는 기사를 쓸 수도 있겠지만 추락 사고를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쓸 수도 있습니다. 지방 소멸에 대한 기획 기사를 쓸 수도 있지만 실제로 지방 소멸에 맞서는 지방자치단체의 구체적인 사례를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라도 문제를 중심에 두는 것과 해법을 중심에 두는 것은 메시지가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쪽방촌 르포도 좋지만 노인 주거에 대한 대안을 취재하는 것도 좋겠죠. 미세 플라스틱의 공포를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실천적인 해법을 이야기한다면 실제로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솔루션 저널리즘은 적당히 감동적인 미담이나 한번 휩쓸고 지나가는 캠페인이 아니라 과정과 매뉴얼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좀 더 근거를 갖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해법이 아닌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해법이 아니라 해법을 찾는 과정, 실패든 성공이든 그 논의와 변화의 과정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기록이 남아서 다음 단계로 우리를 이끌 테니까요. 감시와 비판, 날 것 그대로의 사실 전달과 의제 설정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깨진 유리창을 외면하지 말자는 것이고 디테일에 관심을 기울이자는 것입니다. 언론도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서 토론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8. 솔루션 저널리즘 실천과 네트워크 시도들은 주로 영미권과 유럽 일부 국가들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적 저널리즘 환경에 솔루션 저널리즘을 도입하고 소개하는 과정에서 주의할 사항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도입에 어려움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외국에 이런 멋진 게 있다더라고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한국 언론에 도입하려면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과 문제를 규정하고 의제를 설정하는 프로세스의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한국의 기자들은 가서 보고 듣고 기록하는 데 익숙하지만 답이 안 나오는 문제를 추적하는 경험과 노하우가 부족합니다. 문제를 파고드는 것은 선명하고 강력하지만 문제로부터 해법을 도출하는 과정은 막연하고 지루하고 실제로 뾰족한 해법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만 해법에 이르는 과정에 집중하도록 우선 순위를 바꾸는 노력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해법에 집중하게 하려면 해법과 무관한 불필요한 이야기를 과감하게 덜어내고 성과와 한계, 가능성을 명확하게 짚는 새로운 서술 방식이 필요합니다. 적당히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기사가 바로 매뉴얼이 돼야 하는 것이죠.

장기적으로는 뉴스룸의 조직 혁신과 뉴스룸의 의사 결정 구조의 변화가 필요할 거라고 봅니다. 저널리즘 프로세스에 시스템 싱킹과 디자인 싱킹을 접목하려는 시도,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에 린 방법론을 결합하려는 시도도 필요할 것 같고요. 기자가 직접 답을 내놓으려 하기 보다는 시민 사회 진영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답을 찾으려는 시도도 필요할 것이고 기자가 좀 더 현장에 깊이 뛰어들어 현장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태도의 변화도 필요할 것입니다. 저널리스트들과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문제 해결 해커톤(해킹+마라톤) 같은 것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9. 저널리즘을 혁신하고 위기를 타개할 새로운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더 있을까요? 저널리즘의 규범을 지키면서 또 다른 어떤 시도들을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단 솔루션 저널리즘이 그 시도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거고요. 사람들에게는 변화에 대한 갈망, 더 나은 세상과 정의에 대한 참여 의지가 있습니다. 언론이 그런 변화를 추동할 수 있다면 기꺼이 유료 구독에 동참하고 후원을 시작할 거라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명확한 브랜딩과 콘텐츠 포지셔닝이 한국 언론에 필요합니다. 독자들이 직접 사이트를 찾아오게 만들고 뉴스의 맥락을 따라오도록 만드는 것이 의제 설정의 영향력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저는 한국 언론의 가장 큰 위기는 자본 종속이라고 생각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정확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수직적 의사 결정 구조의 언론사 시스템에서는 비즈니스 모델이 조직의 DNA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속보 경쟁과 클릭 바이트 기사 역시 경쟁의 문법을 바꾸지 못하고 플랫폼에 종속되기 때문입니다.

저널리스트들이 저널리즘에 복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여전히 퀄리티 저널리즘에 대한 갈망이 높고 차별화된 뉴스를 만들 수 있다면 충분히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기성 언론의 경우 자전거 바퀴를 멈출 수 없듯이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비행기를 고치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죠. 우리에게는 새로운 성공 모델이 필요합니다.

속보를 줄이거나 통신사와 역할 분담을 하는 것, 심층성을 강화하기 위한 취재 부서를 독립하고, 디지털 스토리텔링 포맷을 계속 실험하고, 뉴스의 맥락을 파고 들기 위한 리서치 서포트 부서를 설립하고, 시민 사회 진영과 협업하는 시스템을 모색하는 등등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건 얼마든지 있습니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연계한 모델도 가능할 거고, 뉴스 레터를 강화하고 커뮤니티를 강화하고 단계적으로 뉴스 유료화를 확대하면서 독자 기반 비즈니스 모델로 옮겨가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10. 솔루션 저널리즘과 관련하여 제언하실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거대 담론이 아니라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할 일이 따로 있고 시민 사회가 할 일이 따로 있고요.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언론이 할 수 있는 기록과 비판, 검증의 역할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지원하는 펀드나 후원 조직, 또는 언론사들의 협의체를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학교에 솔루션 저널리즘 과목을 개설해서 학생들이 한 학기 과정으로 직접 솔루션을 추적하는 실습을 하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성 언론인을 교육하는 것보다 학생들을 교육하는 게 더 빠를 것 같기도 하고요. 기성 언론인과 학생들이 팀을 짜서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할 수도 있을 거고요.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기금을 만들어서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공모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성 언론인 교육 과정으로 솔루션 저널리즘 방법론을 교육하는 것도 좋지만, 문제 해결 방법론과 조직 혁신에 대한 과목을 넣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냥개처럼 사건을 쫓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사건의 맥락과 이면에 대한 토론, 패턴을 발견하고 구조를 이해하는 팀 프로젝트의 경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시민 사회 진영에서 직접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활동가들과 언론인들의 협업 프로젝트를 연계하는 프로세스도 필요할 거라고 봅니다. 한국 사회의 문제를 500가지 정도 정리하는 전문가 그룹이나 워크숍이 있으면 좋을 것 같고요. 저널리스트들과 사회 혁신 그룹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나가는 로드맵을 그려보는 것도 좋은 출발이 될 것 같습니다.